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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운아당 Sep 03. 2024

많은 사람의 은혜는 다혜 <기찬 딸>

그림책 리뷰, 김진완 글, 김효은 그림, 시공주니어

기찬 딸 표지

 글쓴이 김진완 작가는 67년생 진주사람이다. 그림책의 마지막 페이지, 기차에서 내리는 역이 '진주역'인 것을 보면 고향에 대한 애착이 많은 것 같다.  작가의 어머니가 기차에서 태어난 이야기를, 처음에 시로 적었다가 그림책으로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 발간했다. 작가는 어머니가 기차에서 태어난 이야기를 듣고 이를 시로, 그림책으로 남겼다.


  요즘 산모가 들으면 기절 초풍할 이야기이지만 1970년대 즈음, 그때는 아이를 길에서도 낳고, 버스에서도 낳고, 배에서, 밭에서, 기차에서 낳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 시절, 산부인과도 흔하지 않았고, 의사도 부족하여 대도시를 제외하면 병원이 없었다. 배가 산만큼 불렀어도 일하러 나갔기에, 아기를 가진 엄마는 산통이 느껴지면 그 자리가 바로 해산 장소였다. 길에서 낳으면 이름에 길자가 많이 들어갔다. 길영, 길순, 길태 등 우리 동네에도 이런 이름이 많았다. 집에서 산통을 맞는 것은 그나마 행운이다.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동네 산파역할을 하는 어른을 부를 수도 있다. 이웃사람들이 물도 데우고 탯줄도 끊어 주고, 미역국도 끓여 주었다. 나도 어릴 적 엄마가 동생을 집에서 낳는 것을 직접 보았다.


  작가의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기차를 타고 어딘가에 가고 있었다. 밖은 유리창이 쨍그랑하고 깨질 듯한 추운 겨울 어느 날이었다. 외할머니는 만삭이었다. 바로 엄마가 외할머니의 배 속에 있었다. 요즘은 미리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알 수 있고 언제 아기가 나올지 의사는 알려준다. 그 시절 외할머니는 언제가 출산일인지 잘 몰랐다. 배가 산만큼 불러 있지만 움직일만했고, 어디 다녀와도 크게 부담되지 않았다. 그래서 외할아버지랑 기차를 탔을 것이다.


  그러나 순식간에 배는 진통이 왔고 금방이라도 아기가 나올 것만 같다.

"으윽.... 으음... 아이고 배야."

외할머니는 배를 감싸 안고 비명을 질렀다. 칼로 도려내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지만 참고 참았던 진통인데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외할아버지는 놀라서 아기가 나올라고 하는가 보다 싶어 주위 승객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보소, 얼라(아기)가 나올라캅니더."


  기차에 탄 사람들은 모두 편안한 시간을 즐기고 있다. 졸기도 하고, 깊은 잠에 빠진 사람들도 있고, 옆사람과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있기도 하다. 외할아버지는 더 큰 소리로 아기가 나올라고 한다고 고함을 질렀다. 그때야 사람들은 이 두 부부를 보고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그때 마침 옆에 앉은 할머니가 버럭 고함을 질러 차장에게 기차를 세우라고 했다.


  인가가 있는 곳에 기차를 세우고 남자들은 동네로 뛰어가 따뜻한 물을 얻어 오고 아까 고함을 지른 할머니와 기차 내 여자들은 외할머니를 돌보기 시작했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깥은 입김이 콧수염에 고드름을 만들 지경이었다. 남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인가가 있는 곳을 향하여 달렸다. 느리게 가던 시대이니 가능하였을 것이다. 지금처럼 기차 횟수가 많았으면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충돌 위험이 있지 않았을까. 어느 집에나 뛰어가서 따뜻한 물을 데워 오던 인심이 사라져가는 인간미에 대한 향수를 일으킨다.


  여자들은 외할머니 옆에서 힘을 더 주라고 응원을 할 즈음 아기가 태어났다. 바로 작가의 어머니 문다혜이다. 많은 사람의 은혜로 태어났다해서 외할아버지가 다혜로 지었다고 한다. 한 생명의 탄생 순간에 주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맞이할 준비를 한다.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한 마음으로 뭉쳐서 아기의 순산을 도와준다. 훈훈한 인정에 마음이 따뜻하다. 감동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승객들은 모두 십시일반 거둬 외할아버지에게 주면서 미역이라도 한 줄거리 사 먹어라고 했다. 얼굴이 두꺼비 같이 생긴 아줌마의 주머니에서 꼬깃꼬깃한 종이돈이 나오고, 얼굴이 검게 아저씨의 바지 주머니에서 동전이랑 종이돈이 나왔다.


 아기의 울음소리는 우렁찼고, 걱정과 조바심에 덜덜 떨던 외할아버지는 그제사 '쾌지나 칭칭 나네~~"노랫가락을 뽑는다. 기차에 타고 있던 승객들은 아기가 건강하게 태어남에 안도함과 생명의 탄생에 축하하는 합창을 한다. 멈췄던 기차는 다시 출발했다. 기차 밖은 눈보라가 더 거칠어졌지만 기차 안은 훈훈한 인정이 사람들을 감쌌다.

마지막 그림에서 엄마 손을 잡고 역사를 걸어 나오는 아이 앞에 할머니가 두 손으로 환영하는 모습이다.

여장부가 된 엄마는 늘 말한다.

"몸만 건강하모 희망은 있다. 나는 기찬 딸이다. 기차 안에서 난 딸."

 외할머니로부터 기찬 딸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엄마는 마음 깊숙히 씨앗 하나 열매 맺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음 깊숙이 보이지 않는 곳에 심었을 것이다. 수시로 반복해서 씨앗에 물을 주고 키웠을 것이다. 그 씨앗은 많은 사람의 축복과 성원과 염려 속에 환영 받으며 태어났다는 사실이다.

"나는 많은 사람의 축복 속에 태어난 사람이다. 환영 받으며 태어난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을 믿는다. 몸만 건강하면 뭐든 할 수 있다. 이것은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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