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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이사도씨 Jun 07. 2022

지지않는 명자씨1

  명자씨는 원래 쌍련씨였다.

  쌍둥이로 태어났다고, 그녀의 아버지가 이름을 ‘쌍련’으로 지은 것이다. 자칫 욕처럼 들릴 수 있는 그녀의 이름 때문인지, 그녀는 어릴 적부터 억척스럽기 그지없었다. 쌍둥이 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싸워 이겼다. 제 나이보다 많은 동네 언니와 싸울 때도 거침이 없었다. 

  억척스럽던 그녀는 딸도 강하게 키웠다. 자기와 다르게 툭 하면 어디서 맞은 뒤 울며 들어오는 큰 딸이 너무 답답해, 위로는커녕 도리어 혼을 냈다. 그녀의 딸이 자기도 이기고 싶지만 힘이 약해서 어쩔 수 없었다는 등의 속 답답한 소리를 할 때면, 그녀는 해결책을 내주었다. 

  “힘으로 안 되겠으면 돌이라도 던져! 치료비는 엄마가 물어줄게.”

  그녀의 말에 힘을 얻은 명자씨 딸은 실제로 돌을 던지지는 않았지만 돌을 던질 수도 있는 각오로 싸워 어느덧 골목대장이 되었다. 명자씨는 이후로 딸 때문에 속상한 일이 현저히 줄었다.  

  강하고 건강하게 잘 자라던 딸은 나이가 들수록 비혼 의지를 내비쳤다. 제까짓 게 좋은 남자 만나면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겠지 했는데, 오래 연애를 하면서도 이 딸이 결혼할 생각은 안 했다. 서서히 불안해져서 딸에게 결혼하라며 들들 볶던 어느 날이었다. 남자친구와 동업을 하는 딸이 남자친구와 싸웠는지 가게로 나가지를 않았다. 헤어졌냐고, 왜 놀고 있느냐 물었더니 대뜸 운다. 어지간해선 우는 아이가 아닌데 펑펑 우는 모습에 명자씨는 적잖이 당황했다. 한참을 울던 딸은 자기 몸에 이상이 생겼다며 조만간 수술을 할지도 모른다고 얘기했다. 며칠 후,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흉선암’ 때문에 명자씨 딸의 고운 가슴엔 길고 깊은 흉터가 생겼다. 딸은 거의 2주간 수술로 인한 통증 때문에 아파했다. 갈랐다가 다시 붙인 가슴도 아프지만 팔이며 등이며 다 아프다는 딸을 보는 것은 몹시 힘겨웠다. 딸 앞에선 울지도 못하다가 남편과 둘이 있을 때면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라며, 많이 울었다. 딸의 수술이 끝나 한 고비 지난 줄 알았는데, 딸은 항암도 해야 한댄다. 머리도 다 빠지고, 불임이 된다는데.. 그 속이 분명 상할 건데 딸은 별다른 내색이 없다. 제일 처음 항암하던 날엔 명자씨 딸답게 씩씩한 모습으로 항암을 받으러 갔다. 응원 말고는 해줄 게 없어 속상한 나날이었다. 항암하면 잘 먹어야 한다는데... 솜씨를 한껏 발휘해 딸 앞에 내놓아도 딸은 코를 싸쥐며 음식을 거부했다. 어릴 때부터 먹성만은 남부럽지 않게 좋은 아이였는데 몇날 며칠을 먹지 않고 가만히 누워만 있는 딸을 보자 명자씨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딸이 항암을 무사히 다 마칠 때까지 명자씨는 계속 그렇게 새까맣게 속을 태웠다. 

