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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Apr 17. 2024

섬휘성 허공꽃

반짝이는 것에 대한 반성

세상 어떤 보석이 이보다 찬란하고 아름다운 빛을 발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렇게 반짝이는 보석이 내 손안에 있거나 내 눈앞에서가 아니라 눈 속에서 느껴진다면? 그리고 어디를 보든, 보이는 사물의 한 편이 밝은 색선의 반짝임으로 가려져있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도 피할 수 없다면? 현란하게 빛나는 불편함을 보면서 반짝인다고 다 보석은 아니라지만, 보석은커녕 반짝임이 없어지길 바란다. 눈부신 반짝임이 내부에서 자각된다면, 그건 병이다. 


다행히 통증은 없다. 다만 성가시고 불편하다. 어두운 곳에서도 빛이 나타나고, 눈을 감아도 여전히 밝으며, 밝은 낮에도 아롱거리며 빛난다. 시야를 방해하는 섬광 같은 무기개 빛이 계속 아른거린다. 


어려서 안경을 낄 만큼 눈건강이 나쁜 내게 이십 대 초반에 처음으로 섬휘성 암정이 나타나 잠시동안 시야 결손이 생겨 당황했었다. 책을 보기 힘들어 초점을 다른 곳으로 둬야 글자가 보였다. 그러나 글을 읽을 수는 없었다. 놀란 마음에 안과 진료를 받았으나 원인을 찾지 못했다. 아니 원인을 찾을 수없는 증상이라고 했다. 치료법도 대증요법으로 겨우 넘겼다. 후에 다시 이런 증상이 나타났을 때 이건 안구의 질환이 아님을 알고 안심을 했지만, 눈의 이상이 아닐 뿐이지 불편함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구조적 질환이 아니라면 기질적 요인이요 신경의 문제일 수 있다. 이상 반응이 나타난 것은 눈피로와 신경 예민 또는 수면부족과 같은 과로로 인한 과민반응 등이 복합적 원인일 수 있으리라 추측해 본다. 늘 똑같은 과정의 반복은 아니지만, 암점이 뚜렷해지기 전에 광자 알갱이 같은 작고 조그만 동그란 빛이 어둠 속에서 먼저 나타난다. 그 광자는 시야의 어느 한 부분에 나타났다가 점점 커지면서 증상이 심해지는 과정을 밟는다. 


이젠 광자나 나타날 때 미리 알아차리고 눈을 감는다. 꼭 누워있을 필요는 없지만 눈을 감아야 한다. 생각을 쉬어야 한다. 한동안 가만있다 보면 빛 알갱이는 저절로 사라지고, 허공꽃은 꽃을 피우지 않는다. 놀랄 일도 아니다. 다만 눈과 신경의 피로와 감정의 동요가 눈의 자극을 일으킬만했어도 알지 못했구나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통증이든 감각장애든 뭐든 영원 지속은 없다. 느낌의 증감이 있고 감각의 강약이 있을 뿐이다. 다행인 것은 잠들어 있을 땐 통증이든 장애든 어떤 증상이 있는지 모른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나도 모르게 잠들어 있는 동안에는 모든 감각이 모든 생각이 쉬어진다. 꿈도 없는 깊은 잠 속에서 나는 없다. 내가 없으니 고통도 없다. 신기하고 감사한 일이다. 그러다 새벽 어렴풋 깨어날 때쯤, 잠에서 깨어나면 그 고통이 지속될까 두렵기도 하다. 그래도 일어나게 되고 그렇게 증상에서 벗어난다.


원인이 될 만한 일을 내가 만들고, 내가 만들면서 내가 만든 지도 모르고, 그렇게 쌓이고 누적되다 어느 순간에 나타난다. 증상이 나타날 한계에 다다라서 그럴 수도 있고, 그 쯤에 알 수 없는 다른 연관된 무엇으로 드러날 수도 있다. 통증이든 막힘이든 고통이든. 그러니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더 와닿는다. 그리고 지나가길 기다린다. 더 좋고 나아지길 바라는 게 아니라 별일 없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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