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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인 Mar 15. 2024

유언

지금이 아닌 어느 날의

구태여 삶을 끊을 의지는 현재 없습니다. 나의 명은 유한하고 그 끝은 내일부터 수십 년 사이 하나이기에, 삶의 마지막과 그 이후를 바라는 대로 준비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고통스러운 삶, 자유롭지 못한 삶죽음보다 두렵습니다. 의식 없이 살아가지 않겠습니다. 혹여 내게 의사소통이 불가한 날이 온다면 편히 놓아주세요. 


유산이 남는다면 법적 절차를 따르되, 20%는 사회에 환원하기를 바랍니다. 정기후원 중인 단체들에 우선적으로 지급하시면 됩니다. 들보다 조금 더 누리고 살았으니, 모은 돈의 일부는 타인위해 고 싶습니다. 만약 생활동반인이 있다면 사실혼에 갈음하여 처리 바랍니다.


장기기증 희망자 명단에 올해 이름을 올렸습니다. 조건에 맞는 장기가 있다기증되기를 바랍니다. 그리 건강한 체질이 아니지만 간절한 사람에게 쓸모가 된다면 기쁘겠습니다. 부검이 필요하면 망설임 없이 하세요. 명이 다한 순간부터 내 몸은 내가 아니며 나는 거기에 없습니다. 


장 후에는 평범한 유골함, 평범한 납골당이면 충분합니다. 나는 빌딩숲에서 나고 자랐으니 굳이 풍수지리를 따져 산 속에 두지 마세요. 여러분은 내 뼛가루가 있는 곳에 집착할 필요 없습니다. 방문하여 나를 기억해준다면 감사하겠으나 굳이 그곳까지 오지 않아도 됩니다. 나는 무(無)로 돌아갈 것입니다. 사후 나의 '존재'에 가장 가까운 것은 여러분의 기억뿐입니다. 유품도 공간을 많이 차지하지 않게 정리하세요. 제사상은 부디 차리지 마세요. 떠난 이에게 산 사람의 금전과 수고를 많이 들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나무는 어떻게 긴 시간을 살까

스물다섯하고도 반 년을 걸어온 지금, 나는 삶에 큰 미련이 없습니다. 욕심도 있고 행복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얻고 이룬 것 같습니다. 뉴스에 오르내리는 거창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닙니다. 나는 이제 막 사회에 첫 발을 뗀 애송이입니다. 그런데 가야 할 길이 때때로 지나치게 길고 공허하게 느껴집니다. 


나는 매 순간 해야 하는 일을 해왔고 헛되지 않은 결과를 만들어 왔습니다. 앞으로도 그 것입니다. 정확히는 결과가 만들어질 때까지 해야 하는 일을 합니다. 나는 늘 결론을 내고 시작합니다. 삶의 결론도 내 안에서는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내일 죽을 듯이 오늘을 사는 것이 삶을 사랑하는 법이라지요. 이런 나는 삶을 사랑하는 것인지 미워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죽음을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듯이. 훗날의 나는 무지의 청춘 한가운데서 삶을 논한 이 부끄러울 것입니다.


나의 죽음 전후에 피해를 끼친 이들에게는 심심한 사죄를 전합니다. 상실감을 느낄 친지들, 죽음 근처의 나를 발견하고 살리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 이들, 나의 죽음을 확정하며 마음의 짐이 추가된 의료인, 부고를 돌려야 하는 지인들, 그밖에 여파가 닿은 모든 이들에게.


나는 꽤나 고집스럽고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지만, 타인에게 폐가 되지 않겠다는 의지는 명확하게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고통을 주고받지 않는 죽음의 형태에 대해 종종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고민해도 죽음이란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을 아프게 하는 것 같습니다. 살아야 하는 이유는 희미하여도 타인을 괴롭힐 이유도 없기에, 누군가를 위해 내일을 살아내려 합니다.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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