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치료, 그 위선의 가면을 벗기다.
얄롬 "카우치에 누워서" 독후감
'카우치에 누워서' 얄롬 1996년 작.
얄롬의 여러 소설 중에서 단연 압권. 이걸 왜 이제야 읽었을까나 후회스럽다. 내용이 너무 '막장'스러워서 더위를 잊어가며 책에 푹 빠져 지냈다.
작가는 정신분석 치료를 하는 의사와 환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기막힌 일들을 소설의 형식으로 표현한다. 얄롬의 다른 소설들이 환자들의 눈물겨운 치료와 회복의 과정을 다뤘다면, 이 소설에서는 심리치료 과정에서 치료자가 범할 수 있는 최악의 실수들을 남김없이 그리고 있다. 상담윤리 교재로 이만한 책이 없겠다 싶다.
책의 초반부만 보면 남자 정신과 의사와 여자 환자 사이의 섹스 스캔들을 주요 소재로 다루는가 싶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보다 근원적인 문제를 건드린다. 실력과 권위를 두루 갖춘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 싶은 정신과 의사 마샬은 돈과 명예의 유혹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만다. 협회 내 권력투쟁의 비열하고 어두운 모습도 소설은 가감 없이 묘사한다.
우리가 우러러보는 치료자의 학위와 경력, 탄탄한 조직을 가진 협회가 겉으로 보이는 그 모습만큼 완벽하고 전능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 이 당연한 사실이 종종 묻히고 만다. 미디어를 장식하는 스타 정신과 의사나 각종 치료자들도 궁극에는 연약한 인간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신치료란 무엇인가? 누가 누구를 치료하고 있으며 치료는 어떻게 일어나는가? 치료자의 자격은 누가 부여하는가? 무엇을 공인된 적법한 치료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을 소설을 읽는 내내 끊임없이 하게 된다. 최근에 한국에선 국회 심리사법 제정을 둘러싸고 각종 학회와 조직들이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은데, 다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상담자로서 나의 커리어를 돌아보게 된다. 크게 성공 하진 못 했으나 그래도 여기저기서 인정받고 나의 상담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내담자들이 있었다. 세상을 다 얻은 듯 뿌듯하고 감격적인 순간이었으나 지금 다시 보니 위험했다. 너무나 달콤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큰 성공 없이 어렵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내가 감당하고 소화할 만큼의 성과와 유혹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