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베낭여행기2
로마에서의 이튿날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아무래도 시차 문제로 새벽에 계속 깨더니 더이상 누워있기 어려울 정도로 일어나고 싶어졌다. 배가 너무 고팠기 때문이다. 원래 아침식사를 안하는데 아무래도 시차로 인해 허기가 밀려오는 듯했다. 여권과 유로화를 넣은 복대를 허리춤에 차고 여행필수품들을 작은 핸드백에 잘 챙긴 다음 일단 떼르미니역 안으로 걸어갔다. 역시 떼르미니역은 아침 8시에도 많은 인파로 북적이고 있었다. 카페가 있는 2층에 올라가 나도 이탈리아 사람처럼 커피와 크로와상을 먹었다.
나중에 느낀 거지만 이탈리아라고 해서 모든 크로와상이 맛있는 것은 아니었다. 거의 매일 아침 다양한 지역, 다양한 가게에서 크로와상을 먹어본 결과 맛있는 곳만 맛있고, 어떤 곳은 한국의 흔한 브랜드 크로와상 보다 형편없이 맛없었다. 카푸치노 맛이 거의 획일화된 것에 비해 크로와상 맛은 천차만별이었다. 잘 골라서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일단 빵 겉면이 일반 빵처럼 뭉툭해보이는 크로와상은 정말 맛없다. 부서질듯 얇은 겉면의 크로와상을 골라야 대부분 맛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듯한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구경하며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카푸치노 양이 너무 적은 것이 늘 불만이었다. 정말 맛있는데 말이다. 이런 푸드코트 같은 곳에 와서 먹으면 좋은 것이 남눈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어서이다. 특히 한국 같으면 누가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연 남눈을 의식하며 서둘러 먹게 되는데 이렇게 외국에 나와 나처럼 관광객이 많은 곳에 오면 피차 비슷하다는 생각에 편안하게 먹게 된다. '나이 든 아줌마가 왜 저러고 혼자 먹고 있나' 하고 남들이 쳐다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괜한 자의식이 안생겨서 좋다. 이렇게 천천히 이탈리안식 조식을 한후 역 주변 시티투어버스 승강장으로 향했다.
나는 새로운 도시를 여행할 경우 여행의 시작을 시티투어 버스 혹은 도시 유람선과 함께 한다. 이것은 내가 미국에서 혼자 여행을 하며 터득한 여행 지혜로, 시티투어버스나 투어유람선을 타고 도시의 중요 관광포인트를 쭉 둘러보다 보면 방향감각도 생기고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하는지 대충 감이 온다. 여행지에 대한 개괄적 조망이 가능하다고나 할까? 로마에서도 그렇게 시티투어버스와 함께 첫 일정을 시작했다.
떼르미니역 광장 주변에는 다양한 색깔의 시티투어 버스들이 있었다. 4개 정도의 회사에서 운행하는 것 같았는데 바티칸 안으로 들어가는 한 개 노선버스를 제외한 나머지 버스들의 투어루트는 거의 비슷한 듯했고 다만 한국어 서비스를 해주는 버스는 한 개인데 핑크색 버스였다. 모든 승강장에는 버스회사측 직원이 나와있어 표를 즉석에서 현금으로 팔고 티켓과 이어폰을 주는데 버스에 올라 이어폰을 잭에 꽂으면 정차하는 유적지에 대한 안내를 들을수 있다. 대부분 버스가 한국어를 포함하지 않는데 이 핑크버스만이 한국어도 가능하다고 하여 고민없이 이 버스로 골랐다. 사실 안내방송은 별것 없이 휴대폰으로 검색하면 다 나오는 정도의 초보적 설명인데 그래도 각 건물이 무슨 건물인지를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나름 효용이 있었다.
1일권을 구입하면 하루 종일 탔다 내렸다 할수 있는데 가격이 24유로인가 했다. 떼르미니역에서 출발해 한바퀴를 돌아 다시 역으로 오는데는 한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교통체증 정도에 따라 좀 다르지만 한시간 반 정도 안팎이면 로마시내 유적지 근처를 한바퀴 돌아서 다시 출발점으로 오고 잠시 정차하다 다시 가는 식이었다. 한바퀴를 돌고 난 후 나는 스페인 계단 근처에서 내렸다. 투어버스 2층에서 천천히 달리며 보는 로마는 역시 좋았다.
