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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성락 May 18. 2022

미 연준의 정책 방향

경제 단상 6

학교에 다닐 때 미국의 철학은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라고 했다. 실제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것, 실제 경험을 중요시하는 것, 실질적인 이익을 중요시하는 것이 프래그머티즘이다. 미국은 프로그마티즘의 철학 사조를 중시했고, 이를 통해 발전하게 되었다고 했다. 학교에 다닐 때 이걸 배우면서 이게 뭔 의미가 있나 했다. 실제적인 것을 중요시하는 것은 당연한거 아닌가. 실질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도 일반적인 일 아닌가. 그게 뭐가 특별하다고 프래그머티즘이라는 현란스런 이름까지 붙여놓았을까.


 살아가면서 점점 알게된다.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이 대단한 거였구나. 한 사회가 프래그머티즘을 추구하고 일반적인 가치가 된다는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현재 중국의 코로나 방지 대책만 봐도 프래그머티즘이 절대 당연한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코로나 방지 대책에서 중요한 것은 그 대책이 정말로 시민들에게 도움이 되느냐, 어떤 것이 시민들에게 더 이로운가이다. 시민들에게 어느 정도 이익이 가느냐를 중심으로 방역 정도를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중국은 시민들의 이익은 관심없다. 코로나 환자가 발생하느냐 발생하지않느냐가 중요하다. 국민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더라도 코로나 제로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용주의가 아니라 이념, 정의, 가치의 정책이다.


 유럽은 탈 탄소가 절대적인 이념으로 자리잡았다. 시민들이 불편한가, 손실이 어느정도인가, 과연 기술적으로 가능한가와 상관없이 탈 탄소를 추구한다. 그로인해 에너지 가격이 폭등해서 시민들이 어려움을 겪어도, 탄소를 사용하는 산업이 망해가서 피해가 가도 상관하지 않는다. 무조건 탈 탄소이다. 


 한국도 별다르지 않다. 케이블카의 경우 케이블카를 설치했을때의 이익과 환경이 손상되는 손실을 비교해서 이익이 크면 케이블카 설치를 찬성하고, 손실이 더 크면 케이블카 설치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환경보호를 주장하는 측은 그런 이익과 손실을 비교해서 정책 판단을 하지 않는다. 환경 파괴는 무조건적으로 안된다. 이념, 가치에 의한 정책이지 프래그머티즘이 아니다.


 현재 세계 경제에서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은 미국 연준 FED이다. 연준에서 이자율을 올리느냐 올리지않느냐, 올리면 얼마나 올리느냐가 초점이다. 지금 연준은 다음 회의에서 연속으로 0.5% 금리 인상을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과연 정말로 연준이 0.5%만 할지, 0.75%를 하지는 않을지 추측하고, 그에따라 주식, 채권 시장은 요동을 치고 있다. 


 그런데 사실 연준이 지금 어떤 말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연준을 아는 사람은 모두 다 알고 있다. 진짜 연준의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연준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느냐가 아니다. 경제 지표가 어떻게 나오느냐이다. 지금 미국의 인플레이션은 8% 대이다. 다음 조사 발표에서 현재 수준이 유지되면 연준은 기존의 발표대로 0.5% 금리 인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8%를 너머 10%가 나온다면? 그러면 연준은 금리 인상의 폭을 높일 것이다. 0.75% 금리 인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만약 인플레이션율이 훨씬 떨어지면? 그러면 0.25%로 줄어들 것이다. 


 연준의 정책 결정은 실제 경제 지표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달려있다. 실업율이 낮게 나오면 돈을 거두어들일 것이고, 실업율이 높게 나오면 돈을 풀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낮으면 돈을 풀 것이고 인플레이션이 높으면 돈을 거두어들일 것이다. 연준의 정책은 이런 기본적인 상식에서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연준의장이 성장론자라고 해서 인플레이션과 상관없이 무조건 돈을 풀지도 않고, 긴축론자라고 해서 실업율과 상관없이 무조건 긴축을 하지는 않는다.


 즉 미국의 정책은 정책담당자의 가치, 이념, 정의관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는다. 프래그머티즘, 실용주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실제 지표를 바탕으로 정책이 변화한다. 정책이 왜 이루어지고 무엇을 목표로 하고 있는가가 분명하다. 그래서 누구나 정책을 예상할 수 있고 또 그에 대해 준비도 할 수 있다.


  한국의 경제정책과 비교하면 차이를 쉽게 느낄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을 보자. 문재인 정권의 부동산 정책은 집값을 낮추겠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재산세, 양도세, 종합부동산세를 높였다. 그렇게 했는데 원래 예상대로 집값이 낮아졌으면 정책을 계속 추진하면 된다. 그런데 집값이 올라갔다. 그러면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실제 집값이 오르느냐 내리느냐를 기준으로 해서, 집값이 오르면 그 정책을 수행하지 않고 집값이 내리면 그 정책을 계속 수행하면 된다. 그러다 집값 추세가 변하면 정책을 바꾸면 된다. 집값의 움직임에 따라 정책이 변하는 것, 그게 실용주의이다. 


 그런데 한국의 부동산 정책은 그렇게 굴러가지 않았다. 집값이 계속 오르는데도 재산세, 양도세, 종합부동산세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집값 지표에 의해서 정책이 이루어지는게 아니다. 부동산에 대해서 세금을 높여야 한다는 가치관, 부동산으로 인한 불로소득은 없어야 한다는 정의관에 의해서 정책이 만들어지고 집행되었다. 


 미국의 프래그머티즘은 당연한 것 같지만 당연한게 아니었다. 미국 말고 다른 나라는 프래그머티즘보다 가치, 원칙, 정의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 단기간으로는 실용주의적인 경우가 많지만, 장기적으로 실용주의가 지속된 경우는 보기 힘들다. 프래그머티즘이 미국의 가치라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다. 미국만큼 프래그머티즘적으로 국가 운영을 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사람들은 실질적인 이익보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 정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한 개인이 이익보다 가치관, 정의를 더 중요시하게 생각한다면 그건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민들, 시민들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해 이익보다 가치관, 정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그건 이야기가 다르다. 개인의 이익은 상관하지 않고 정의를 추구하는 성직자, 철학자, 순교자는 훌륭한 사람이지만, 국민의 이익은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정의를 추구하는 정치가, 행정가, 사회 지도자는 곤란하다. 다른건 몰라도 국가 정책은 프래그머티즘으로 하는게 맞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연준의 정책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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