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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로 Jul 28. 2022

지극히 주관적인 마산의 3대 떡볶이

어릴 적 먹던 추억의 음식

초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나의 분식 바운더리는 학교 앞, 혹은 학원 앞 떡볶이집이 전부였다. 머리가 조금씩 굵어지면서 용돈을 모아 버스를 타고 창동까지 시내 구경을 나가기도 했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팬시점 구경을 하고, 머리핀, 다이어리 속지 따위를 샀다. 시내 구경의 마지막은 롯데리아 같은 햄버거집에서 햄버거 세트를 사 먹거나 부림시장까지 가서 떡볶이를 사 먹는 것이었다. 그 시절 다녔던 학교 앞, 학원 앞 떡볶이 집들은 대부분 없어졌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서까지도 종종 다녔고, 타지에 생활하면서도 종종 생각나는 떡볶이집 3곳은 여전히 영업을 하고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1. 6.25 떡볶이


"마산 떡볶이"라고 할 때 가장 유명한 것은 이 떡볶이 가게일 것이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이 집은 좌판에다 냄비 두 개를 걸어놓고 떡볶이를 팔았다. 떡볶이 냄비를 둘러싼 목욕탕 의자에 앉으면 무릎 위에 얹을 신문지 한 장을 받았고, 화분 받침에 담긴 국물 떡볶이 한 접시가 나왔다. 떡볶이에는 떡보다는 어묵이 많고, 삶은 달걀 한 개가 있었다. 어묵은 서울 지역에서는 떡볶이에 잘 넣지 않는 봉 어묵을 어슷하게 썰어 넣었다. 그리고 특이하게 떡볶이의 채소 고명으로 시금치도 들어간다.


이 집의 떡볶이는, 떡볶이의 맛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매콤한 맛 혹은 달콤한 맛 두 가지 모두 강하지 않아 싱겁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슴슴한 국물과 함께 떡과 어묵을 떠먹으면 속이 따뜻해진다. 그렇게 먹다가 달걀을 으깨 먹으면 국물 맛이 묵직하게 변하는데, 이 묵직한 국물로 떡볶이를 마무리하고 가게를 나서면 추운 겨울에도 춥지 않다.


어느 순간 좌판 떡볶이집은 부림시장의 상가에 당당히 가게를 내어 들어가 있었다. 사실 좌판에서 장사를 할 때에는 자주 가지 못해 떡볶이만 팔았었는지 다른 것들도 팔았었는지에 대한 기억은 명확하지 않다. 가게로 이전한 6.25 떡볶이 집에는 떡볶이도 팔고, 김밥도 팔고, 순대도 판다. 그리고 이 집에는 잡채도 팔았다. 먹어 본 적은 없지만 옆에서 먹는 것을 보니, 당면에 시금치, 어묵 등이 들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이곳에서 떡볶이를 다 먹고 나오는 길에 식혜도 한 잔 시켜 들고 나와 시내 구경을 하면서 한 모금씩 마시곤 했다.


이 떡볶이집 주변으로 해서 떡볶이 골목이 형성되어 있었다. 남편과 연애를 하던 시절, 예쁜 카페를 찾아가기도 했지만 부림시장 떡볶이 가게로 그를 끌고 가기도 했다. 관사에서 함께 지내던 이웃들이 진해로 발령이 났다고 하면, 떡볶이를 좋아한다면 이 떡볶이집에 꼭 가 볼 것을 권한다. 가끔씩 진해에서 사는 지인들에게 이 떡볶이집의 떡볶이 사진과 함께 안부 연락이 오면 참 반갑다.