로마는 역시 로마였다! 2층 버스에서 내려다본 로마는 비로소 ‘내가 로마에 왔구나’ 하는 벅찬 환희를 선물해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었다. 다만 시간이 갈수록 머리 정수리가 뜨거워진다는 것만을 빼면...
이렇게 오전엔 로마 시티투어 버스를 타고 로마시내 방향감각을 익힌 후 오후엔 걸어서 갈 만한 근처 유적지를 구경하며 다녔다. 너무 좋았는데 역시 문제는 뜨거운 햇볕과 더운 날씨였다. 9월 말인데도 로마는 너무 더웠고 특히 태양은 뜨거웠다. 사실 이탈리아 여행을 하고 나서 탈모가 가속화되었다는 아픈 후기를 고백한다. 모자를 잘 쓰고 다녔어야 하는데 더워서 잘 안쓰고 다녔더니 돌아와서 두피가 많이 상한 것을 발견했다.
이렇게 뜨거운 태양아래 오래 걷는 것은 무리였으나 어쩔수 없이 많이 걸을수밖에 없었다. 혼자라서 카페에 넋놓고 오래 앉아있기도 뭐해서 그저 걸으며 로마를 하나라도 더 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로마 구시가지를 걸으며 근처 유적지를 둘러본 후 베네치아 광장 앞 버스 승강장 티켓 발권기에서 표를 사서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구글맵 앱을 검색하면 몇 번 버스를 어디서 타서 어디에서 내려야 하는지가 잘 나와 있어서 버스를 타고 다니며 여행을 하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다. 딱 한번 구글맵이 왠지 이상하게 작동한 날 도시를 헤매다 너무 뜨겁고 지쳐서 택시를 한번 탄 적이 있을 뿐 매번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이렇게 첫날 로마시내 구경을 나름 알차게 하고 조금 이른 시간인 6시 정도에 호텔로 돌아왔다. 피곤하고 더워서 오래 걸어다니기도 힘들거니와 밤이 되면 혼자서 다니는 것이 좀 두려우므로 되도록 어두워지기 전에 일찍 호텔로 돌아왔다. 9월말 이탈리아는 해가 많이 짧아져 있었다. 역시 호텔 앞 가게에 들러 물과 먹을 것을 사들고 와서 유튜브를 켜고 계속 로마 공부를 하면서 간간이 내가 좋아하는 애견채널도 시청하면서 그렇게 로마에서의 둘째날도 무탈하게 지나갔다.
다니다 보니 알게 된 것이지만 로마도 큰 브랜드 슈퍼마켓이냐, 동네 구멍가게냐에 따라 가격차가 꽤 컸다. 체인형태의 브랜드 슈퍼마켓에서는 정말 식료품값이 쌌고 특히 맥주값이나 물값이 큰 차이가 났다. 다만 이탈리아는 맥주에 별로 진심이 없는지 캔이 별로 없고 거의 병맥주여서 맥주캔 따개가 필요하다.
로마에서의 셋째날엔 본격적으로 뚜벅이여행을 했다. 로마의 유적지는 떼르미니역 근처에 산재한 호텔에서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이지만 하루 종일 많이 걸어야 하는 상황에서 괜히 무리할 필요는 없다. 특히 나같은 중년에겐 다소 무리이다. 해서 대중교통을 십분 이용하면서 교통이 안닿는 유적지 밀집 구간은 걸어서 이동하는 식으로 접목해야 하는데, 교통편으로 버스를 선택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전혀 불편도 없었고 안전하고 생각보다 쾌적했다. 유적지 근처는 지하철도 어느 정도 다니는데 지하철은 언제나 붐벼 보였고 그래서 소매치기걱정을 해야 해서 꺼려졌다. 주변 경관이 안보이니 타고 내릴 때 자칫 정거장을 놓칠 위험도 있다 보니 자연히 버스가 낙점되었는데 여행 기간 내내 이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했다.
