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Y Sep 23. 2022

“네가 그 큰 배를 직접 운전한다고?”

방향성과 속력에 대하여

조타실에서 본 24,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친구들 또는 지인들에게 내 직업이 배를 타는 직업이라고 소개하면 먼저 나오는 반응이 어떤 물고기를 잡느냐는 것이다. 보통 배를 탄다고 하면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는 화물선이 아니라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어선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나는 장황한 설명을 시작한다. 


물고기를 잡는 어선이 아니고 나라 간 화물을 옮기는 화물선을 타는 것이고 배의 크기도 엄청나게 크다고 얘기를 한다. 그 크기를 이해시키기 위해 8톤 화물 트럭이 일반적으로 싣고 다니는 컨테이너를 24,000 개 실을 수 있다고 설명하고 직접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 그때서야 “아~” 한다. 


그러면 “그래서 거기서 네가 무슨 일을 하는데?” 

난 항해사니까 배 운전을 담당하지. 라고 하면 흠칫 놀라며 “네가 그 큰 배를 직접 운전한다고?” 라고 한다.



    

    항해사들은 실제로 배를 운항한다. 실제로 한국에서 화물을 싣고 지구 반대편까지 화물을 나른다. 그리고 배가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안전하게 항해를 담당하는 것이 항해사의 일이다. 그러면 "네가 키 (조타 장치)도 직접 잡고 ‘운전’ 하냐"고 묻는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동수단인 자동차는 운전자가 직접 핸들도 잡고 액셀과 브레이크를 밟아서 속력도 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운전자 한명의 역할이 매우 커서 그런지, 직접 ‘핸들’을 잡는 것에 큰 비중을 두면서 하는 생각인 것 같다.


항해사는 키를 잡지는 않는다. 그것이 엄청 어려운 일이라서라기 보다는 키를 잡는 것보다 더 어렵고 복잡한 일을 해야되서 그렇다. 선박이 항해를 하기에는 침로나 배의 속력 뿐만 아니라 파도, 조류, 바람, 수심, 등대, 날씨, 주변 통항선, 규칙, 관제 센터 권고사항 등 등 세려고 하면 수없이 많은 고려 사항들이 존재하고 이러한 주변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결정하고 지시’ 하는 것이 항해사의 역할이고, 항해사를 도와주는 조타수의 역할은 직접 키를 잡고 지시받은대로 선박의 선수 방향을 조정하는 것이 조타수의 역할이다. 

항해사는 조타수가 이해하기 쉽게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지시를 내려야 하고 이에 따라 선수 방향 몇 도, 타 각도를 명확하게 지시하기 때문에 조타수는 지시받은대로만 조타기를 돌리면 된다. 키를 잡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쉬운 일이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키를 잡는 일’ 자체는 생각보다 크게 어렵지 않다.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하는 것이 항해사의 몫이다.


항해사는 앞서 말한 눈으로 볼 수 있는 외적인 고려사항 뿐만 아니라 상황 판단력, 순발력, 일어날만한 여러가지 상황을 예측하는 능력, 정확한 지시를 위한 커뮤니케이션 능력, 리더쉽, 항해기기를 능숙하게 다루는 스킬 등 항해사의 자질은 선박이 안전하게 항해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만약 항해사가 확실한 방향으로 결정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며 애매하게 조타수에게 지시할 경우 선박이 사고가 날 확률은 급격히 상승한다. 

선박이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일단 ‘결정’을 내리면 선박의 선수 방향을 그 쪽으로 돌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더 쉽다는 얘기다. 그래서 항해사가 더 어렵고 복잡한 일을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선가(禪家)에는 어떤 남자와 말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은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고 말에 탄 남자는 어딘가 중요한 곳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남자가 길가에 서 있다가 “어디로 갑니까?”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말에 탄 남자는 “나는 모릅니다. 말에게 물어보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틱낫한 불교> (틱낫한 지음, 권선아 옮김) 중에서


    이렇듯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배가 항해하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만약 항해사가 상황을 정확히 인지하고 가야할 방향을 명확하게 결정하면 그 항로로 가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이와 반대로 항해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라고 지시하면 조타수는 그 명령에 따라 배는 엉뚱한 곳으로 갈 것이고 결국 좌초하게 될 것이다. 가만보면 우리는 주어진 삶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생각을 못하고 그저 앞만 보고 가면서 “일단 열심히 하면 어떻게든 돼!”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운명은 좌초될 배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항해사가 주변 상황을 먼저 파악하고 가야할 곳에 대해 결정하듯이 인생에서도 나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며 어떤 일을 할 때 즐겁고 보람을 느끼는지 생각하고 파악해서 어떤 일을 하며 인생을 살 것인지 심사숙고를 하고 결정하고 방향을 조절해야 배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듯 인생도 즐겁고 후회없게 살 수 있지 않을까? 


배를 운항하는 것 처럼 일단 방향을 결정했다면 그 길을 열심히 따라가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바다 위에서 배운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