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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성 Jul 31. 2024

마치 1조 클럽처럼

클럽입성

선하고 마음이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신조가 있다.

이미 다들 알지만 마음이 비좁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이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똑같은 사람 되지 말아라.

잘못했다고 똑같이 잘못하는 게 옳진 않다.

손해보듯 살아라.

베푼 만큼 돌아온다.

말해봤자다.

화내는 사람 속만 곯는다.


대충 이런 것들인데 이런 말들을 읽기만 해도 가슴이 답답하던 시기가 있었다.

실제로 인간관계의 갈등상황 속에 서 있고 누군가를 죽도록 증오하고 있는 상태라면,

저런 말들을 전혀 와닿지가 않는다.


차라리,


무조건 이겨라.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똑같이 응징해라.

손해보지 말아라.

베풀면 호구된다.

하고 싶은 말들을 참으면 홧병난다.

화내고 싶은 상황이라면 당당하게 화내라.


이런 말들이 훨씬 속 시원하고 격려가 된다.



쌈닭처럼 살던 시절, 별것 없는 내게 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이 착하다고 생각했으며

언제 어디에서 붙어도 이길 수 있는 만만한 부류라 여겼다.


나보다 8살이 많았지만 말싸움에 지고 내게 미안했다며 커피를 사줬던 회사 선배.

소개팅 자리에서 요양보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언쟁이 붙었는데

(친정엄마가 요양보호사다)

다다다다 쏘아붙이는 내게 실수했다며 사과하고 밥과 커피까지 사준 소개팅남.

기차나 전철이나 극장에서 저기 시끄럽거든요? 조용히 좀 해주실래요? 짜증스레 말해도 죄송합니다,

한 마디로 조용히 해주던 사람들.

내 입맛대로 약속시간이나 장소를 바꿔도 군소리 없이 맞춰주던 친구들.

발악하는 내게 그래 네 말이 맞다, 늘 져주는 남편까지.  


나라면 절대 양보하지 않을 텐데,

한 발짝도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 내게 기꺼이 굽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렇게 쌈닭처럼 싸우고 연일 승리행진을 하며 살던 나에게

남편과 친정엄마는 늘 이이갸했다.

앞서 말한 선하고 마음이 행복한 사람들의 공통적인 신조 같은 것들 말이다.


윤성아, 화내면 너만 손해야.

지는 게 이기는 거야. 좀 손해도 보고 살아...... 등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내게 참으라고만 하니 오히려 분노가 치밀어오르던 말들.



하지만 요즈음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깨달은 게 있다.

최근 주변에서 말로 상대를 할퀴고 100원도 손해보지 않으려 아등바등하는 사람들을 보며

저러지 말아야지, 싶은 마음이 태어나 처음으로 들었다.

과거의 나처럼 전투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속이 곪아 마음의 병에 걸리고,

100원을 손해보지 않으려다가 500만원씩 병원비를 쓰고, 티끌에도 화르르 분노하며 억울해하는 모습들을 보며 나는 저들처럼 살지 말아야지, 다짐이 저절로 섰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이전가지 그들에게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연일 승리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겨서 좋겠네 생각했지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물론 여기서 승리란 재판까지 가는 법적 다툼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승리란

승패가 알량한 자존심 말고는 대세에 큰 지장이 없는, 일상 속 자잘한 승리들을 말한다.

회사 선배와의 말다툼, 소개팅남과의 소모적 언쟁, 귀에 거슬리는 소음에 대한 항의 같은 것들 말이다.

내가 그랬듯 사소한 일도 그냥 넘기지 못하고 핏대 세우며 사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니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를 제압하려 잔뜩 긴장한 눈빛, 눈을 치켜뜨느라 생긴 이마 주름, 목소리를 높이느라 선 핏대,

꽉쥔 주먹 그리고 무서워보이려 내민 아래턱까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그 행색에 엄청난 연민이 몰려왔다.


오히려 내게 졌던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여유가 넘쳤는데 말이다.

그래서 몇번 그렇게 해봤다. 눈 딱 감고 져주고, 싸움을 길게 끌고 가지 않고,

누굴 미워하는데 쓰는 시간을 요가, 드라마, 유튜브로 돌렸다.

처음엔 잘 되지 않았지만 몇번 억지로 생각의 멱살을 잡고 방향을 틀다보니 답답한 마음도 억울한 분노도 사그라들고 별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다.

무던해졌달까, 뻔뻔해졌달까.


마음이 편안해지니 그간 이겨먹느라 쓴 시간과 에너지가 아깝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진작 이렇게 살았어야 하는데.



누누이 들어왔던 지는 게 이기는 거라든가 똑같은 사람되지 말라든가 하는 이야기들이

이제야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래서 져주는 사람들의 얼굴에 빛이 도는 거였나보다.

싸움에 엉기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한데, 그간 왜 고생을 사서 하며 파르르 불꽃처럼 살았던 걸까.

선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그토록 말해줬는데 좀더 일찍 귀담아 들을 것을.


드라마 <눈물의 여왕> 초반에는 재벌3세 홍해인이 1조 클럽에 들어가기 위한 고군분투가 나온다.

포인트를 1조라는 돈에서 행복으로 바꾸어 생각하면,

나는 이제서야 비로소 1조 클럽의 회원이 된듯한 느낌이다.

선인들의 클럽이라 하면 될까,

현인들의 클럽이라 하면 될까,

행복한 사람들의 클럽이라 하면 될까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클럽의 멤버들은 팔짱을 끼고 뒷짐까지 지고

40년 동안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불쌍해, 힘들겠다, 쟤 좀 봐, 어떡해 연민하면서 말이다. 남편까지도 그랬다.

그리고 그들이 길을 걷다 똥을 밟듯이 나와 싸움이라도 붙을 때면

나처럼 되지 않기 위해 먼저 사과하고 굽혀주며 나를 지나치고, 좋은 사람들과 행복하게 지내왔던 것 같다.

나만 쏙 빼고, 자기들끼리 행복하게.



비록 늦게 깨달았지만 지금이라도 그들만의 세상에 입성했다는 사실이

한없이 기쁜 요즈음이다.

주변을 보면 나보다 어리지만 이미 멤버인 사람들도 많은 반면에 나이가 많지만 아직도 아등바등 핏대 세우고 혈안이 되어 사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제 클럽 라운지에서 고고하게 그들을 내려다본다.

다시 저들처럼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팔짱을 끼고 뒷짐을 지고 따뜻한 코코아를 한잔 마시면서

그들을 연민한다.

저들은 절대 모를 거다. 아무리 같이 행복하자고 설득해도 수작이라 생각할 것이다.

앞으로 난 그들과 싸울 생각은커녕 엮일 생각도 없다.

부딪히면 죄송해요, 하고 지나가면 그만이다.


오늘은 봄비가 내린다.

유리창을 두드리는 봄비 소리를 듣고 흙내음을 맡고,

 흩날리는 벚꽃잎들을 보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삶의 남은 순간들을 모두 행복으로만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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