이탈리아는 우리처럼 버스 탈 때 신용카드로 결재하는게 아니고 꼭 표를 사야 한다. 표를 사서 버스안에 있는 펀칭기계에 넣어 날짜와 시간이 찍혀나오는 펀칭을 해야 한다. 이탈리아는 한번 찍어놓은 버스표로 버스나 지하철, 트램 등 모든 교통편을 이용할 수 있는데 이 표들이 통일된 표이지 매일 새로 발급되는게 아니어서 그날 버스를 타면 날짜와 시간이 찍히도록 펀칭을 해줘야 나중에 불시 검문을 당했을 때 문제가 안생긴다. 펀칭이 안돼 있을 경우 중복사용자로 간주돼 200유로인가 하는 벌금을 내야 한다. 이탈리아는 정말 선택의 나라답게 대중교통 티켓 역시 여러개의 구매 옵션이 있다. 1.5유로로 1회 90분간 자유롭게 탈수 있는 1회권을 비롯 약 10유로 정도로 기억되는 1일권, 3일권, 몇십 유로인 10일권 등 여러개의 옵션이 있다. 며칠 여행할 사람이라면 고민스러울수 있는데 단언컨대 1회권으로 여러장 사라고 조언한다. 하루에 1회권 2장, 정말 많으면 3장 정도면 아무 문제없이 다닐수 있으니 1회권이 경비면에서 훨씬 저렴하다.
내가 여러날 경험한 바로는 이탈리아의 버스는 거의 사회복지 수준의 의미인 듯했다. 거의 검표를 안한다. 운전기사를 제외하곤 직원도 없고 버스는 우리나라 버스보다 두배 정도 길어서 타고 내리는 문이 보통 3개이다. 버스표 자체가 1회권, 하루권, 3일권, 한달권 등 다양하기에 1회권이 아닌 사람은 가지고 다니며 일일이 매번 펀칭할 필요가 없기에 버스에 타서 펀칭을 하는 사람보다 안하는 사람이 더많다. 한마디로 타고 내리는 곳도 3군데에 펀칭 기계도 여러개 있는데다 1회권도 90분동안 무료 환승 가능하고 장기권을 가진 사람도 있기에 누가 펀칭을 하고 타야 하고 누구는 안해도 되는지 분간도 힘들어 공짜로 버스를 타도 알 길이 없는듯해 보였다, 검표만 안당한다면! 물론 아주 가끔은 검표를 하기도 했다. 로마에 총 6일 가량 머무르면서 매일같이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머무는 동안 두번 불시 검표를 받았다. 사실 두번다 종착지인 떼르미니역 광장에 도착해서 문을 열지 않은채 운전기사나 갑자기 올라탄 경찰이 하는 식이었다. 밀리는 도시 한복판에서는 정차하고 표검사를 하는게 상식적으로도 쉽지 않아 보였다.
로마에서 혼자 여행할때 1회권을 사 펀칭을 하고 버스를 타고 가다가 뒤늦게 잘못 탔음을 알게 되는 일이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외곽으로 빠져나간 버스는 이미 두시간을 넘기고 있었고 종점에서 다시 버스가 회차하기를 기다리며 버스 안에 그대로 앉아있었는데 버스에는 나혼자 뿐이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복귀한 버스 기사는 나한테 아무 관심도 없어 보였고 그렇게 버스는 다시 출발해 원래의 장소로 되돌아왔다. 만약 기사가 검표를 하며 90분이 진작에 지났다고 따지면 90분이 되기 전에 이 버스에 탔고 잘못 타서 돌아가는 것이라 나는 문제가 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생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럴 필요도 없었다.
해서 하루 종일 도시를 여행해야 한다면 하루에 1회권 두장 정도를 사서 오전에 한개, 오후에 한개를 펀칭하고 돌아다니면 충분해 보였다. 혹시라도 검표를 해도 펀칭만 당일 했다면 90분 내에 이 버스를 탔다고 하면 되는 일인 것이다. 주요 도시에 도착하면 일단 역안에 있는 버스표 발권기나 따바끼(T) 표시가 있는 가게에서 1회권 몇장을 한꺼번에 구입해서 갈 것을 추천하고 싶다. 그러면 어디든 가고 싶을때 표 사느라 헤맬 필요도 없고 이미 소지한 표로 인해 대중 교통 접근이 매우 용이하게 다가온다.
