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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이사도씨 Jun 07. 2022

지지않는 명자씨2

  암을 그럭저럭 이겨내가고 있던 명자씨는 어느날 남편과 함께 산책을 나섰다. 그날따라 남편의 말을 듣지 않고, 밑창이 다 닳아빠진 운동화를 신었던 게 실수였을까? 서리가 앉은 숲을 산책하던 명자씨는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처음엔 그저 단순히 넘어진 것에 불과하다 여겼으나, 통증이 어마어마했다. 작은딸 내외가 달려와 명자씨를 병원으로 데려갔다. 척추뼈가 골절됐단다. 거의 한 달 가까이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한다는 얘기에, 명자씨는 조급증이 났다. 암 진단을 받기 전까지 지독한 두통으로 걷지 못했던 시절, 다리 근육이 다 빠져 나갔던 게 생각이 났다. 공포스러웠다. 의사가 하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씩 몰래몰래 걸었다. 이상하게 점점 엉덩이나 허리쪽보다는 다리가 아파왔다. 그러더니 점점 다리가 굳어가기 시작했다.

  걸어서 그런가? 이번에는 걷지 않아 보았다. 상태는 더 나빠졌다. 걸어도, 걷지 않아도, 다리 상태가 예전같지 않았다. 명자씨는 결국 주변의 도움 없이는 걸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병원에 가보았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큰딸은 일을 마치면, 밤마다 의학 논문을 뒤져가며 원인을 찾아댔다. 다리를 마비시키는 원인이 엄청나게 많단다. 일단 큰딸의 말에 따라 병원 여기 과에도 가보고, 저기 과에도 가보았다. 하지만 뭔가 원인 중 하나가 일치하면, 저건 또 아니란다. 결국 자기네와는 상관 없는 병이라 했다. 그렇게 명자씨는 뚜렷한 병명도 찾지 못한 채 휠체어 신세가 되고 말았다.

  처음에는 그저 ‘곧 낫겠지.’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던 가족들이 조금씩 지쳐갔다. 하지만 눈도 멀고 다리도 마비돼 버린 그녀는, 가족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주로  남편이 그녀의 수발을 도맡았고, 딸들도 그녀를 도왔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그녀는 최대한 뻔뻔해지기로 했다. 마음 한구석, 미안함도 있었지만, 당당하게 도움받고 싶었다. 그러다가도 한번씩은 마음이 작아지곤 했는데, 그럴 때는 그냥 이대로 빨리 죽고 싶기도 했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쌍둥이 언니 쌍자가 밉살스럽게 건드렸다.

  “내가 니 같으면, 이 꼬라지로 사느니, 그냥 죽었다.”

  불쾌했다. 명자씨는 내가 죽기는 왜 죽냐며, 자기보다는 혈압이 높은 언니가 조심해야 될 거 같다며 되갚아주곤 했다.

  밖을 쏘다니며 사람들 만나기를 좋아하던 명자씨였는데, 안방에서 거실로 나가는 것마저도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 돼버렸다. 거실로 나가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보려면, 남편의 도움이 필요했다. 남편은 명자씨가 그냥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봤으면 하는 눈치였다. 명자씨는 하루종일 안방에만 있으려니 갑갑했다. 그저 거실에라도 나가고 싶었다. 부엌 식탁으로 가서 밥을 먹고 싶었다. 그러려면 남편이 도와줘야 한다. 남편은 언젠가부터 온몸이 다 아프다며 방에 있는 텔레비전을 틀어주고, 밥상에 밥을 차려와 방에서 먹게 했다. 섭섭했다. 이 모든 게 명자씨의 남편이 요령보다는 힘으로 명자씨를 이동시켜서였다. 처음에는 기분 좋게 그녀의 수발을 들더니, 긴 병에 장사 없다고 이전과 다르게 조금씩 신경질을 내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명자씨는 점점 남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다. 주치의 선생님이 명자씨 다리의 원인을 찾은 것도 같다며 신경외과 진료를 연결시켜줬다. 이번에는 왠지 다른 때와 느낌이 달랐다. 정말 고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명자씨의 눈이 반짝였다. 깊은 우울에서도 내내 잃고 있지 않던, 희망의 눈빛이었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이번에야 말로! 제발…….’

 큰딸은 이번에 일이 있어 함께 가지 못하고, 작은 딸과 동행하여 병원에 갔다.

 ‘이번에 원인만 알아봐라! 요즘 들어 유난히 힘들어 죽겠다던 남편이랑, 나한테 이래 살바 에 얼른 죽으라던 쌍자랑, 내가 느그들 보란 듯이 얼른 나을끼다!’

 아주 신나는 마음으로 병원에 갔는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처음에 폐암 진단을 받고 받았던 '전뇌방사선'이 원인인 거 같단다. 소뇌위축증으로 보이는데 확실치는 않다고……. 그럴 가능성도 있단다. 그럴 경우 치료 방법은 없다고……. 명자씨 시력이 나빠진 것도 그 영향인 거 같다고 했다.


  명자씨는 그동안 계속 지지 않았는데, 그날 져버렸다.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식사를 거부했고, 처음으로 엄청나게 울었다. 남들이 항상 최악이라 생각하는 순간에서도, 나훈아 노래를 들으며 손가락으로 까딱까딱 박자를 맞추던 그녀가, 모든 희망을 놓아버린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죽음으로 다가가는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병원에 다녀온 날부터 명자씨의 모든 것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손가락 힘이 눈에 띄게 빠져나가더니, 어느 순간부터 혼자 힘으로 핸드폰을 들 수도, 받을 수도 없었다. 음성도 하루하루 빠르게 변해갔다.  발음은 심각하게 뭉개졌다. 사람의 정신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하고 무서운 것인지를 명자씨를 통해 알 수 있었다. 분명 서서히 조금씩 나빠지고 있던 그녀의 몸은, 눈에 띄게 나빠져서 더 이상 손 쓸 수가 없을 지경이 돼 버렸다. 그녀는 어느새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병원에서는 이제 그녀의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했다.