 딸은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제 생활을 한다. 집에서 나가 독립해 사는 통에 일주일에 한 번 얼굴을 보는 둥 마는 둥이다. 여전히 비혼주의자라며 결혼도 안 한다. 딸이 한 번 크게 아프고 난 뒤로는 딸의 남자친구에게 미안해 더 이상 결혼을 강요하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도 뭐, 모든 게 다 일상으로 돌아와 그럭저럭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명자씨는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일을 해야 하는데, 글씨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게다가 어지러워 구토도 자주 했다. 어지간해서는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진통제로 떼우던 명자씨인데 이번에는 탈이 단단히 났다는 느낌이 들어 병원에 갔다. 머리 CT를 찍더니, 아무 이상이 없댄다. 이상이 없다는데 머리는 계속 아팠다. 구토도 더 자주 했다. 이번에는 좀더 큰 병원에 갔더니 MRI를 찍잖다. 아무 이상이 없댄다. 그런데 명자씨는 아파서 죽을 것 같다. 망치로 머리를 두드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아프다 호소했더니, 조영제를 넣고 MRI를 다시 찍어보잰다. 이번엔 뭔가 보인다고 했다. 드디어 명자씨의 두통의 원인을 찾는 건가? 싶었는데, 갑자기 가슴 사진도 찍어야 한댄다. 가슴 사진을 찍고 난 뒤로 명자씨 앞에서 의사가 갑자기 조심스러워졌다. 명자씨더러는 나가라 하고, 보호자인 남편하고만 얘기를 한다. 명자씨는 진료실 밖으로 나가며 그저 막연하게 자신이 암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좀 더 큰 병원에 입원해 결과를 기다리는데, 그 끔찍한 두통의 이유는 폐암이랜다. 술을 못하는 명자씨는 애연가이던 남편을 따라 몇 모금 담배를 뻐끔거린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원인이었을까? 남들은 다 힘들다는 부엌일이 그리도 재미가 있어서, 요것저것 만드느라 가스불을 켜댔는데 그것이 원인이었을까? 애주가에 애연가라 속을 썩이던 남편이 원인이었을까? 명자씨는 도통 이유를 모르겠다. 자신은 굉장히 대범한 사람이고, 작은 일은 신경조차 쓰지 않는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트레스가 있었던가? 큰딸은 자기가 아팠을 때의 스트레스 때문에 엄마마저 암에 걸린거라며 밤마다 우는 모양이었다. 명자씨 앞에선 울지도 못하고, 홀로 있을 때 펑펑 우는지 명자씨를 찾을 때마다 부은 눈이었다. 가족들은 모두 그렇게 명자씨 앞에서 울컥울컥 하는데, 정작 명자씨는 시종일관 담담했다. 폐암, 뇌전이, 뼈전이가 모두 의심된다고 호흡기 내과 의사가 병실에 들어와 모두들 들으란 듯이 큰 소리로 말할 때에도.. 그래서 옆 사람들이 놀라고 몇몇은 울음을 터뜨릴 때에도 명자씨는 그저 담담했다. 

  면전에서 암이란 얘기를 들은 후, 명자씨는 찬 수건을 내내 이마에 대고 있었다. 머리가 너무나 아팠다. 이제는 앉아있을 수도 없게 머리가 아팠다. 큰딸과 작은 딸은 퇴근 후 날마다 명자씨 병실에 와서 명자씨의 손과 발을 주물러 주었다. 딸들의 정성 덕분인지 통증이 조금 가라앉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해가 지고나면 어김없이 극심한 두통이 찾아왔다. 

  밤마다 잠도 못자고 앓자,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기 전이지만 종양내과 의사 선생님이 전뇌방사선을 먼저 해보자고 했다. 뇌전이가 되어 두통과 어지럼증이 심한 것이니, 일단 고통을 줄일 목적으로 전뇌방사선을 받으란다. 고통을 줄일 수 있는 거라면 뭐든 상관없었다. 있을 수 있는 몇 가지 부작용을 감수하고 명자씨는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덕분에 두통은 좀 줄었으나, 갑자기 명자씨의 발목이 꺾였다. 명자씨는 발목이 제 멋대로 꺾여 더 이상 혼자 걸을 수가 없었다. 아니 너무 어지러워 혼자 서있을 수조차 없었다. 이때쯤 명자씨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다 명자씨를 찾아왔다. 생존률이 낮다는 폐암에 걸린 탓에, 이제 명자씨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 생각했는지 모두들 슬프디 슬픈 표정이었다. 명자씨의 쌍둥이 언니는 이제 명자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것 같다며 아는 이들에게 연락을 했고, 이 소식을 듣고 급하게 명자씨를 찾은 사람들 덕에, 명자씨는 왕래가 뜸하던 지인들의 얼굴을 거의 모두 보게 되었다. 세보이던 명자씨의 힘이 빠진 모습에 딸도 울고, 친척도 울고, 이웃도 울고, 내내 곁을 지키는 남편은 툭하면 울어댔는데 정작 명자씨는 내도록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죽든 살든 그것은 명자씨의 의지로 되는 일이 아니라 생각하니, 이 모든 상황이 덤덤했다. 그저 지나가는 순간일 뿐이라 생각했다. 