셋째날도 역시 역 2층 카페에서 크로와상과 카푸치노를 먹은 후 역 광장 버스 승강장에서 버스를 타고 여행을 시작했다. 떼르미니역은 종착역이라서 수많은 버스들이 정차해 있다 떠나곤 했다. 구글맵으로 검색해 나온 버스번호를 확인후 해당 번호의 버스를 타는 곳에 가서 정차해 있던 버스에 올라타면 된다. 버스를 타고 다니는 로마여행은 생각보다 여러모로 좋았다. 로마시내를 구경하며 다닐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학생들 퇴교시간을 제외한 시간엔 밀리지도 않아서 편히 앉아서 다녔다. 버스에서는 당연 이탈리아어로 다음 정차역을 알려주기에 알아듣기 쉽지는 않았으나 전혀 문제될게 없었다. 구글맵 앱이 손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앱은 친절하게도 지금 움직이는 버스 노선을 그대로 따라와주며 버스노선을 AI처럼 알려줘 앱만 잘 보고 있으면 내릴 곳을 놓칠 염려는 없었다. 이렇게 편리할수가! 돌아가면 구글 알파벳 주식을 사야겠다! 해외로밍이나 유심칩을 장착한 휴대폰만 있다면, 그리고 휴대폰 배터리만 충분하다면 여행에 문제가 없었다. 이렇게 계속 앱을 켜고 다녀야 하다 보니 3년째 쓰고 있는 휴대폰의 배터리가 빨리 소모되는게 첫날부터 걱정될 뿐이었다. 맵앱은 곧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여행기간 내내 핸드백에 전날 채운 보조배터리를 보물처럼 가지고 다녔다. 이렇게 휴대폰이 작동하고 구글맵만 작동한다면 혼자 다녀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는게 요즘의 달라진 여행풍속이었다.
10년 만에 와보는 로마는 그대로인 듯 했다. 화려한 로마의 유적과 건축물, 예술품들은 정말로 눈호강 그 자체였다. 구글맵 덕분에 셋째날의 여행도 무난하게 진행되었다. 로마 구시가지에 유적지들이 몰려있어서 맵을 검색해 이동 동선을 선택해 물흐르듯 가면 됐다. 근처 스페인광장과 근처의 로데오거리, 트레뷔분수, 라보나광장, 판테온 신전을 순차적으로 천천히 걸어서 이동하면서 관람하며 첫날 오전 관광을 마쳤다.
혼자서 간만에 여행다니다 보니 여행 시간이 스피디하게 진행된다. 오전에 이 중요 유적들을 다 둘러봤는데도 오전 시간이 남았다. 혼자서 다니면 빨리 찾게 되고 오래 머무르지도 않게 되어서 관광이 빨리 끝난다.
한참을 걷다가 점심을 어떻게 떼우지 하던 차에 군밤수레가 보였다. 5유로에 꽤 실해 보이는 군밤 한봉지를 사서 그것을 우걱우걱 씹으며 거리를 걸었다. 오후엔 다시 유명 관광지인 천사의 성쪽으로 걸어서 이동해보았다. 판테온에서 천사의 성 쪽으로 맵이 알려주는 직선의 골목길 루트는 아기자기하고 아름다웠다. 골목길에 있는 수많은 음식점들과 카페, 아이스크림가게들을 구경하며 걸어가면서 ‘그래 이것이 혼자 여행의 묘미이지’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로마의 골목길이었다.
천사의 성을 보고 왼쪽 그리 멀지 않은 지점에 바티칸시국이 보였다. 천천히 걸어서 바티칸 광장을 둘러본후 아이스크림 한 개를 사먹고 근처 버스승강장을 검색해 버스를 타고 호텔로 다시 돌아왔다.
내일 아침엔 로마를 떠나야 하기에 오늘 저녁 만큼은 제대로 식사를 하고 싶어졌다. 특히 혼자서 계속 여행해야 하는데 음식점다운 음식점에 들어갈 용기가 없으면 내내 길거리음식이나 슈퍼에서 파는 맛없는 것들만 먹어야 하기에 어떻게든 빨리 용기를 내야 한다. 해서 저녁시간 호텔 주변의 한 레스토랑에 용기를 내어 들어가 맥주와 전채요리인 해산물샐러드 한개, 해산물파스타 1개를 시켜서 먹고 나왔는데, 계산서를 보고는 그만 '앞으론 왠만하면 리스토란떼에 가지 말아야지'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음식값은 자릿세까지 합해 한국돈으로 대략 7만원 정도였다. 헐~ 도대체 이탈리아 사람들은 이렇게 비싼 외식비를 어떻게 감당하고 살까 하는 생각을 하며, 향후 한달여행의 가성비 식사대책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혼자 하는 로마에서의 1차 마지막 밤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