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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국퀴어 Nov 21. 2022

1. 퀴어, 지방에서 살아남기

감자국퀴어 연말 인터뷰

사회 : 라일라(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퀴어 북클럽' 공동 기획자 겸 진행자)

참여 : 조재, 정한새(감자국퀴어)




라일라

안녕하세요, 오늘 감자국퀴어 2022 마무리 인터뷰 진행을 맡은 라일라입니다. 정한새 님과 함께 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퀴어 북클럽’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조재

안녕하세요, 춘천에서 온 걸어 다니는 커밍아웃 조재입니다.

    

정한새
해고당한 퀴어 정한새입니다.

라일라

본격적인 인터뷰에 앞서 어떻게 두 분이 감자국퀴어를 진행하게 되셨는지부터 먼저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정한새

저희는 라일라 님을 사이에 둔 지인이고요. 몇 년 전에 조재 님이 저희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북클럽’에 게스트로 출연하시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해당 편은 현재 ‘항구의 사랑-김세희-민음사 사건’ 때문에 들어보실 수 없지만, 올해 또 게스트로 나와주신 편은 팟캐스트 ‘페어북 ; 페미니스트 퀴어 북클럽’에서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조재

감자국퀴어는 한새 님이 연재를 제안해주셨고, 제가 응해서 올해 초 서울 용산구에서 만나서 기획회의를 했고요. 브런치 계정 만들어서 작가 승인받는 과정을 거친 뒤 3월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라일라

9개월간 서른 편이 넘는 글을 써주셨는데 소회를 먼저 듣고 인터뷰를 시작하면 좋을 것 같아요. 글을 먼저 마무리하신 한새 님부터 말씀해 주시겠어요?
 
정한새

먼저 조재 님이 흔쾌히 해주시겠다고 해서 굉장히 감사하다는 말씀드리고요. 가장 열렬한 독자이자 오늘 사회까지 봐주시는 라일라 님도 독자 분들을 대표하여 감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걸 시도했다는 것 자체가 좋았던 것 같아요. 올해 계속 지방, 퀴어, 여성이 엮이는 의제가 나오기도 해서 관심 있는 분도 많으셨던 것 같은데 저희가 너무 바쁘고 가까이 살지 못하다 보니 좀더 치밀한 회의를 하지 못해서 짜임새 있게 진행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그런데도 둘이서 비슷한 얘기를 하기도 하고, 같은 소재를 다루는 것 같으면서도 다른 이야기를 한 것도 많아서 서로의 글을 보는 게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점이 독자분들에게도 닿았으면 좋겠고요.

둘 다 무척 바빴는데 그래도 글 올리기 전에 미리 서로의 글을 보고 피드백하는 시간을 가졌거든요. 짧더라도 그 과정을 거쳤던 게 무척 중요했던 것 같아요. 서로의 글을 미리 보고 어떻게 고치면 좋겠다, 어떤 점은 좋다, 이렇게 말해주고 그렇게 해서 고친 글이 나아지는 걸 느낄 수 있어서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조재
한새 님 마지막에 하신 말에 무척 공감합니다. 다만, 한새 님은 글을 미리 쓰시는 편이고 저는 마감에 겨우 맞추는 편이었거든요. 한새 님이 제 글을 보실 시간이 촉박해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서로 열심히 쓰고 꾸준히 봐주고 고쳐나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라일라

그래도 저는 두 분이 어쨌든 1시간 전이든 하루 전이든 마감 전에 서로의 글을 확인하고 수정 과정을 거쳤다는 게 두 분 다 정말 성실하신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은 잘 못 하지 않나, 싶고요. 그 덕분에 일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두 분의 좋은 글을 만나뵐 수 있었어서, 저도 독자로서 감사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라일라

제가 이번에 사회를 맡게 되어, 질문을 구성하면서 감자국퀴어에 올라간 글을 전부 다시 읽어봤어요. 저도 한 편도 안 빼놓고 다 읽었더라고요. 모든 글이 다 재밌었는데 한새 님의 글 중에서는 ‘외모 다양성이라는 건 의외로 중요하다고요’라는 글이 인상 깊었습니다.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획일적인 외향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정상성에 대한 압박이 훨씬 강하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저도 많이 공감이 됐고요. 동시에 지금까지는 지역에서 다양한 사람을 못 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지방은 당연히 그렇지, 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 같아서 그 글이 기억에 남고요.

