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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영 Apr 28. 2024

정체불명의 진원지, 시추의 시간

  “교수님은 지속적으로 만나는 친구가 몇 분이나 되세요.” 일 년 여 만에 만남의 자리에서였습니다. “함께하는 연구생 제자들이 친구이자 유일한 동료인 셈이죠.” 오랜 우정일지라도 각자 몸담은 분야에서 삶의 지향점이 구체화되면서 구심점 없는 사적인 만남은 지속하기 어렵다는 얘기를 서로 주고받았습니다. 삶을 바라보는 가치관과 생활철학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엉성한 관계로 낙오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 분은 서울 모 대학에서 생태학을 가르치고 있고 내게 30년 전 ‘숲’이란 신세계를 열어준 특별한 인연입니다. 그런 점이 서로에게 든든한 말뚝처럼 지탱해준 탓인지 오랜만의 대면에도 불구하고 어색함 없이 물오른 대화로 이어졌고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부산 모 대학에서 환경공학 교수로 재직 중인 25년 지기지우님. 늦깎이로 시민사회단체에 진입한 내게 선뜻 다가와 준 각별한 인연이었지요. 워낙 바쁜 일정을 소화시키는 그 분이 볼 일로 귀경 중에 내게 짬을 내 한 시간 여 만남에 그쳐야 했습니다. 지난 2월 그렇게 잠깐 서울시청 부근에서 차를 마시고 헤어졌습니다. 간만의 만남도 나에 대한 배려임을 잘 압니다. 갈증을 느낀다고 해도 과한 욕심을 부릴 수 없는 배경이지요. 그 결핍의 틈새를 메워주는 자상한 배려가 이어집니다. 본인의 신문기사 연재물을 개인톡으로 틈틈이 보내주고 있으니까요. ‘관심’어린 글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랜선으로 이어지는 관계도 꽤 탄탄한 보정의 효과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곁들여서 외동아들인 자신이 ‘누님’이 없다는 말을 간간이 흘릴 때 내 의중을 떠보려는 것임을 압니다. 내심 그 말을 반겼지만 아끼는 보물처럼 마음에 간직할 뿐 일절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 나는 멜랑꼴리한 감정에 휘말렸습니다. 도대체 무슨 연유에서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지요. 뭔가 허전했고 부딪치는 매사마다 어설펐으며 가슴 한 구석이 뻥 뚫린 감을 받았습니다. 그건 분명 감당키 어려운 ‘쓸쓸함’이었습니다. 갑작스런 그 감정의 진원지를 밝힐 시추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인근 현충원을 찾아 ‘솔냇길’을 하염없이 걸었어요. 이럴 때일수록 걷는 일만큼 좋은 선택이 또 있을까요. 올 처음 찾아든 그 곳은 다른 코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적이 뜸해 사색하기 알맞은 곳이었죠. 뭇 시선들과의 부대낌 없이 여러 층의 생각을 한 겹 한 겹 벗겨내기에 충분한 곳이었던 겁니다. 그러면서 위의 두 지인들을 떠올렸습니다. 나 그들 못지않게 굳건한 영역을 구축했다 생각했는데 무엇이 이런 내 마음을 마구 흔들고 있다는 말인가. 그런 네 정체는 과연 무엇이냐. 


  개인의 정체성은 ‘관계’ 속 조화로움에서 만개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만남에는 특별한 기연이 필요합니다. 살면서 자신을 개벽시킬만한 절묘한 인연을 만날 행운은 내 일생을 거쳐 몇 번이나 될까요. 그런 분을 직접 만날 기회가 없다고 해도 낙심할 필요는 없겠지요. 배우고자 하는 열망을 스승으로 삼은 분의 저서를 통해 섭렵하는 길도 있으니까요. 

  몇 해 전, 마음속의 큰 인물을 (뜻하지 않은 그 분의 주검으로) 일순 잃었습니다. 얼마동안  종잡을 수 없는 마음에서 헤어나질 못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고정된 사람’에 대한 기대를 걸지 않겠노라 다짐했지요. 그러면서 홀로서기에 더욱 매진하게 됐습니다. 스스로를 펼치자면 고독과 친밀하게 지내야 함을 숙지했고 비교적 잘 단련된 정신상태의 과정을 거쳐야 함을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단단히 붙들어 매지 않고서는 혼잡한 군중 속에서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릴 수 있으니까요. 보셔요, 탁월했던 선 지식인들은 그들이 머물렀던 당대에 많은 비난과 곤경에 부딪치며 고난의 역사를 감내해오지 않았나요. 그런 속에서도 ‘위인’을 닮은 세상의 하나를 창조해 번뜩이는 섬광 같은 글을 남겨 우리를 열광케 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이의 글 주위를 탑돌이 하듯 맴돌던 일은 내게 구원투수처럼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안도하고 지내왔던 겁니다.  


  그랬던 내게 비집고 들어선 정체불명의 진원지를 탐구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차차 조금씩 그 모습이 드러나며 희망으로 갈음되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홀로 공간에서의 공부가 임계점에 이르게 된 것이었죠. 그렇습니다. 가능하면 같은 영역의 공동 집단에 참여하고 그들과 함께 나누고 비판하는 과정을 통해 보호받고 자극 받으며 서로 성장하는 것임을. 이런 나는 그 같은 집단에 소속돼 있지 못했던 겁니다. 그런 곳에서 힘을 주고받지 못한 까닭에 마음 한구석에 찬바람이 불었던 것이었죠. 앞서 떠올렸던 두 분의 지인들은 그런 독무대를 확보한 것과 달리 그렇지 못한 내 처지가 비교되며 발생된 파열음에 지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 이제 진단은 내려졌고 처방까지 나왔으니 그 해소 방법은 내 손 안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문제’의 진단이 ‘과제’로 변환하는 과정의 시간을 이렇게 거쳤습니다.       


  현충원을 돌아보면서. ’솔냇길’에는 ‘솔’이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소나무 아닌 10m 이상의 아름드리 은행나무들이 산책길에 도열해 있습니다. 짱짱한 그 아름다움에 취해 한동안 우러러 보지 않을 수 없더군요. 얼 만큼 걸어 내려갔을까요, 몇몇 은행나무들의 표피가 허옇게 드러나 보이는 게 아닌지요. 가슴높이 지름이 90cm에 이른 나무아래의 표피가 흉물스럽게 벗겨져 있어 보는 이의 마음을 언짢게 했습니다. 그 상흔을 겪고서도 아무 일 없다는 듯 멀쩡히 무성한 잎을 피워내는 은행나무의 저 저력이라니. 내 알량했던 마음이 부끄러워 호주머니 속에 쑤셔 넣고 말았습니다. 돌아 나오며 그냥 지나치기 못하는 내 성향에 현충원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지요. 마침 담당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곧 해결할 것이라는 답을 듣고 나서야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 곳을 잽싸게 빠져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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