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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인 Sep 09. 2022

우산은 어디에

비를 막아주세요

비를 피하기 어려운 여름이었다. 이번 여름에는 우산을 다섯 번 잃어버렸다. 그것도 3년쯤 잘 쓰던 장우산과 단우산 2개를 몽땅 잃어버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새로 산 장우산과 단우산 각 1개도 잃어버렸다. 우산마다 잃어버린 배경도 가지각색이다. 도무지 행방을 알 수 없는 검붉은 단우산, 빌려준 친구와 멀리 떨어지게 된 또 다른 붉은 단우산, 빌려준 사람이 잃어버린 장우산. 출장지에서 비 소식을 보고 구입한 단우산은 강연장에 고이 두고 서울로 왔다.


결국 내게 남은 우산은 아이러니하게도 원주인을 알 수 없는 장우산 하나다. 마지막 분실. 친구가 잃어버리고 새로 사온 장우산은 여름 내내 잘 들고다니다가, 며칠 전 옆 사무실의 누군가 들고 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태풍이 와서 복도가 온통 우산으로 가득 찬 날이었다. 가볍고 불투명한 내 우산은 어디가고 무거운 투명우산만이 있었다. 무거움, 투명 모두 취향이 아니지만 달리 선택지가 없어 들고 다닌다. 우산을 잃어버리고도 비는 맞지 않았으니 감지덕지해야 하는 것인가.

폭우


우산의 분실은 아주 흔한 일이다. 우산은 소모품이라는 말을 우스갯소리로 잘 한다. 그렇지만 잘만 쓰던 우산이 우르르 손을 떠난 상황은 미신적 의미를 부여하기 좋아하는 내게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창밖은 가을로 채워졌지만 나는 지금 비가 쏟아지는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비를 매우 싫어하므로, 공사가 다망하다는 뜻이다. 쏟아지는 비를 막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나 어쩐지 잃어버린 것이 더 많다. 투명우산은 크고 튼튼하지만 나를 숨겨주지 못한다. 빗방울이 바짝 다가와서 나를 본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타이밍의 신이 있다면 나에게 억하심정이 있다고 자주 말한다. 백 번 우산을 들고다니다가 한 번 두고 오면 딱 맞춰 비를 맞는 사람이 바로 나다. 이런 이유로 항상 단우산을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우산 유무가 어깨의 피로도에 제법 많이 기여한다. 바꿔 말하면 걱정을 위해 피로쯤은 감내한다. 꼭꼭 숨겨서 가끔 나도 까먹는 나의 걱정. 왜 이리 무겁지, 생각하고 가방 밑바닥까지 헤집으면 그제야 원인이 잡혔다. 근래는 폭우 또는 맑음이라 장우산만으로 그럭저럭 버텼지만, 가벼운 어깨만큼 마음이 무거운 나는 근시일 내 단우산을 살 것이다. 애매한 날씨에 무거운 장우산을 들고 나가면 틀림없이 맑을 것이기 때문이다.


애매함은 내게 문제다. 내 손에 온 애매함이란 언제든 최악으로 변질된다. 그러니 애매하다면 최악을 대비해야 한다. 막을 생각 하지 말고 도망칠까, 사실 늘 바라던 바다. 늘 바랐다는 것은 여지껏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 그때마다 무언가가 발목을 꽉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무언가는 나를 포함한다. 발목이 묶였으면 얼굴을 가리고 고고하게라도 있을 것이지, 나는 투명우산 너머 한껏 찡그린 얼굴을 사방에 흘리며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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