조재 님은 ‘여기 사람이 산다’에서 강원도에 사는 여러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하며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 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스스로에게 강원도에 대한 애증이 있었음을 알게 되셨다고 쓰셨어요. 더불어 증은 이제 알겠는데 나에게 애는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하셨는데 그 질문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런데 글을 쭉 읽어보면 두 분이 공통으로 언급한 게 무척 많아요. 저는 미리 회의하셨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두 분이 번갈아 언급하신 것도 있고. 지방에 살았던, 혹은 사는 퀴어 여성으로서 유사한 경험을 하고 유사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싶어 인상적이었고요. 우리가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교차하는 지점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오늘은 그런 부분을 중점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한새 님은 청소년기에 다른 지방에서 거주하셨지만 어쨌든 그 전까지는 강원도에 계셨으니까, 한새 님, 조재 님, 저까지 세 명 모두 지방에서 퀴어 청소년으로 자란 셈이잖아요. 두 분 다 서로를 아는 지역사회 특성상 연애하거나 정체성을 밝히면 배척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크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저도 그런 두려움을 느껴봤고요. 그런데 여기서 ‘배척받을 것 같다’는 건 정확히 무엇에 대한 감각이었을까, 우리가 두려웠던 대상이 다 다를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가족이나 친척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웠던 것인지, 학교에서 따돌림받는 것이었을지, 아니면 또다른 거였을지가 좀 궁금해요.

  

정한새

제가 지금 경기도에서 일하는데 재작년쯤에 누군가 업무 차 제 상사를 방문한 거예요. 저는 일하느라고 누가 들어갔는지 얼굴을 못 본 상태였는데, 저한테 잠시 확인할 게 있으니까 회의실로 들어오라고 해서 갔죠. 그런데 그 손님이 누구였냐, 강원도에 사는 아버지 친구셨습니다. 그 순간 느낀 감정이 제 배척받을 것 같다는 두려움의 근원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 일종의 위협이죠. 어디 가나 아버지 친구가 있고 어머니 지인이 있는 곳에서의 두려움. 경기도에서도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는데 미성년자였던 때에 내가 살던 곳에서 여자 손을 잡고 걸어가다가 가족에게 들키면 어쩌지? 이게 제일 컸던 것 같아요. 특히 부모에게 알려지는 게 문제였던 거죠.

학교는 오히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여중을 나왔고 당시 저랑 어울리던 친구들은 암묵적으로 레즈비언이었어요. 아니지, 이반이었죠. 그때는 그랬습니다. 그래서 선생님한테 알려지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부모한테 알려지는 게 두려워서 알려지고 싶지 않았던 거죠.
 

라일라 
왜 부모님에게 알려지는 게 가장 두려웠을까요. 부모님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하셨던 게 있으신가요?     


정한새
어떻게 될 거라고 생각이 안 들었어요, 이게 뭔지 몰라서. 부모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는데, 뭔지 모른다는 건 결국 미지의 영역이잖아요. 그리고 미지는 공포에 포섭되고요. 그래서 준비된 다음에, 부모가 아니라 제가요, 얘기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 가끔 생각하는 게 어렸을 때 누구도 퀴어에 대해 나쁜 말을 한 적이 없거든요? 그때는 퀴어라는 단어도 안 썼고, 동성애자라는 말도 한 적이 없고, 그런 개념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고 누구도 가치 평가를 한 적이 없어요. 호불호건 옳고 그름이건 가치 평가를 하려면 언급해야 하잖아요. 그런데도 왜 나는 이것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무의식이 있었을까? 집에는 TV도 없었고, 그래서 홍석천이나 하리수라는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부모도 퀴어에 대해 인식이 없었는데 나는 어떻게 정체화 비슷한 걸 해나가고 있던 중학생 때쯤에 이미 배척받을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을까. 이게 가끔 떠오르는 궁금증이긴 합니다.


조재
저는 오히려 또래 집단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부모님에게 알려지는 게 두렵지 않다가 아니라 그건 진짜 진짜 거대한 산이고, 그 거대한 산 앞에 여러 개의 작은 산들이 있는데 그게 또래 집단이었던 것 같아요. 왜, 학창 시절에 홀수로 다니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예를 들어 수학여행 버스를 탈 때 홀수면 무조건 한 명은 혼자 앉게 되죠. 급식 먹을 때도 그렇고. 그런 상황을 맞닥뜨려야 한다는 게 두려웠던 거죠. 하다못해 홀수로 다니면서 한 사람이 소외되는 경험도 굉장히 크게 다가오는 시기에 제 정체성이 밝혀지면 또래 집단에서 완전히 배척당할 것 같은 두려움은 훨씬 큰 거죠.

학교에서는 어쨌든 또래와 계속 묶여 있어야 하잖아요. 강제로 같은 공간에서 일정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그때는 그 세계가 전부고, 내가 내 의지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갇혀 있어야 하는 곳에서 배척받게 되면 얼마나 괴롭겠어요. 그런 게 되게 컸던 것 같습니다.
 
