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역시나 내가 주어가 아닌 목적어인 이야기.
내가 손절 '친' 게 아니라 손절 '당한' 이야기.
오늘 이야기 할 내가 겪은 손절의 주체는 애 친구 엄마들이다.
어린이집 시절 아이 친구들의 엄마들 모임.
거기에서도 나는 버려졌다.
돌이켜보면 그녀들과 맞는 게 하나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모임이었다.
대학이야 지적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고,
그 중에서도 같은 과라면 지적 호기심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고,
직장도 특수한 분야가 아니라면 보통 비슷한 구직의 역사(?)를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친구들은 말해 뭐하나, 취향과 가치관이 같은 사람들끼리 친해지기 마련이지만,
<애 친구 엄마들 모임>은 그렇지 않다. 절대 그럴 수가 없다.
조리원에만 모여도 영혼부터 끌어 모아 산후조리에 올인한 케이스가 있나하면
그냥 식당에서 그저 그런 한끼 사먹듯 4~500 혹은 몇 천을 푼돈으로 지불하고 입소하는 케이스가 있고,
같은 아파트에서 같은 어린이집을 보내도 월세, 전세, 자가 등 거주 형태가 다른 건 기본,
외제차, SUV, 국산 소형차 등 각양 각색의 자동차들이 말해주는 경제적 차이,
그리고 한두마디만 나눠도 알 수 있는 지적 수준의 차이,
친정 혹은 시댁 재력의 차이 등.
끝도 없다.
말 그대로 천차만별이다.
처음엔 아이들 하원때 만나 눈 인사를 주고 받다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몇 마디 주고 받다가
차 한 잔 하자고 하고, 또 밥 한번 먹자고 하고,
애들 데리고 키즈카페 가자고 하고 그렇게 집까지 오고 가는 사이가 되는 수순.
모든 만남이 그러하듯,
처음에는 별로 거슬리는 게 없다.
하하호호 아이들 보육 혹은 교육에 대한 정보도 주고 받고 참 유익한 모임인 것 같다.
보통 그 시기에 경력이 단절되는 케이스가 많으니 육아로 오는 스트레스와 우울감도 공유하고,
마치 아이들 대학 보낼 때까지 만날 것처럼 호들갑이 떨어진다.
또 아이들 어린이집 이야기나 함께 키즈카페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동지가 있어 행복하다는 느낌이 들고,
나아가 가족 동반으로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그야말로 펜션 수영장 물에 잠자리만 날아들어도 깔깔깔깔,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편한 부분은 생기기 마련이다.
부부 사이에도 오랜 친구들과도 감정 상하는 일이 생기는데,
짧은 시간 확 가까워진 관계가 탈이 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부분을 감수하고라도 관계를 이어나가 정말 아이들 대학 보낼 때까지 유지되는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들도 물론 있겠지만,
그런 관계를 맺은 복 받은 사람들이 참 부럽지만 나의 경우 그렇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녀들의 말투나 행동에서 거슬리는 부분이 너무 많아졌다.
예를 들면 이런 대화다.
- 언니, ## 시켜봐. 두뇌발달에 좋대.
- 어떻게 하면 되는데?
- 그룹으로만 수업받을 수 있는데 나는 조리원 동기들이랑 그룹으로 시키고 있거든?
- 그래?
- 언니 낯 가리니까 우리랑 같이 하긴 그렇고 팀 한번 짜봐. 우리 선생님 너무 좋으니까 소개시켜줄게.
또 이런 대화.
- 언니, %%엄마랑 @@엄마랑 문센 갔다가 들었는데 어린이집에서 &&(내 아이)가 좀 겉도나봐.
- 선생님은 별 말씀 없으시던데.
- 선생님은 관심도 없지, 언니.
- 그래? &&는 어린이집 재밌고 친구들 다 좋다고 하던데?
- 언니 기분 나쁘게 듣지 말고 들어줘. 사실 우리 **이가 && 싫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했어.
- 왜?
- 왜 싫냐고 물어봐도 딴짓하면서 대답을 안 하더라고? 근데 %%엄마랑 @@엄마 말로는 언니가 너무 다 받아주는 거 아니냐고 하던데... 문센도 && 싫다니까 바로 그만뒀잖아, 언니.
- 싫다는데 굳이 다녀야 해?
- 싫어도 같이 다니면서 사회성도 기르고 그러는 거지. 언니 #$%교수님 책 읽어봤어?
- 아니?
- 그런 것도 좀 읽어보구 그래. 나는 등원시키고 30분은 꼭 독서해.