  명자씨의 종양 내과 담당 의사 선생님은 딸의 담당 선생님과 같았다. 모녀가 나란히 암환자가 되어 한 선생님에게 치료를 받으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었다. 어쨌거나 명자씨의 조직 검사 결과가 드디어 나와, 명자씨는 항암을 시작했다. 딸이 맞던 주사 항암인가 싶었는데, 그저 하루에 한 알씩 알약만 먹으면 되는 ‘표적항암제’란다. 딸은 명자씨가 처방 받은 약을 보고 몹시 기뻐했다. 밤마다 간절히 기도하며 바라고 또 바랐던 약을 처방받았단다. 기뻐하는 딸이 무색해지게 명자씨는 첫날 항암약을 삼키자마자 구토하고 말았다. 

  방사선 덕분인지 명자씨는 점차 구토가 줄고, 나름의 요령이 생겨 항암약을 먹고도 토하지 않았다. 딸이 말했던 것처럼 약의 효과는 아주 놀라웠다. 명자씨를 내내 괴롭히던 두통과 어지럼증이 사라졌다. 조금 더 지나니, 명자씨는 그 누구의 부축도 없이 혼자 힘으로  서고 걸었다. 명자씨가 다시 혼자 걸을 수 있는 것을 본 가족들은 모두 놀라며 기뻐했다. 이후로도 명자씨의 상태는 날로 달로 좋아졌다. 방사선 때문에 머리가 다 빠져 누가 봐도 암환자이지만, 그럼에도 명자씨는 이제 머리가 안 아팠다. 어지럽지도 않았다. 다만, 시력이 많이 상했다. 처음엔 통증만 없어져도 좋을 것 같더니, 통증이 다 사라지고 나니 명자씨는 많이 상한 시력도 슬슬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내도록 그저 안 보인다고만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시계의 시침이 보이기 시작하고, 사람 얼굴의 눈코입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주 천천히지만 시력 역시 좋아지고 있었던 거다. 명자씨는 시력이 두통이나 어지럼증처럼 빠른 호전을 보이지 않아 답답했지만, 어쨌거나 좋아지고는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았다.  

  명자씨는 가끔 암환자의 삶이 답답하고 힘들었다. 그럴 때면 큰딸이 참 많은 위로가 되었다. 치료 과정 중에 어딘가가 불편하고 아프면 내 딸도 이랬겠거니, 근데 이 힘든 걸 다 버티고 이겼으니 자신도 이겨내야 된다 생각했다. 사실 딸과 명자씨는 병명도 다르고, 치료 방법도 다르지만 명자씨는 그런 걸 잘 몰랐다. 그저 자기가 어딘가 아프면, 딸도 똑같은 걸 겪었으려니 생각했다. 한참 투병하다 말고 뒤늦게 그때 얼마나 힘들었냐며 딸을 위로하기도 했다. 애초에 딸이 암환자이니 왜 나만 이런 몹쓸 병에 걸렸나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았다. 딸은 암에 먼저 걸린 선배답게 암환자가 해야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알려주었다. 반드시 운동하라는 딸의 말대로 매일 1만보씩 걸음을 걷고, 설령 토를 하더라도 밥은 챙겨먹고, 스트레스 받을 것 같은 상황은 최대한 멀리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샌가 예전의 명자씨와 다시 비슷해지고 있다. 제 쌍둥이 언니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겨먹던 그 세디 센 명자씨의 모습이 다시 보인다. 한동안 잦은 구토로 살이 빠져,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여리함을 보여주던 명자씨는 다시 센 여자가 되었다. 슬슬 먹고있는 항암제의 부작용이 나타나긴 하지만, 그까짓것, 견디고 이겨내볼 생각이다. 

  한 달에 한 번 진료일이면, 늘 전보다 좋아졌다며 파이팅을 외쳐주는 의사 선생님 덕분에 기분이 좋다. 계속해서 지금처럼 의사 선생님을 믿고 따르면, 계속해서 파이팅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다. 선생님은 명자씨를 위해서 이후 계획도 다 있다는 든든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명자씨는 그동안 살면서 웬만한 건 다 해봐서 더 이상 하고 싶은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모녀가 나란히 암 완치 판정을 받고 싶다는 꿈이 생겼다. 우리가 낫는다면 다른 암환우들에게 희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자씨는 지금껏 누군가와 싸워 져본 일이 없으니, 암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며 딸이 응원해준다. 두 쌈닭 모녀는 자신들의 센 성격대로, 감히 허락 없이 자기 몸에 자리 잡은 못난 암을 이겨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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