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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다 Feb 08. 2023

싸움의 기술 (6)

복싱으로 배우는 심리학 - 2장 : 맞더라도 상대의 주먹을 보라

자존심자신이 옳다는 생각 이 두 가지를 버려야 한다. 자존심 구겨가며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나이가 든 내담자일수록 그들에게서 ‘내 생각이 틀렸네요, 내가 잘 못 봤네요’라는 말을 듣는 것은 어렵다. 미세하게 자존심에 금이 가기만 해도 어떻게든 그것을 회복하려 애쓴다. 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세월과 함께 더 성숙해져서 감정 상하는 일이 줄어든다는 것은 공자님이나 가능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이가 들면 단지 감정을 숨기는 기술이 늘 뿐이다. 나이 든 사람의 삐침은 직접적이지 않고 둘러대며 길게 말하는 가운데 상대방의 진을 뺀다. 자신을 향한 작은 비판도 결코 수용할 수 없는 이들은 그야말로 상대의 주먹을 피하려고 고개를 돌리고 눈을 감고 무차별적으로 공격당하는 복서와 같다. 그중에서도 자수성가한 어른들이 더 심하다. 그들의 젊은 시절의 성공 경험은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현장의 생생한 모습을 보지 못하게 막는다. 그들은 지금 벌어지는 문제에 자신의 지분은 어디에도 없다고 확신한다.     


영철씨는 50대 중반의 평교사이다. 비슷한 연령대와 임용 동기인 교사 중엔 교감, 장학사도 많았고 적어도 부장은 되어있었다. 승진하지 않고도 교직에서 보람을 찾는 교사들도 간혹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자녀교육에 집중하는 여교사들이나 그런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영철씨는 자신이 아직도 평교사인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영철씨는 줄을 잘 서는 약삭빠른 3~40대 젊은 교사들 욕을 했고, 편파적인 인사관리로 학교에 분란만 일으키는 교장과 교감을 비난했다. 영철씨의 비난은 아이들을 향할 때 더 거세졌다. 인성도 예의도 없고, 수업 시간에 집중도 못 하는 ‘돌대가리’인 학생들을 비난했다. 선생님이 학생들을 저 정도로 싫어하면 과연 교직을 계속해야 할까 하는 마음이 들 정도다.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으시네요. 동료 교사들도, 관리자들도 그리고 학생들도 선생님을 힘들게 합니다. 혹시 선생님이 달리 보아야 할 것은 없을까요?”     


이런 나의 질문에 영리한 모범답안이 나온다.     


“아 물론 저도 완벽한 사람은 아닙니다. 누가 완벽할 수 있겠어요. 사람은 다 똑같죠. 그런데 세상에 상식이라는 게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이어지는 영웅적인 젊은 날의 서사가 들려온다.   

  


“내가 어려서 학교 다닐 때는 교과서 말고 변변한 책도 없었어요. 친구 자습서 빌려서 그거 베껴가면서 공부했어요. 시골에서 농사짓는 가난한 집 6남매 중에 내가 둘째인데, 저만 고등학교에 갔죠. 내가 부모님과 싸워 가면서요. 그렇게 욕먹으며 학교 다녔는데 서울에 있는 명문대 떡 하니 합격하니까 시골 작은 동네가 발칵 뒤집혔어요. 동네잔치하고 현수막 걸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대학 다닐 때 남들 다 데모하느라 정신없을 때도 아르바이트해서 생활비 벌고 등록금은 거의 다 장학금으로 받았죠. 임용고사 1번 실패하고 바로 합격한 사람 많지 않습니다! 친구들은 ‘남자가 할 거 많은데 무슨 교직이냐?’ 했지만 내가 맞았어요. IMF로 정규직 확 줄어들고 취직하기도 힘들고 그때 취직했던 애들도 지금은 다들 명퇴하고 놀아요. 난 정년까지 끄떡없습니다.”    

  


상담사 직업이 좋은 것 중 하나는 여러 사람의 사는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런 자수성가형 사람들의 이야기는 직종만 다를 뿐 어쩜 그렇게 패턴이 똑같은지 신기할 정도다. 무일푼에서 성공한 사업가, 가난한 유학생으로 시작해 학위 따고 교수 자리 얻은 학자, 양파 껍질 까는 주방 보조에서 요리 명장이 된 쉐프까지 모두 다 비슷한 패턴이다. 지독하게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초인적인 노력과 인내로 성공의 사다리를 오른 사람들이다. 그들은 시종일관 자신들의 판단이 옳았으며 지금도 감히 틀릴 수 없다고 굳게 믿는다.      

젊은 날의 성공이 독이 되는 경우다. 


그래서 대학 진학에 실패한 고3,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이 이런 면에서는 복이 있다. 사업에 실패하거나 직장에서 잘린 사람들이 복이 있다. 자신의 한계를 맞닥뜨리고 주저앉아 무거운 한숨을 내 쉬는 이들은 복이 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마음은 고통 가운데 성장하고 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배우려는 자세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의 삶은 성장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바꿔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냉정한 현실로부터 두들겨 맞고 있으나 상대의 주먹을 보며 가드를 올려야 할지, 뒤로 물러서야 할지, 빈틈을 노려 반격해야 할지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존심으로 똘똘 뭉쳐진 자수성가형 내담자들과 근원적으로 다르다. 이들은 작은 성공에도 진심으로 감사하며 그것이 자신의 노력과 더불어 행운이 함께 했다는 것을 안다. 그리하여 자신의 성공이 독점적인 사유물이 아니며 모두가 함께 나누어야 할 공공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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