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바가지

대리할 사람이 없어 답답한

by 노월

그 인간이 간 지 오래지 않아서 그런지 같이 있을 때가 생각나지만 꼭 그리운 건 아냐. 내가 식당을 한다고 하고 일을 벌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뒤도 안 돌아보고 바로 직장을 때려치우더라고. 좀 빨리 잘살아보겠다고 식당을 한 거지 뭐 내가 바깥일에 안달 나서 그런 게 아닌데 식당 한다니까 좋을 데로 하라고 하더니 얼마 되지 않아 얼씨구 사표를 내고 나왔지 뭐야. 내가 알기도 전에 일을 저질러버리고는 출근을 안 하는 거야. 내가 퇴직 못하게 막을 줄 안 거지. 어쩜 그렇게 말 한마디 상의도 없이 그렇게 후딱 해치우는지. 안팎으로 둘이서 벌어 좀 편하게 잘 살게 될 줄 알았는데 참 나.


남들 못 들어가서 부러워하는 대기업을 말이지. 그도 벌고 나도 벌면 얼마나 좋아. 그런데 내가 제법이니까 오히려 얼굴이 좋아. 그런데 막상 그가 할 일이 뭐야. 남자가 식당일을 어떻게 알아. 기껏 내가 장 보고 오면 무거운 것 좀 들어 내려주고 가끔 배달해 주는 거 말고는 할 일이 없어. 뭘 할 줄 아는 게 있어야지. 잡일만 좀 도와주고는 빈둥거리는 한량이었지. 그 양반은 직장 다니는 게 그렇게 싫었나 봐. 보니까 내 영감만 그런 것도 아니더구먼. 왜 남자들이 그래? 될 수만 있다면 다들 셔트맨이 되려고 하고.


팔자려니 하고 그냥 뒀더니 다른 직장 구할 생각은 아예 않고 그대로 집안에 눌러앉아버리더라고. 내가 손이 좀 맵고 깔끔하거든. 정갈하고 맛이 좋으니 단골도 생기고 장사도 그럭저럭 꽤 괜찮았지. 그렇게 살면서 큰돈을 번 건 아니지만 돈에 대한 걱정을 덜었으면 일 도와주는 것도 별로 없으니 그가 자기 몸이라도 잘 챙기면 좀 좋아? 운동이라도 하라고 하면 귀찮아하고. 식당일 끝날 즈음에 슬금 들어와 술 마시는 게 다야. 다른 사업한다고 일 벌이지 않은 게 다행이라고 할까. 딴에 자기도 사장하고 돈 번다고 딴 데 눈 돌리거나 꼴값하지 않은 게 그나마 고맙지. 근데 그게 돈이 좀 모이는가 싶으면 딸년이 그렇게 제 앞가림 못하고 손을 벌려. 죽겠다는데 어떻게 해. 새 나가는 건 어떤 식으로든 빠져나가나 봐. 나만 죽어라 도마질했지.


그렇게 세월이 흐르더니 글쎄 그 인간이 당뇨가 심하게 와서 합병증으로 병원을 얼마나 들락날락거렸는지 몰라. 참 오래 시달렸네. 심심하면 응급실행이었지. 저혈당 쇼크가 그렇게 무섭더구먼. 식은땀을 쫙 흘리며 눈이 풀리고 정신을 못 차리고 몸을 떠는데 뭐 방법이 있어야지. 얼른 일일구 불러 병원 가서 그렇게 며칠 몇 주 입원하고 퇴원하면 정신 좀 차려서 관리를 잘해야 할 거 아냐. 그렇게 시달려도 며칠 반짝하다 또 하던 버릇으로 돌아가. 난 일하느라 바쁘니 그가 뭘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잔소리를 해도 처음엔 말을 듣는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중엔 내 말을 듣기 싫어하다 결국 너는 짖어라 나는 모르겠다 돌아 앉는 거야.


합병증으로 신장이 망가져 투석하고, 눈에 망막인지 시신경인지 문제가 생겨 수술을 해도 잘 못 봐. 시력이 떨어지고, 밤새 다리 저리다고 그렇게 나를 괴롭히더니 마지막엔 입원해서 두 달가량 있었으려나. 안 되더라고. 그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속 썩을 일 없어 시원할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게 안 됐더라. 영감이 일찍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 밑에서 자라온 성장과정부터 죽 떠오르는 게 참. 특히나 오늘 같은 날은 한 번씩 생각나. 일은 바쁘고 허리도 아프고 하루 종일 서있느라 다리가 퉁퉁 붓고 힘들어 입에서 단내가 나는 날엔 영감이 생각 나.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 잔소리를, 내가 하고 싶은 욕지거리를 들어줄 사람이 그 인간 밖에 더 있겠어? 그게 좀 아쉬워. 내 말을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게 이런 건 줄 몰랐네. 허공에다 소리 지를 수도 없고. 영감이 반찬이란 말이 있지만 그건 밥상 차리는 일이 내 입에 대충 먹는 걸 그나마 챙겨주는 일이지만, 내 긁는 소리를 들어줄 영감이 또 필요한 줄은 몰랐어. 그렇다고 그걸 딸에게 할까? 그랬다간 딸년은 다신 나를 보러 오지 않으려 할 거고.


영하의 날씨도 일하느라 바쁘면 추운 줄 모르겠고, 일 끝나면 병원 쫓아다니느라 바빴어도 한숨 자고 나면 잊어버리고, 내가 그렇게 불평을 해대도 끙하며 등 돌려도 들어주니 풀렸는데. 불 끄고 텅 빈 홀에 혼자 풀썩 앉아 밖에 눈바람 부는 소리가 문 틈새로 우웅우웅 들려도 힘들고 서럽고 무섭다는 얘기받아줄 이 없는 게 참 아쉬워. 허전함을 모르고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는데, 아무 일없이 말없이 앉아있기만 한 영감이었는데도 이제 불러도 없고 내 욕을 들어줄 이 없으니. 그렇게 삭여왔는데 시다 못해 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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