그리고 또 이런 대화.
나는 브런치에 쓰는 시간과 돈이 아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 brunch 플랫폼 말고 계란, 소시지, 빵 쪼가리 몇 개가 놓고 3~4만원 하는 그런 브런치.
- 언니, 내일 애들 등원시키고 브런치 어때?
- 나 아침에 운동하잖아.
- 하루 제끼고 브런치 먹자. 햇님반 엄마들 단톡방에 물어보려고.
- 그래, 그럼 물어봐. 나는 컨디션 봐서 괜찮으면 갈게.
- 아니, 내가 단톡방 물어보면 언니가 좋아요^^ 해줘야지. 그래야 내가 덜 민망하지.
- 나는 내일 상황봐서......
- 언니, 인프제야?
- 응?
- 언니 너무 소심해. 사람들 만나고 그래야 &&이도 보고 배우고 그러지. 언니가 사람들 만나는 거 꺼리고 낯 가리는 성격인 거 아는데 그래도 노력해야 해. &&를 위해서.
- 알아서 할게.
- 언니 기분 상했어? 언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휴.
복기하다 보니 또 치밀어오른다.
왜 쌍욕을 박고 먼저 손절치지 못했을까?
왜?
왜냐, 내 인간관계가 아니니까.
소중한 내 아이를 끼고 엮인 관계니까.
저런 소모적인 한 대화를 반복하면서도 관계를 질질 끌 수밖에 없었다.
정말 쟤 말대로 나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사랑스런 내 아이에게 행여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서 그랬다.
참 어리석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에도 모임에 철벽치고 끼지 않는 엄마들이 있었는데 왜 나는 그러지 못했을까?
결국 어영부영 울며 겨자먹기로 브런치 모임에 나가고,
애가 자신과 맞지 않는 친구들과 투닥거려도 억지로 끌고 키즈카페를 순회하고,
남편까지 얼굴을 트게 만들고 집 더럽다(나는 청소도 치우는 것도 잘 못한다)고 수근거리는 소리까지 듣고서야 손절당했다. 손절한 것도 아니고 손절을 '당'했다.
물론 SNS를 보면 서로 좋은 인간관계들이 많다.
오랜 애 친구 엄마들과 건강하게 정보도 주고 받으며 엄마들의 우정도 쌓으며,
아빠들까지 친구가 되어 골프도 치러 다니고 아주 부러운 관계들.
하지만 난 그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늦게라도 손절 당한 것에 대해 일말의 미련도 없다.
아이들은 학년이 올라가면서 자기랑 잘 맞는 친구 찾아서 친해지고,
정글같은 학교와 학원에서 별별 인간 군상들을 만나며 알아서 버티며 사회성을 기른다.
또 나처럼 거리는 지키되 아이들 만남을 주선하는,
예컨대 아이들이 서로의 집을 오가며 놀지만 엄마들끼리는 존대하며 따로 만나지 않고 누구 이제 도착했어요,
누구 이제 출발했어요 정도의 연락만 주고 받는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꽤 많다는 것도 알았다.
딱 그 정도가 좋은 것 같다.
딱 그 정도가 좋은데......
문제는
내가 아직도 예전 어린이집 시절 엄마들의 SNS를 들락날락 거린다는 것.
내가 하는 일 그렇게 깔보더니 뭐하고 사나 호시탐탐 염탐하고 있다는 사실.
그녀들 중 누군가가 카페 사업을 시작해서 대박이 났다거나,
누구 남편이 반지를 사줬니 시계를 사줬니, **가 피아노 대회에 나가서 최우수상을 받았다니 하는
굳이 알지 않아도 될 일상 이야기들을 접하고 있다는 사실.
나 빼고 그들은 아직 서로 연락하며 지낸다는 불편한 사실.
참 성격 희안하다.
애써 찾아보지 않으면 내 삶의 만족도가 훨씬 높아질텐데 왜 꾸역꾸역 저들의 SNS 주소를 알아내고
하루 한번 이상 들여다보는 짓을 하고 있는 걸까?
아마 성격이 이래서 친구가 없는 걸수도 있겠다.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이 글의 제목은 손절 이야기가 아니라
열폭 버튼이 눌렸습니다, 로 했어야 옳은 것 같다.
정말 어렵지만 나이를 더 먹으면 언젠가 해결할 수 있을까?
인간관계에 대한 나의 열등감.
쇼펜하우어가 그랬다.
친구가 없을수록 똑똑하다는 증거라고.
오늘도 네이버에 검색해본다.
검색어는
친구,
없을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