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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월 Aug 12. 2024

가로와 세로

맞상대와 결과물만 남겨두고

차 한잔을  사이에 두고 

검도 관장과 마주 앉았다

검술이 스포츠의 일부로 들어가면서 그 본연을 잃었지만

칼의 속성은 베고 찔러 상대를 이기는 것

현실을 수용하여 도장을 열지만 

마음속엔 무예인에 대한 자부심이 있노라며


서로 칼을 겨누고 서있다

눈빛으로 기세 싸움을 하고

칼 끝으로 전해지는 미동이 감지된다

정중동의 발동작에 부러 툭툭 반응을 살피다

흔들기로 허점을 찾아 그 틈을 치고 들어간다

공수 어느 하나에만 치중할 수 없다

공격이 수비요, 수비로 공격을 막아낸 순간이 공격 타이밍


서로 목숨을 걸고 싸우자고 만났으니

일합의 결과로 살아있거나 죽거나

말없이 누운 가로와 헐떡이며 살아 있는 세로

시비 승부 모두 무의미하다

서로 세로로 만나 하나의 가로와 하나의 세로가 남는다 


그의 세계관으로 본 나의 직업은 

상대로 만나는 대상과의 첫 대면 자체가 비대칭이다

가로로 누운 자와 세로로 선 자에서 시작이다

무장해제되었을 뿐 아니라 맨살까지 드러낸 가로

온갖 권위와 치료라는 이름으로 가공의 무기를 든 세로


죽여주시오 하듯 누워있는 가로에게

세로는 어떻게 하든 가로를 세로이게 하려 한다나

이미 가로로 누운 자에게 차마 부활을 시도하는가

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게 더 어려워 보이긴 하는데 

이게 무슨 유치한 흑백 논리도 아닌 

툭 뱉으려다 삼킨다, 재밌는 발상이네


그도 오죽 답답했으면 가로를 자청했겠나

그런 가로를 세로 이게끔 도와줄 뿐

차를 권하며 한마디 보탠다

그럼 앉은 우리는 살은 건가 죽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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