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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ementine Mar 30. 2024

5. 사진과 글의 만남


지난 2월 말.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럽 사진 미술관 (Maison européenne de la photographie)’의 새 전시 Extérieurs, Annie Ernaux & la photographie (바깥, 아니 에르노 & 사진) 오픈식에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아니 에르노의 팬을 책을 대부분 다 읽었을 정도로 그의 팬을 자처하는 나에게는 너무나 설레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들어본 사람도 있겠지만, 아니 에르노는 사진작가가 아닌, 문학 작가이다. 또한, 2022년 노벨 문학상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미술관에서 문학 작가를 타이틀로 건 전시를 구성했다는 것은 굉장히 신박한 구성이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작업 세계를 조금 알고 있다면 어쩐지 고개가 끄덕여는 이유는, 그녀의 글이 종종 사진을 동반했기 때문이다.


아니 에르노는, 2005년, ‘사진의 용도’라는 책을 출판하며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

덧없는 아름다움을 살려내고, 붙잡아 두는 것,
그것이 이 사진들의 첫 번째 용도입니다.


이 책은 사진작가였던 그녀의 남자 친구와 함께한 일종의 합동 작품으로, 연인의 내밀한 시간과 사랑의 흔적을 사진을 통해 기록하고 이를 글로 묘사하고 있다. 반면 유럽 사진 미술관에서의 아니 에르노의 글은 그녀의 다른 서적 ‘바깥 일기’를 다루고 있다.


‘바깥 일기’는 주관적 시선을 배제하고 객관적인 묘사를 통하여, 그녀가 보고 겪은 일상을 기록한 책이다. 아니 에르노의 특징적인 지극히 사적이고, 일기장을 엿보는 듯 아슬아슬한 문체와는 다르게, 사실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려는 시도에서 쓰인 묘사를 담고 있다. 이는 유럽 사진 미술관이 전시 소개문에서 담고 있는 것처럼, "사진을 찍는 것처럼" 글을 쓰려는 그녀의 시도를 보여준다. 사진과 글을 함께 담은, ‘사진의 용도’와는 다르게 이 책은 사진을 한 장도 포함하지 않지만 어느 부분에서 사진과 닮아있는 것이다. 유럽 사진 미술관에서는 소유하는 자체 컬렉션과 그녀의 글의 교차점을 발견하고자 한다. 따라서 사진은 아니 에르노의 글에 영감을 받아 선정되고, 분류되었고, 책의 인용 문구는 하나의 '사진'처럼 사각형의 인쇄물로 여러 사진 작품들과 함께 벽에 전시된다. 원래 따로 존재했던 이미지와 글의 만남을 통하여, 사진과 문학의 연관성을 제안하는 전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출처 : https://www.rfi.fr/fr/culture/20240229-l-%C3%A9crivaine-annie-ernaux-et-la-photographie-des-m o


글과 사진과의 연관성은 프랑스의 현대 예술가인 소피 칼의 작품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소피 칼은, 다양한 픽션, 또 논-픽션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만들고, 이를 사진과 텍스트를 결합한 형태로 보여준다. 이러한 그녀의 창작 스타일 때문에, 소피 칼의 작품은 꼭 책의 형태로 완성되고 그 자체로 또 다른 예술 작품으로 남는다. 그녀의 작품 세계를 슬쩍 엿보자면, 책 1994년 처음 원서로 출판되었던, ‘진실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제목처럼, 이는 소피 칼이 어릴 때부터 마흔 즘까지 가지고 있던 내밀한 추억을 담고 있다. 특히 왼쪽에는 사진, 오른쪽에는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 글을 병렬시키는 페이지 구성을 통하여, 텍스트와 사진 어느 하나에 더 치우치지 않고, 두 가지의 역할을 동등하게 다룬다.




- 아래는 직접 위 사진 속의 페이지를 번역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어판도 쉽게 구할 수 있다.) :

우리는 열한 살이었다. 아멜리와 나는 매주 목요일 오후, 14시에서 19시 사이, 체계적으로 백화점에서 좀도둑질을 했다. 그렇게 1년이 흘러갔다. 어느 날, 의심을 품은 아멜리의 엄마는, 우리를 발견한 경찰관이 방문했었지만, 우리가 어리기 때문에 두 번째 기회를 줄 것이며, 우리 근처를 따라다니기 때문에 우리가 도둑질을 멈추면 용서해 주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지어냈다. 우리는 그 후 몇 주 동안, 주변의 모든 남자들 중에서 우리를 뒤쫓던 경찰관이 누구인지 추측하려고 노력하다가 그를 찾았다고 생각했을 때 그를 따돌리는 놀이를 했다. 우리는 더 이상 도둑질을 할 시간이 없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훔쳤던 것은, 우리에게는 너무 큰 빨간 신발 한 켤레였다. 아멜리는 오른쪽을, 나는 왼쪽을 간직했다.


이러한 사진과 텍스트의 만남은, '포토로망'이라는 분야를 대표하는 듀안 마이클의 사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포토로망은 사진(Photo) + 이야기(Roman)의 합성어로 ‘이야기가 있는 편집된 사진들’을 의미한다. 듀안 마이클의 사진은 주로 글 없이 여러 장의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내지만, 그의 작품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아래의 이미지이다.



“이 사진이 보증한다. 분명히 우리는 좋은 관계였고, 그녀가 나를 안고 있고, 우리는 너무나 행복해 보인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감싸던 오후의 햇살이 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며, 그녀가 나를 사랑했었다. 이 사진은 그때의 우리를 보증한다.”


텍스트의 형태는 다양하다. 소피칼과 아니 에르노처럼 긴 에세이, 듀안 마이클의 시적인 문장 외에도, 몇 가지의 단어로도 충분할 때도 있다. 미국의 현대 미술 작가, 짐 골드버그는 일상의 순간들을 촬영한 다양한 포맷의 사진들, 또는 아카이브를 콜라주와 메모 등을 통하여 재구성하는 작품을 통하여, 글과 사진의 상호 작용을 보여준다. 우리는, 텍스트와 이미지를 함께 받아들일 때, 그의 작품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진은 직접적인 상황을 증언해 주는 기록의 목적으로 시작된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예술 사진이 도래한 이후, 우리는 다양한 형태의 사진을 만나고, 이는 때로는 모호한 지각의 경험을 가져다준다. 때문에 시각 매체와 문자의 만남은 다 매체 시대에서 서로를 보안해 주며 창작자에게는 더욱 다양한 표현 가능성을 열어주는 동시에, 관람자에게는 풍부한 정보를 선사한다.



참고 자료 및 사이트 :

- 유럽 사진 미술관 사이트 : https://www.mep-fr.org/event/exterieurs-annie-ernaux-et-la-photographie/ 

- https://www.fredericlecloux.com/images-et-texte-texte-et-images/

- « Rencontre avec Annie Ernaux et Marc Marie, à l’occasion de la parution de L’Usage de la photographie (2005) », consulté le 5 mars 2013, http://www.gallimard.fr/catalog/Entretiens/0105232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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