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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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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혜 Jun 26. 2024

반짝이는 수요일

장마가 다가온다

글모닝! 음악을 듣고 있어요. 맑은 음성이네요. 아침은 산책하고 피아노를 조금 쳐야겠어요. 열여섯 살엔 어린이 예배부터 성인 예배까지 반주를 했더랬어요. 정교하진 않아도 곧잘 성실하니까요. 툭하면 교회 가서 피아노를 쳤던 기억이에요. 


반주에 참여한 건 중학생 때였어요. 일곱 살부터 피아노를 배웠는데요. 꼬꼬마 시절엔 피아니스트가 꿈이라고 노래했지요. 열 살이 넘는 길목엔가, 엄마 말에 상처받은 기억이 나요. 그건 '네가 피아노 치는 소리'가 듣기 싫다는 말이었어요. 단어는 변형되었을 가능성이 있어요. 기억이란 건 원래, 믿을 게 못 되는 거 아시지요.


어떻든 엄마의 표정과 말투가 담긴 그 장면은 마치, 영화처럼 제게 남아서요. 피아노는 그즈음부터 멀어졌어요. 핑계가 좋았지요. 열여섯, 우연히 다니게 된 교회에서 피아노와 재회할 줄이야. 손바닥만치 작은 교회였어요. 평일에도 혼자 열쇠로 문을 따고 들어갔어요. 불도 켜지 않고 피아노를 쳤네요.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에요. 가능성이 많은 날들엔 무릎이 꺾이는 마음도 자주 만나게 되지요. 몰입하고 사색할 시간이 필요했을 거예요. 그때 피아노가 제겐 도피처이자, 숨구멍이었어요.


일 년 즘 됐나, 엄마를 전도하라고 하셨어요. 그게 화근이 됐던 것 같아요. 저희 집은 모태 신앙이에요. 어려서는 성당에 다녔지요. 집에서 더는 교회를 가지 못하게 하시더라고요. 성인이 되고 자아가 여물거든 마음껏 다니라고요. 나중은 전도사님이 엄마를 두고 사탄 역할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오죽 충격이면 악몽을 꾸었을까요. 아직도 그날 꿈이 선명해요.


주말부터 비소식이 들리네요. 다음 주 내내 비가 내릴 예정이에요. 제멋대로 머리를 휘감고 흙땅은 물결칠 테죠. 벌써 마음이 가라앉으려 해요. 다행인지 약속은 조금 잡혀 있어요. 사람에게 기대는 수밖에요. 비행기 타고 도망가고 싶은 생각을 가만 바라봅니다. 일상에서 찾지 못하는 자유와 평안이 거기 있을 것 같은 거예요.


지금 여기 없다면 어딜 가도 없음을 잊지 않으려 해요. 해방감을 느끼는 까닭은 문제를 보지 않거나, 눌러서예요. 여행을 핑계로 잠시나마 가면을 내리기 때문이고요. 무엇보다 '경험'에 초점을 두려니, 머리가 아닌 가슴이 생생해집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불가능한 일일까요?


퇴고하는 중입니다. 어제 종일 글에 파묻힌 건 제가 쓴 글이었어요. 오늘은 좀 더 걷고 움직일게요. 눈부신 햇볕도 즐기렵니다. 오후 늦게 글로(glo) 읽다, 모집 글을 올릴 예정이에요. 한 달 한 권, 같이 읽는 독서모임입니다. 관심 있게 살펴봐 주세요. 느슨하지만 반짝이는 수요일이시길.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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