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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리리 Oct 24. 2022

일곱 번째 여행 : 일 vs 관계

일을 잘하는 것 vs 관계를 잘 맺는 것

싱가포르만 벌써 여섯 번째

  이제 막 성장하는 항공사에 있다 보니 아직은 노선이 많지 않아 아직은 싱가포르, 터키, LA, 베트남이 끝이다. 하지만 난 터키 한 번에 싱가포르만 여섯 번. 내 로스터(비행 스케줄)에 싱가폴이 있으면 ‘또가폴’이라고 부를

지경이다.


  이렇게 자주 가는 나라를 너무 의미 없이 ‘왔다 갔다’만 하는 것 같아 뭔가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찾아보는 중이다. 누군가 싱가폴 여행을 갔을 때 추천해줄 만한 여행지를 발견한다던지, 매 비행 맛집을 하나씩 발견한다던지 하는 일들을 해야 하는가 싶다. 그러나 한층 더 의미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늘 고민이다.


일을 잘하는 것 vs 동료와의 관계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어느 것을 택해야 할까? 물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 좋겠으나, 어느 것에 더 마음을 실어야 할까


  예수를 내 삶의 주인으로 삶는 사람으로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고 지극히 크리스천들이 힘써야 하는 삶이다. 당연하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자신의 분야에 전문가가 되길 바란다.


  그러나 동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 역시 너무나도 중요하다. 수많은 성경 구절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이 두꺼운 책을 단 두 문장(?)으로 요약하셨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완전 알잘딱깔센 예수님. 여기서 이웃이란, 나에게 붙여주신 모든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선교사가 따로 있겠는가? 이웃이 나를 통해 그분을 알 수만 있다면 그곳이 선교지 아니겠는가.


  한 선배가 말했다. 종이컵을 이렇게 쌓으면 일을 잘하는 것이고, 저렇게 쌓으면 일을 못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며 한 동료의 ‘종이컵 쌓기’ 실력을 평가함과 동시에 그 동료와의 관계에 금을 그었다. “기내 안전요원으로서 비행 간의 비상 상황에 대비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객실승무원의 주된 업무라고 배웠지만 고작 종이컵으로 일의 잘잘못의 따짐을 당하는(?)이 허무한 객실승무직의 현실을 보면서 섭섭하면서도 나 역시 스스로 반성하며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알 수 있는 지혜를 갈망하는 순간이었다.

  군생활 때였다. 입대한 지 3개월 된 이병의 눈으로 바라본 해병 선임들의 모습을 나의 <수양록>에 낱낱이 적었다. 해병대에선 상병 5호봉이 되면 모든 과업에서 열외가 되며 본인이 세계를 다 가진 듯한 권력(?)을 얻게 된다. 그런 문화가 당연해지는 것이 3개월 된 이병에게는 참 아니꼬웠다.


  한 달 동안 경기도 이천 어딘가의 산에서 먹고 자며 했던 훈련이 끝나고, 포항으로 돌아가 휴식 시간을 가졌다. 갑자기 선임 중 한 명이 내 일기장(수양록)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내가 선임이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본이 되어야지’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 글을 큰소리로 읽기 시작했고 읽기가 끝나고 난 뒤지게 맞았다.


  내가 전역하기 하루 전, 모든 중대원이 모인 순검(점호) 시간이었다. 전역하기 전,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이 늘 있었다. 내가 이병 때 썼던 일기장을 그대로 가져가 크게 읽고 난 뒤, 내가 이 다짐처럼 살았는지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며, 너네는 선후임간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군생활이 됐으면 한다며 마무리했다.


  전역하는 날 아침, 입대한 지 몇 주가 채 되지 않아서 얼굴조차 어색한 한 이병이 다가와 편지를 줬다. 날 존경한단다. 나도 당신처럼 군 생활하다 가련다며 편지를 줬다. 감사 그 자체였다.

  일을 잘하는 것과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는 것.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


  다만,  승무원으로서 후자에  초점을 두고 싶다. 퇴사할 때까지 승무원은 같은 일을 10, 20 반복하기 때문에 일은 숙달되길 마련이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이후, 일을 잘하게  이후,  주변에는 나를 대하는 것이 어려워 긴장된 분위기 탓에 실수를 연발하는 후배들이 아닌, 편안한 분위기 속에  열심히 하려는 후배들이 넘쳐나길 바라본다.


[18:12, 개역한글]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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