라일라 
한새 님은 미지의 두려움, 조재 님은 또래집단에서의 배척이 두려우셨군요. 저는 퀴어 청소년기를 돌이켜봤을 때 저 때문에 가족이 욕을 먹는 상황이 두려웠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예를 들자면 저는 제 동생하고 같은 학교를 나왔는데, 동생이 나중에 이 학교에 입학했을 때 ‘네 언니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동생이 따돌림당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강하게 했어요. 저는 그때 내가 레즈비언이라서 따돌림당하는 건 차라리 괜찮은데, 그걸 내 가족이 당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가족에게 끼칠 영향이 가장 두려웠던 거죠. 그런데 두 분의 글을 읽으면서 모든 사람이 느꼈던 공포가 나 같은 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재
가족 얘기가 나와서 생각났는데, 저희 부모님이 두 분 다 막내시고 늦둥이셔서 제가 항렬에서 가장 막내거든요. 사촌들 모두 저보다 나이가 많고, 전부 결혼했어요. 그래서 태어나서 본 윗세대 모델이 전부 결혼하고 가족을 구성하는 거였어요. 다른 가능성을 전혀 본 적이 없으니까 결혼이라는 게 당연하구나, 가족 공동체의 일원이 되려면 결혼해야 하는구나,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제가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을 때 다른 모델을 본 적이 없는 거예요. 저는 이 공동체의 에러 같은 거였고. 그것 때문에 두려움이 있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드네요.


라일라

더 넓은 곳, 혹은 더 다양한 사람이 있는 곳,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곳이었다면 저희의 두려움이 더 적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러지 못한 환경이었고, 무엇보다 이곳에 있는 누군가가 나를, 그리고 내 가족을 알 수도 있다는 사실은 특히 성인보다는 청소년에게 많은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학교와 집이 세상의 과반을 차지할 나이에, 현재 지방에 사는 퀴어 청소년들도 저희가 했던 경험 혹은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청소년들에게 무엇이 도움이 될까요? 과거의 우리는, 지금의 지방 퀴어 청소년에게는 어떤 지원이 필요할까요?     


정한새

공식 통계로 나온 적은 없지만, 퀴어 청소년의 10~20%가 부모에게 커밍아웃한다고 해요.     


조재, 라일라 

오, 생각보다 높은 수치네요.


정한새

반대로 8~90%의 퀴어 청소년은 보호자에게도 자신의 정체성을 말하지 못할 정도로 심리적 장벽과 압박감을 느낀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어딘가에는 이야기해야 하잖아요.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들어주어야 하고요. 자신이 누군지 찾아가고 확인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게 사회와 어른의 역할일 테고요. 그래서 저는 지역의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 반드시 퀴어 분야 상담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니면 상담가들이 전부 관련 교육을 받든지. 사회와 제도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고 그런 존재가 이미 많았고 여러분도 그중의 한 명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재

제가 느끼기에 가장 필요한 건 주변에서 퀴어를 당연하게 만날 수 있는 환경 자체인 것 같아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주변에 사례가 없으니까, 거기에 속하지 않는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느껴지는 그런 상황을 지금의 퀴어 청소년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그건 이웃에 퀴어가 존재하면 사실 어느 정도 해결되는 거죠. 다양한 표본이 당연하게 존재하는 모습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현실 가능성이 없나요? (웃음)     


라일라 
현실 가능성이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 주변에 모든 종류의 표본이 있는 건 어려울 수 있죠. 그래서 저는 실재하는 사람이 이웃에 존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매체에서 그런 사람이 등장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문화 면에서도 다양성의 폭을 넓히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조재
저도 문화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한편으로 이게 현실과 괴리감 문제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올해 OTT나 드라마에서도 소수자가 등장한 작품이 흥행하기도 했잖아요, 그런데 오히려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아. 그러면 그게 또 서울로 떠나고 싶어지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요?     


정한새
그래서 지역 기반 활동이 받쳐줘야 한다고 아까 말씀드렸던 거예요. 10대 청소년이 상담이든 하소연이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늘어야 하고,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죠. 지방에 그런 공간과 사람을 둘 수 있게 법으로 정해야 하고요.     


라일라

그러게요. 문화 분야에서 비슷하게 공간을 만들어 사람을 부르는 사업도 있잖아요. 이를테면 작가 지원 레지던시는 지방에 공간을 구축하고 작가를 초빙해서 거기서 활동하도록 하죠. 그런 활동을 하면 사람들이 관심이 없다가도 생기니까. 그게 공간의 힘이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는 지방 퀴어를 위한 공간을 지원하는 일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 다음 주 월요일에 2부가 올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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