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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다강 Aug 11. 2022

당신에게는 사이드 프로젝트를 권하지 않습니다

여성 인터뷰집 프로젝트, 작업실 이야기

여성 인터뷰 프로젝트 ‘끗질’

“언니도 언니가 필요하니까”

끗질은 중장년 여성들의 목소리를 조명하는 여성 인터뷰 프로젝트다. 시즌1에서는 4050 언니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단행본에 실린 인터뷰 전문 외에 프로젝트에 기획부터 언니들을 만나는 과정을 담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릴레이 연재로 소개한다.     







텀블벅을 오픈하자 지인들이 반쯤 농담삼아 ‘작가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고생했다, 수고했다는 말도 함께. 한바탕 칭찬 감옥에 시달리고 나자 책상 위에 버려둔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몇 줄 채워지지 않은 한글 파일과 깜빡이는 커서. 원고 작업은 며칠째 제자리다. 수면 위 우아한 백조의 모습과 그와 반대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발이 머리를 스쳐간다. 남들이 보기에 끗질은 이미 어엿한 작가일지 모르겠지만 책 출간까지는 갈 길이 멀다. 10월에 따끈따끈한 책을 받아보는 날을 기다리며 마지막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끗질의 작업 풍경을 소개한다.




매주 일요일 오후에 만나요


7월의 끗질 회의 달력... 후...

끗질은 매주 2~3시간 가량 회의를 한다. 대면 회의는 일요일, 비대면 회의는 대개 월요일에 진행한다. 인터뷰이를 발굴하고 섭외하는 일부터 마케팅 채널에 올릴 콘텐츠 회의를 거쳐 요즘에는 메인 콘텐츠인 원고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눈다. 회의 안건이 별로 없다고 생각한 날에도 회의를 마치고 나면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다. 회사에서 프로젝트 시작을 앞두고 내용 공유를 위해 두어번 회의를 열긴 해도 하나의 프로젝트로 이렇게 자주 모여서 의견을 나눠본 적이 없었다. 매주 모이는 게 시간 낭비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었다.


회의는 아이디어를 꺼내는 일이기도 하지만, 서로가 얼마나 불일치하는지 알아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분명 얘기된 부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일을 진행하다보면 조금씩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빨리 가려면 혼자,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맞다. 혼자였다면 의사결정은 훨씬 빨랐을테지만 이렇게까지 일을 벌리지도 않았을 거고, 할 수도 없었을 거다. 여럿이 의견조율하는 과정은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한명이 축 처져있을 때 나머지 셋의 응원에 기대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예컨대 지난 3주간 건초염으로 손목 통증이 심해 양치질도 왼손으로 할만큼 일상생활이 힘들었는데, 우선 회복에 집중하라고 말해주는 세 멤버를 믿고 정말 푹 쉬었다. (흐흐) 돌이켜보면 일면식 없는 사람들이 수익성 0의 프로젝트로 모여 큰 불화 없이 이만큼하고 있는 게, 이 주간회의 덕인 것 같다.



열린 글을 쓰게 하는 피드백


지금은 원고 작업이 한창이다. 각자 인터뷰 원고를 온라인에 공유하면 나머지 셋이 댓글로 피드백을 남기는데, 이게 제법 재미있다. 서로 놓친 부분을 바로 잡아주거나 내가 하려던 말을 다른 멤버가 정확히 먼저 달아준 댓글을 발견하면 묘한 쾌감을 느낀다. 읽다가 웃긴 부분에는 ‘다시 봐도 웃김 ㅋㅋ’이라고 흔적을 남기기도 하고, 독자 입장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엔 ‘내가 독자라면 이 부분 사진 찍어서 인스타에 올린다’는 식으로 피드백을 한다. 아는 내용이라 불친절하게 쓴 부분도 멤버의 눈으로 다시 읽으며 다듬는다.


다강과 은진은 가끔 마음이 맞고
대체로 마음이 맞지 않는다


피드백을 받고 글을 수정하다 보면 열린 글을 쓴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다. 글을 써본 적은 많지만, (부끄럽게도) 이만큼이나 읽히려고 작정하고 쓴 적은 없었다. 인터뷰이의 말과 그걸 읽는 독자의 눈 사이에서 인터뷰어의 개입은 사라지고 매끄러운 문장만 남았으면 좋겠다. 초조한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오늘도 부끄러운 글을 먼저 읽어준 멤버들의 힘으로 고치고, 또 고쳐본다!



사이드 프로젝트, 내가 해봐서 아는데…


반년 이상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며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일의 방식을 돌아보고, 그렇게 깨달은 걸 적용해 보기도 했다. 눈 감고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일을 새롭게 보고, 낯설게 일하는 중이다. 분명 더 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마음가짐 하나 달라졌다고 일이 달라진다.


그럼에도 사이드 프로젝트를 권하지 않는다. 노동은 관성이 붙어서 어느새 돈 한 푼 안되는 일에 진심을 다하게 된다. (텀블벅 후원 달성 목표는 100만 원이지만, 실은 500만 원이 되어야 본전이다. 그것도 우리 인건비는 빼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렇게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라니. 일은 열정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꼭 해봐야 아나?


직장에서의 퇴근은 사이드 프로젝트로의 출근이다. ‘얼른 퇴근하고 집에 가서 일해야지’라는 소리가 어색하지 않게 된다. 앞뒤로 공휴일이 붙은 주말이면 일할 시간이 늘었다고 기뻐하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까 주경야독이 아니라 주경야경?


남들이 미라클 모닝이라고 기상 미션을 할 때, 미라클 회의를 할 수도 있다. 겨우 넷이 일주일에 한 번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아침에 퉁퉁 부은 얼굴로 회의하고 출근할 수도 있다.



그래도 굳이 하고 싶다면


끗질은 우리보다 앞서 길을 걸은 언니들의 삶이 궁금해서 모였다. 언니들이 삶이 궁금해진 건, 내 삶에 찾아온 질문에 답을 얻고 싶어서다. 삶에 질문이 생긴 건, 이 생을 더 잘 살아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아닐까?


그래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한다는 건,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았다는 말과 같다. 기왕 사이드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면, 골몰해서 찾아낸 뾰족한 질문이 의미있는 프로젝트로 이어지길 바라본다. 그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또 어떤가. 넘어져봤자, 우리는 성장하며 언니가 될 뿐인 걸.



PS. 이 시대 최고의 사이드 프로젝트 레퍼런스, <우리는 넘어지며 언니가 된다> 후원하러 가기 (후원 아직 늦지 않았다구요!)




[끗질 뉴스레터]

격주 화요일마다 끗질의 활동과 인터뷰 이야기를 담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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