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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인 Nov 12. 2023

그리고 남겨진 것들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2023.11.10 국립극단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 고선웅 각색, 연출


남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내 아이를 죽일 수 있을까? 보통의 부모라면 당연히 불가능하다. 다만 살려야 하는 아이가 고전의 주인공이라면, 고전 속의 부모라면 가능하다. 아이는 영웅이 되어야 하기에 다른 인물은 그를 위해 기꺼이 희생한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중국의 고전극 <조씨고아>를 각색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주인공은 '조씨고아'가 아닌 시골의사 '정영'이다. 복수의 씨앗이자 영웅의 씨앗, 조씨고아의 목숨이 소시민인 그의 손에 맡겨진다.


도안고의 계략으로 충신 조씨 일가의 300명이 멸족하고, 공주가 출산한 '조씨고아'가 조씨 일가의 마지막 혈족으로 남는다. 공주는 탕약을 올리려 방문한 정영에게 아이를 맡기고 자결한다. 궁을 감시하던 한궐 장군은 조순 대감의 은혜를 갚는다며 정영을 보내주고 자결한다. 공주와 한궐은 아이에게 반드시 조씨 일가의 복수를 해달라고 이른다. 도안고는 조씨고아를 찾아 죽이기 위해 온 나라의 신생아를 잡아들인다. 살생을 못해 약초만 캐고 살던 정영에게 너무나 무거운 짐이 주어진다. 공주의 목숨, 한궐의 목숨, 온 나라 아기들의 목숨. 


기어이 정영은 마흔다섯에 얻은 늦둥이 아들과 함께 희생할 각오를 한다. 조씨 집안의 문객이던 공손저구를 찾아가, 정영의 아이 정발을 조씨고아로 속여 바칠 테니 공손저구가 진짜 조씨고아를 길러달라 부탁한다. 공손저구는 역할을 바꿔 자신이 죽겠노라 답한다. 일흔인 자신에게 죽는 것이 쉬운 일이고, 20년을 더 살며 아이를 장성시키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고.


그깟 의리가 뭐라고! 뱉은 말이 뭐라고! 남의 애를 살리자고 자기 애를 죽여?


영웅의 탄생을 향해 순조롭게 굴러가던 이야기를 가로막은 인물은 정영의 처였다. 정영에게 아이를 가로채고 '당신 완전히 정신이 나갔다'며 비난하지만 끝내 정영을 막지 못한다. 정영은 도안고에게 공손저구와 자신의 아이를 넘긴다. 도안고는 정영의 아이를 조씨고아로 믿으며 돌바닥에 내리쳐 죽이고, 공손저구도 모진 고문 끝에 아이를 따라 자결한다. 죽음, 죽음, 죽음. 너무 많은 목숨이 정영의 앞에서 스러졌다.


이제 자네의 아이는 살았어. 웃어, 정영! 웃으라고!


자신의 아이를 죽이고 정영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는다. 죽은 아이와 정영만 남겨진 무대 위. 정영은 아이를 무대 밖으로 빼내려는 묵자(默子)*의 손을 막고 아이를 아내에게 넘긴다. 조씨고아는 정영에게, 죽은 아이는 정영의 처에게. 아이를 빼앗길 때 처절하게 울부짓던 정영의 처는 조용한 자장가와 함께 아이를 묻고는 자결한다. 반드시 아이와 내 몫까지 복수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결국 모두가 정영에게 복수를 남기고 죽어갔다. 조씨고아와 단 둘이 남겨진 정영은 절규하며 아이를 내던지려 하지만. 고아의 울음소리가 그의 손을 멈춘다. 아이와 함께 울부짖는 정영의 모습으로 1막이 내린다.


아이의 죽음 이후 조씨고아를 안고 있는 정영 (https://upinews.kr/newsView/upi202006260057)


원전에서 1막은 서론에 불과하다. 조씨고아가 장성하여 도안고에게 원수를 갚는 시점이 진짜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러나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는 2막의 이야기가 그리 중요치 않다. 의부 도안고가 가문의 원수라는 사실에 고아는 잠시 갈등하지만, 왼팔을 잘라내며 복수를 부르짖는 정영에게 감응하여 복수에 성공한다. 황제 영공이 이번에는 도안고의 구족을 멸하라 명한다. 또다시 죽음, 죽음, 죽음.  


미련해. 정말 미련해. 정영, 자네 인생은 도대체 뭐였어? 다 늙어버렸잖아.


정영은 자신을 비웃는 도안고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다. 그래, 미련했다. 자신을 믿고 죽어간 이들을 외면하지 못해 가족까지 죽게 하고, 자신의 아이 대신 살아남은 조씨고아를 외면하지 못해 20년을 길러냈다. 영광스러운 복수는 정영이 아닌 조씨고아의 몫이 되었다. 정영이 영악헀더라면 다른 결말이 있었을까. 약속을 저버리고 진짜 조씨고아를 도안고에게 바쳤다면. 정영의 진짜 가족이 도안고의 권세를 누리며 안락하게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정영은 그럴 수 없는 사람이다. 비겁할 수 없는 사람이라서, 타인의 죽음을 짓밟는 선택보다 자신의 삶을 짓밟는 쪽이 더 편한 사람이라서. 미련하고 또 유약한 사람이기에 어떤 길을 택하든 불행할 수밖에 없었다. 


복수의 끝에 본래의 이름을 되찾은 조무(조씨고아)는 정영에게 웃으라 한다. 밖에서는 조무의 공을 축하하는성대한 잔치가 벌어진다. 허망하게 서 있는 정영에게 죽어간 이들이 스쳐간다. 조씨 일가, 공주, 한궐, 공손저구.. 그리고 자신의 아내와 아이까지. 목숨을 던지며 정영에게 복수를 맡겼던 이들이지만 누구도 웃지 않고 정영을 지나친다. 


이 세상은 꼭두각시의 무대.
북소리 피리소리에 맞추어 놀다보면 어느새 한바탕의 짧은 꿈....  
금방이구나 인생은.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기를.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았다. 복수의 끝은 허망하다. 그렇다면 '그저 좋게만 사시다 가시'라는 메시지를 '복수하지 말자'고 해석하면 되는 것일까? 그리 좁게 결론을 찾기에는 찝찝하다. 복수의 시발점은 복수를 행하는 자가 아니라 복수를 당할 자에게 있기 때문이다. 가해자를 용서하거나 묵인해야 '좋게만 사는' 삶인가. 우리는 무대 위의 꼭두각시와 같이 피할 수 없는 끔찍한 사건을 만나기도 한다. 할 수 있는 일이란 역할에 맞추어 최선을 다해 뛰노는 것뿐. 사건 이후에도 시간은 흐르고, 그 다음의 삶을 살아낼 수 있어야 한다. 


원전의 정영은 조무가 복수를 이룬 뒤 자결한다. 극 말미에서 정영의 생사는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정영의 허망한 얼굴에는 죽은 이들을 따라가는 쪽이 더 걸맞겠지만, 어쩐지 정영이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겼다. 죽음이 그에게 더 쉬운 길임을 알면서도. 모든 것을 잃고. 복수를 이루고, 허망함이 한 차례 쓸고 간 다음에도 그의 삶에 무언가 남은 것이 있기를 바라본다.



묵자(默子)*: 중국 고전극에서 극의 진행을 돕는 보조 출연자. 관객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로 합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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