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잘하는 것 vs 관계를 잘 맺는 것
싱가포르만 벌써 여섯 번째
이제 막 성장하는 항공사에 있다 보니 아직은 노선이 많지 않아 아직은 싱가포르, 터키, LA, 베트남이 끝이다. 하지만 난 터키 한 번에 싱가포르만 여섯 번. 내 로스터(비행 스케줄)에 싱가폴이 있으면 ‘또가폴’이라고 부를
지경이다.
이렇게 자주 가는 나라를 너무 의미 없이 ‘왔다 갔다’만 하는 것 같아 뭔가 생산적이고 의미 있는 일을 찾아보는 중이다. 누군가 싱가폴 여행을 갔을 때 추천해줄 만한 여행지를 발견한다던지, 매 비행 맛집을 하나씩 발견한다던지 하는 일들을 해야 하는가 싶다. 그러나 한층 더 의미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늘 고민이다.
일을 잘하는 것 vs 동료와의 관계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어느 것을 택해야 할까? 물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면 좋겠으나, 어느 것에 더 마음을 실어야 할까
예수를 내 삶의 주인으로 삶는 사람으로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고 지극히 크리스천들이 힘써야 하는 삶이다. 당연하다. 모든 크리스천들이 자신의 분야에 전문가가 되길 바란다.
그러나 동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것 역시 너무나도 중요하다. 수많은 성경 구절이 있지만 예수님께서 이 두꺼운 책을 단 두 문장(?)으로 요약하셨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완전 알잘딱깔센 예수님. 여기서 이웃이란, 나에게 붙여주신 모든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선교사가 따로 있겠는가? 이웃이 나를 통해 그분을 알 수만 있다면 그곳이 선교지 아니겠는가.
한 선배가 말했다. 종이컵을 이렇게 쌓으면 일을 잘하는 것이고, 저렇게 쌓으면 일을 못하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며 한 동료의 ‘종이컵 쌓기’ 실력을 평가함과 동시에 그 동료와의 관계에 금을 그었다. “기내 안전요원으로서 비행 간의 비상 상황에 대비하여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이 객실승무원의 주된 업무라고 배웠지만 고작 종이컵으로 일의 잘잘못의 따짐을 당하는(?)이 허무한 객실승무직의 현실을 보면서 섭섭하면서도 나 역시 스스로 반성하며 무엇이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알 수 있는 지혜를 갈망하는 순간이었다.
군생활 때였다. 입대한 지 3개월 된 이병의 눈으로 바라본 해병 선임들의 모습을 나의 <수양록>에 낱낱이 적었다. 해병대에선 상병 5호봉이 되면 모든 과업에서 열외가 되며 본인이 세계를 다 가진 듯한 권력(?)을 얻게 된다. 그런 문화가 당연해지는 것이 3개월 된 이병에게는 참 아니꼬웠다.
한 달 동안 경기도 이천 어딘가의 산에서 먹고 자며 했던 훈련이 끝나고, 포항으로 돌아가 휴식 시간을 가졌다. 갑자기 선임 중 한 명이 내 일기장(수양록)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내가 선임이 되면 저러지 말아야지. 본이 되어야지’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 글을 큰소리로 읽기 시작했고 읽기가 끝나고 난 뒤지게 맞았다.
내가 전역하기 하루 전, 모든 중대원이 모인 순검(점호) 시간이었다. 전역하기 전, 소감을 발표하는 시간이 늘 있었다. 내가 이병 때 썼던 일기장을 그대로 가져가 크게 읽고 난 뒤, 내가 이 다짐처럼 살았는지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며, 너네는 선후임간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군생활이 됐으면 한다며 마무리했다.
전역하는 날 아침, 입대한 지 몇 주가 채 되지 않아서 얼굴조차 어색한 한 이병이 다가와 편지를 줬다. 날 존경한단다. 나도 당신처럼 군 생활하다 가련다며 편지를 줬다. 감사 그 자체였다.
일을 잘하는 것과 사람과의 관계를 잘 맺는 것.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
다만, 난 승무원으로서 후자에 더 초점을 두고 싶다. 퇴사할 때까지 승무원은 같은 일을 10년, 20년 반복하기 때문에 일은 숙달되길 마련이다. 그러나 20년이 지난 이후, 일을 잘하게 된 이후, 내 주변에는 나를 대하는 것이 어려워 긴장된 분위기 탓에 실수를 연발하는 후배들이 아닌, 편안한 분위기 속에 더 열심히 하려는 후배들이 넘쳐나길 바라본다.
[잠18:12, 개역한글]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