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의 패러독스 - 10
사회의 빈부 격차를 감소하기 위해서 필요하다고 제시되는 방법 중 하나로 고율의 소득세가 있다. 지금 빈부격차라 증대되는 이유는 고소득자가 엄청난 돈을 벌기 때문이다. 연봉 수억원, 수십억원을 버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고 있다. 보통 사람들의 월급은 잘 오르지 않는데, 이런 고소득자의 수입은 더 증가하고 있다. 이 고소득자로부터 더 세금을 많이 걷으면 빈부 격차가 감소할 것이다.
지금 한국의 소득세율은 누진세를 적용하고 있다. 연 4600만원 이하면 15% 세금이지만, 연 10억원을 버는 연봉자는 45%를 세금으로 낸다. 이건 국세이고, 여기에 지방세 10%가 붙어서 실질적으로는 49.5%가 세금으로 나간다.
연봉 10억이면 약 50%를 세금으로 낸다 하지만 그래도 연 실질 수령액은 5억원이 넘는다. 세금을 70%를 거둬들여도 연 수령액은 3억원이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많이 거둬도 충분히 잘살 수 있다. 이런 사람들한테 세금을 더 거둬서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지원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더 좋은게 아닐까? 그래서 부자들에 대한 소득세를 더 올리자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데 이런 주장이 지금만 있었던 건 아니다. 부자들에게 아주 높은 고율의 세금을 매기자는건 이전부터 있었던 주장이다. 그리고 실제로 부자들에게 높은 세금을 매겼었다. 1950년대 이후 전세계는 사회주의 물결이 휩쓸고 지나갔다. 모든 국가에서 부자들에게 높은 세금을 물렸다. 1970년대까지 서구 몇몇 국가들은 부자들의 최고 세율이 90% 수준이었다. 1만원을 벌면 9000원을 세금으로 가져갔다. 보통은 70-80%의 소득세율을 유지했다. 한국도 부자의 세율이 90% 이상인 적이 있었다. 1961년 당시 이병철 삼성 회장은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를 만난 자리에서, 실질세율이 100%가 넘어 버는 것보다 더 세금을 내야 하고, 이래서는 제대로 사업을 할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세계적으로 1970년대까지 이렇게 높았던 소득세율은 1980년대부터 낮아지기 시작했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가 고소득자 소득세율 감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렇게 소득세율을 낮추게 된 이유는 부자들에게 더 많은 돈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게 해주는 것 자체를 정책 목표로 하는 국가는 없다. 부자들의 세율을 낮춘 이유는 그래야 보통 사람들이 더 잘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 근로자들은 월급을 받아 산다.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공무원들도 월급을 받아 생계를 유지한다. 근로자, 월급생활자의 특징은 돈을 더 많이 받으나 덜 받으나 일하는 시간은 똑같다는 점이다. 근로자는 하루 근무시간, 한달 근무시간, 일년 근무시간이 정해져 있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한다. 월급을 조금 더 덜 준다고 이 일하는 시간이 줄지는 않는다. 월급을 좀 더 준다고 일하는 시간이 느는 것도 아니다. 일하는 질이 좀 달라질 수는 있다. 하지만 월급의 증감과 관계없이 기본적으로 일하는 시간은 동일하다.
이런 근로자들은 세금을 올린다고 해서 일하는 시간이 줄지 않는다. 1,000만원 월급을 받고 있는데 세금이 200만원에서 500만원으로 올랐다고 해서 일하는 시간을 줄이지 않는다. 세금이 700만원으로 올라서 실수령액이 300만으로 감소되더라도, 근무 시간은 똑같다. 자기와 가족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세금이 올라도 그냥 계속 똑같이 일해야 한다. 세금이 올라간다고 해서 생산성, 생산량이 크게 감소하지 않는다.
부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걷겠다고 소득세율을 70%, 80%로 올린 사람들은 월급을 받고 살아왔던 정치가, 공무원들이었을거다. 자기들은 세금과 관계없이 똑같이 일하니, 부자들도 세금을 70, 80% 올려도 똑같이 일할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월급으로 살아가지 않는 진짜 부자들은 다르다. 소득세율이 어느 정도 이상으로 오르면 그냥 일을 하지 않는다. 일을 해서 돈을 더 벌려고 하지 않고, 그냥 있는 재산으로 살아가려 한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봤자, 세금으로 모두 빼앗기니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문제는 정말 돈이 있는 사람들이 하려고 하는 일이 어떤 일이냐는 문제이다. 몇십억의 자산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자. 이 사람이 뭔가 일을 해볼까라고 할 때, 어느 회사에 직원으로 취직해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자산가가 일을 해볼까 라고 할때는 보통 회사를 차린다. 사무실을 얻고 직원을 채용해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한다. 투자가 발생하고 고용이 이루어진다. 자산 규모가 크면 대규모의 채용이 발생하고, 이를 통해 보통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고 소득이 생긴다.
그런데 이때 소득세율이 80%가 넘는다고 해보자. 자기 자산으로 뭔가 사업을 벌여서 돈을 벌면 세금으로 다 내고 끝난다. 만약 사업에 실패를 하면 완전히 망할 수 있는데, 사업에 성공해보았자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거의 없다. 그러면 사업을 시작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돈 가지고 놀면서 편하게 산다. 망하건 말건, 돈을 벌건 말건 나는 이 일을 꼭 하고 싶다는 경우에만 무언가 일을 시작한다. 그정도로 열중하는 일이 아니면 그냥 포기한다.
1970년대 세계 경제가 침체되고 활력이 사라진 이유는 새로운 사업이 새로 생기지 않아서다. 새로운 사업이 생기지 않으니 변화가 없고, 일자리도 없다. 새로운 사업이 생기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고율의 소득세 때문이었다. 사업을 할 수 있을 만한 돈이 있는 사람들이 세금 때문에 사업을 하지 않고 일을 하지 않는다. 일을 하지 않으니 소득도 없고 세금도 없다. 부자들이 소득이 없는 것은 괜찮다. 문제는 보통 사람들의 소득도 없다는 것이다. 사업체가 계속 생겨나야 일자리가 느는데, 사업체가 생기지 않으니 일자리가 늘지 않는다. 기존에 일자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상관없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새로 사회에 진출하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 사회 전체가 만성적인 고실업에 고통받는다. 이것이 고소득자에 대한 고세율의 부작용이다.
고소득자에 고세율을 매기면, 부자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 소득이 없으니 세금도 내지 않는다. 그대신 이미 있는 돈으로 그냥 살아간다. 그리고 보통 사람, 가난한 사람들은 일할 곳이 부족해지고 결국 소득이 감소한다.
고소득자에게 세율을 낮게 매기면 부자들이 새로이 사업을 시작한다. 손해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성공하는 경우도 있다. 부자들이 더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다. 사업장이 늘어나면서 보통 사람, 가난한 사람들은 그만큼 일자리를 얻게 된다. 월급만큼의 소득이 생긴다.
부자가 돈버는 꼴을 보기 싫으면 고율의 소득세를 매기면 된다. 대신 보통 사람들의 삶은 어렵게 된다. 보통 사람들이 보다 더 많이 돈을 벌게 하고 싶으면 부자에 고율의 소득세를 매기면 안된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나아지겠지만 부자는 더욱 더 부자가 될 수 있다. 부자가 돈을 못벌게 하는게 목적인지, 가난한 사람들의 소득을 올리는게 목적인지에 따라 고세율 정책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갈라진다. 가난한 사람들이 보다 높은 소득을 올리는 것을 바란다면 부자에 대한 고세율 정책은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