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
수도권에 사는 사람보다 지방에 사는 사람일수록 교통수단을 이용하며 온실가스를 2배 이상 더 많이 배출한다는 콘텐츠(출처: 환경정의)를 보았다. 슬라이드를 넘겨보지 않아도 경험으로 원인을 짐작할 수 있었다.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으니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이 많겠지. 역시 짐작한 대로였다. 교통 인프라가 부족한 것도 서러운데 기후위기 가속화에 숟가락을 얹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욱 서러워진다.
지방에 사는 나 또한 차를 가지고 있다. 정확히는 자동차 한 대와 오토바이 한 대를 가지고 있다. 대학생 때부터 오토바이 타는 법을 배웠고, 지금은 면 지역에 위치한 회사 덕에 자동차까지 가지게 되었다. (겨울에 오토바이를 타고 외곽까지 나갔다간 저세상으로 직행할 수 있다.) 이건 모두 자차로 이동하면 10분이면 될 거리를, 버스를 타고 30분 이상 소요해야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환경 덕이다. (‘대중교통’이라고 적었다가 어차피 우리 지역 안에서 움직이는 대중교통이라고는 버스뿐이어서 ‘버스’로 수정하였다.) 배차 간격이 기본 10분에서 30분은 되기 때문에 운이 나쁘면 30분 대기+30분 주행으로 1시간이 걸려 목적지로 이동하는 셈이다.
대학생 시절, 학교에 오가며 ①배차 간격이 짧지만 빙빙 돌아 콩나물시루처럼 사람을 싣고 가는 버스를 탈 것인지, ②배차 간격이 엄청나지만 바로 집 앞으로 직행하는 버스를 탈 것인지 고민하는 게 일상이었다. 무얼 타더라도 최소 1시간이 걸렸다. 심지어 두 버스의 정류장도 달라서 하나 선택 후 마음이 바뀌어 다른 선택지로 돌아가려면 20분을 걸어야 했다. 질려버린 나는 버스라는 선택지를 걷어차고 망설임 없이 중고 오토바이를 구매했다.
구매 당시엔 성별이 오토바이를 타는 데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생각보다 성별은 큰 장벽이었다. 어지간한 오토바이 용품은 남성 표준에 맞춰져 있었고, 주머니가 가벼운 대학생에게 작은 사이즈의 오토바이 용품은 턱없이 비쌌다. (저렴한 상품은 작은 사이즈가 나오지 않는다.) 결국 덜렁거리며 벗겨지지 않을 크기의 헬멧을 구매하는 것으로 적당히 타협했다.
키가 작은 내게 오토바이가 너무 커서 양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다. 이동할 수 있는 곳이 늘면서 가는 곳이 달라졌고, 만나는 사람이 달라졌다. 버스가 끊길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늦은 시간까지 활동할 수 있었다. 매번 가던 곳이 아닌 새로운 길로 들어설 줄 아는 용기를 가지게 되었다. 자전거가 처음 보급되었던 19세기 후반에 왜 여성에게 자전거 타는 것을 제한했는지 여실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하루 동안 이동할 수 있는 거리가 늘어나는 것. 그건 곧 활동에 대한 가능성, 나아가 사고의 확장과 같다. 지방민에게 자동차(혹은 오토바이와 같은 이동 수단)는 이동 수단 이상의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특히나 여성의 경우엔 더더욱. 내가 심적으로 부모로부터 빠르게 자립할 수 있었던 건, 20대 시절 오토바이를 타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방에 산 덕에 반강제로 오토바이를 타게 되었고, 오토바이 덕에 주체적인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면 지나친 비약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