 그녀의 큰딸은 잠시 일을 접고, 그녀의 곁에 머무르기로 했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오로지 한 명만  있을 수 있었고, 그녀 곁에 상주해야만 했다. 명자씨가 요즘 대화하면 제일 즐겁다던 큰딸이 그녀 옆에 있기로 했다. 그녀가 듣든 듣지 않든, 큰딸은 명자씨 옆에서 재잘재잘거렸다. 명자씨는 대꾸도 못하는데 종일 재잘거리다가, 명자씨가 좋아하는 나훈아 노래를 틀어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명자씨는 의식이 흐린 가운데에도 손가락을 까딱까딱했다.

  가끔 큰딸이 “엄마, 나 엄마 엄청 사랑해. 엄마도 나 사랑하지? 우리 모두 엄마 사랑해. 엄마도 우리 사랑하지?”라고 물으면, 온 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코로나 때문에 분명 면회가 금지돼 있는데도, 남편과 작은딸, 언니는 명자씨 병실을 몰래몰래 다녀갔다. 그러다 간호사에게 들켜 혼이 나곤 했다. 명자씨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보러 오려는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임종실에 있는 명자씨는 이제 슬슬 끝이 다가오는 걸 느꼈다. 그러나 큰딸만 있는 순간에 떠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부담을 이 아이에게 지게 하고 싶지 않다. 다른 보호자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는 시간, 까탈스럽지 않은 간호사가 근무하는 시간을 고르면 될 터였다.

  명자씨는 지금이면 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요즘같은 시국에 흔치 않게, 간호사는 남편과 작은딸, 언니까지 모두 부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엄마!!!!!”

  큰딸이 운다. 마음이 아프다. 모두가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남편은 아직까지도 명자씨를 포기하지 못한다. 어깨를 흔들며 눈 좀 떠보라 한다. 명자씨는 그런 남편이  답답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엄마, 이러기야? 크리스마스에 꼭 이래야겠어? 기왕에 버틴 거 좀 더 버티지 그래? 게다가 우리 신랑 지금  휴가철이야. 다음 주에 엄마 죽으면 우리 신랑 한 주 더 쉴 수 있는데, 지금 죽으면 어차피 휴가철에 죽는 거라 쉬지도 못한다고. 기왕에 죽는 거, 다음주에 죽지, 이게 뭐야?”

  모두의 훌쩍거림을 뚫고 들리는 새침한 둘째 목소리

  ‘이 년 말하는 거 보소?’

  명자씨는 하도 어이가 없어서 죽어가는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그 자리에 있던 다른 가족들도 다들 그 말에 어이가 없는지 피식피식 웃는다. 울다가 웃다가 뭐하는 건지. 

그래도 분위기는 한결 부드러워져서 명자씨 마음이 좋았다. 어쩐지 명자씨가 원했던 마지막 같다.

  “그래도 너네 엄마, 복 받는 거다. 이렇게 죽는 사람 없다. 다들 땀을 뻘뻘 흘리며, 진짜 고통스럽게 힘들어하며 죽는데, 너네 엄마 봐라. 진짜 자는 것처럼 죽네. 사는 동안 마지막에 그 고생을 하더니. 그래도 죽을 때는 곱다.”

 명자씨는 언니의 얘기를 마지막으로, 숨을 한 번 크게 들이쉬고는 호흡을 영영 멈추었다.

  작은딸의 소원대로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아슬아슬하게 넘겼다. 덕분에 양력 제사는 크리스마스인 건가?명자씨 덕분에 크리스마스에는 온 가족이 함께 하게 됐으니 그것도 좋았다.

 가족들은 이게 진짜 마지막인가 싶어서 한동안 멍하게 있더니, 정말 명자씨의 육체 수명이 다한 걸 알고, 그녀를 만지고, 안고, 울고, 입을 맞추었다. 이제는 편안하라고……. 편안하라고…….


  지금 명자씨의 일부는, 그녀의 큰딸이 고집해서 목걸이가 되어있다. 그녀의 큰딸은, 어릴 때부터도 명자씨 껌딱지더니, 명자씨가 죽어서도 떨어질 수 없다며 명자씨를 목걸이로 만들었다. 하여튼 유난스러운 년. 그래도 명자씨는 기분이 좋다. 죽자마자 자기를 없었던 존재처럼 잊는 것보다야, 좋을 때에도 슬플 때에도 자기를 떠올려주니…….

게다가 좋은 데 가라며, 이제 더는 아프지 말라며, 100일도 넘는 기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108배를 드린 큰딸 덕분에 살아 생전 쌓은 덕은 빛나고 지은 죄는 씻긴 기분이다.   

  명자씨의 육체 수명이 다한지 2년이 거의 다 돼가는 요즘에도, 씻을 때에나, 잘 때에나,  어디를 갈 때에도 명자씨를 빼놓지를 못하는 큰딸 덕분에, 명자씨는 여전히 가족들과 함께 있다.

 혹독한 시절, 자신을 돌봐준 그녀의 가족들을 이제는 명자씨가 지키려고 한다. 그래서 명자씨는 영원히 지지 않고 그렇게, 그렇게 계속 존재는 중이다.



* 엄마는 투병 1년 반만에 표면적으로는 우리를 떠났지만,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는,  여전히 엄마를 사랑해.


사랑해, 엄마.

지금도 우리 곁에 있을 거지만, 나중에 우리 꼭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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