2. 창동 시장 길거리 리어카 빨간 떡볶이


이 떡볶이는 창동 떡볶이 골목으로 가는 길의 초입에 길게 늘어선 떡볶이와 토스트 등을 파는 리어카의 떡볶이이다. 떡볶이의 국물은 거의 없고 양념은 시뻘겋다. 짧은 가래떡이 들었고, 여기에도 기다란 봉 어묵을 어슷 썬 어묵이 비닐을 씌운 접시에 담겨 나온다. 찹쌀고추장의 맛이 진하게 느껴지고, 매콤한 맛이 강한 편이지만 색깔에 비해 매운 편은 아니다. 그래도 먹다 보면 매콤함이 올라오는데, 그럴 때에는 어묵 국물을 떠서 마시면 매콤한 맛이 씻겨진다. 리어카에 앉아 떡볶이를 먹고 있으면, 떡볶이 판을 들고 판 아래 육수에 담가놓은 떡과 어묵을 양념에 섞어 떡볶이를 만드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른 떡볶이집들은 저녁 시간이 지나면 문을 닫았지만, 이 리어카 빨간 떡볶이는 야간에도 영업을 하는 곳이 있었다. 그 리어카 떡볶이 집은 불 꺼진 어둑한 시장이 아니고, 장사가 끝난 창동의 중심거리에 밤이 되면 나와 장사를 했다. 고등학교 시절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출출하면, 책가방을 매고 창동까지 걸어가 이 빨간 떡볶이를 먹고 학원으로 가기도 했다. 학원 수업이 끝나면 차량 운행까지 해 주시는 선생님을 졸라 다 함께 창동으로 몰려가서 빨간 떡볶이를 먹고 12시가 훨씬 넘어 집에 도착하기도 했다. 여기서 먹는 떡볶이도 맛있었지만, 함께 파는 부추전도 참 맛있었다. 이 리어카의 사장님은 참 인심이 좋으셨는데, 항상 시킨 것보다 더 얹어 주셨다. 떡볶이를 시키면 맛보라며 순대와 부추전도 주셨고, 순찰하며 지나가던 의경들을 불러 순대를 한 봉지씩 손에 쥐어 주시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이 집에는 언제 가든 리어카를 둘러싼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참 많았다.


우리 집엔 나 빼고 모두 마른 사람들만 살고 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의 고기 보태기 먹보 통통이었다. 아주 오랜 기억에는 엄마가 애가 마르고 자주 아파서 걱정이다 라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분명히 있고, 밥 잘 먹는 한약이라며 한의원에서 약도 지어먹었다. 워낙 집 식구들이 날씬했어서 그렇게 불렸던 억울함(?)도 어느 정도는 있었는데, 고 2 겨울방학 때 나는 정말 어디 내놔도 통통이가 되었고, 교복을 새로 해 입어야만 했다. 우리 집의 통통이에서 동네 공식 통통이가 된 데에는 밤늦게 먹어 댄 이 빨간 떡볶이의 지분이 상당하다.


3. 댓거리 떡볶이 뱅크


위의 두 떡볶이 가게가 부림시장과 창동에 있다면 이 가게는 댓거리에 있다. 이 집을 처음 가 본 때는 중학교 2학년 가을이다. 그때쯤 생긴 집이고 2000년 무렵부터 영업을 했으니, 창동 떡볶이에 비하면 신식 가게지만, 그래도 20년이 넘은 가게이다. 댓거리 위쪽에 새로 생긴 아파트 단지에 함께 살던 친구들과 함께 자주 갔던 집이다.


이곳의 떡볶이는 위의 두 곳에 비해 조금 보편적인 모양과 맛의 떡볶이이다. 국물이 많은 떡볶이인데, 어느 지역에나 있는 납작하고 네모난 어묵을 썰어 넣었다. 채소 고명으로 파를 잔뜩 넣어 어묵과 파를 함께 집어 먹으면 개운한 맛이 참 좋다. 이 떡볶이는 후추 향이 나고, 매운맛보다는 달콤한 맛이 강하다. 이 떡볶이 집에서는 혼자 가도 군만두를 꼭 시켜먹어야 한다. 사실 나는 냉동 만두는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이 집에서는 꼭 만두를 함께 시켜 먹었다. 매콤 달콤하고 개운한 떡볶이 국물에 담가 먹는 만두의 맛이 참 좋다. 그리고 얇고 양념이 밴 어묵에 떡볶이 국물을 가득 머금은 만두를 써서 먹으면 맛이 참 좋다.


현재까지도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와도 이 떡볶이들을 함께 먹으며 유년 시절을 보내었다. 나도 친구도 먼 타지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마산에 대한 그리움을 이야기할 때면 이 떡볶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꼭 나온다. 코로나가 끝나고 마산에서 만나게 되면 아침에 만나 저녁에 끝나는 떡볶이 투어를 가기로 했다. 창동에서 시작해 함께 다녔던 학원 앞의 떡볶이 가게가 여전히 있으면 거기서도 한 그릇 사 먹고, 댓거리의 떡볶이 뱅크에서 그날의 마지막 떡볶이를 먹는 것이다. 사실 코로나가 시작되기 바로 전 이 떡볶이 투어가 성사될 수 있었는데, 내가 고집을 부려 새로운 집으로 친구를 이끌고 간 바람에 우리는 맛없는 떡볶이로 투어를 마쳐야만 했다. 그때의 미안한 마음을 담아, 우리의 떡볶이 투어가 가능해지는 날에는, 그날의 떡볶이 값은 무조건 내가 다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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