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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pplepie Feb 29. 2024

그냥 궤양이라 다행이야

조직검사 결과 듣기

 나는 말을 잘 듣는 사람이다. 어릴때는 선생님 말을 잘 들었고 내내 부모님의 말을 크게 어긴 적이 없으며 다 자라서도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직장 선배, 관리자, 필테 선생님 등등-의 말을 '대체로' 잘 들어왔다. 즉, 나는 의사의 말도 매우 잘 듣는 괜찮은 환자라고 할수 있겠다.


 위 내시경에서 궤양을 확인하고 약을 받은 날부터 일주일동안 아침 첫 음식으로 약을 빠뜨리지 않고 먹었고 일주일 후에는 검사결과를 들으러 어김없이 병원에 나타났다. 궤양 조직검사와 헬리코박터균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었다. 아침 운동 후 병원에 가는 코스였는데 설마 검사 결과가 안 좋을 리 없겠지만 이상하게 불안했다. 조직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니 맘이 편하진 않은가보다~하고 불안함을 애써 누르며 함께 운동가는 친구와 만나 반갑게 인사했는데 그녀의 눈이 발갛다. 바람이 차서 그런가, 설마 얘가 울었나? 생각하던 차,

"어떡해. 내 친구 유방암이래. 어제 소식 들었어."라며 그녀의 눈이 더 촉촉하고 빨개진다. 내 친구는 아니지만 나에게도 버겁고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몇 시간 후에 조직검사 결과를 듣는 환자에게 또래의 여성이 암에 걸렸다는 얘기는 잠깐이지만 감정이입을 하기에 참 좋았다. 그리하여 운동 센터에 가는 짧은 시간동안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녀의 마음에 절절하게 공감이 되었다.


 어찌저찌 운동을 마치고 병원으로 가, 접수를 하여 만나게 된 의사선생님은 1주일 전에 뵌 분과 다른 분이었다. 덜 친절했지만 별거 아니라는 심드렁한 태도가 나를 안심시켰다.

선생님: 조직검사 결과 정상이며 헬리코박터균도 없네요. 약을 한달치 더 처방해 드릴테니 드시고 7주 후 내시경 예약 잡고 가세요.

나: 지난 번 원장님께서 위 용종이 많아서 대장내시경도 권유하셨는데 그거 7주후에 같이 받으면 될까요?아님 더 급히 받아야 할까요?

선생님: (갸웃하며)굳이...요? 뭐 어디 아프신거 아니면 그냥 그때 같이 받으셔도 돼요.

이렇게 나의 진료는 간단히 끝이 났고 나의 마음도 편안해졌다.


 내과 병원을 1주일 간격으로 두 번 방문한 적이 이번이 처음일 정도로 나는 그간 병원에 올 일이 없이 살았다. 진료를 마치고서야 병원 대기실이 다르게 보였다. 대기실을 빼곡히 채운 노쇠해 보이는 어르신들. 순간 진료실 앞 대기 명단에 보이는 환자들의 나이가 눈에 들어왔는데 늙수그레해 보이는 어르신들이라 70대 이상이 대부분일거란 생각과 달리 우리 부모님보다 10년 이상 젊은 50대 환자가 많았다. 지금 나 같은 3040이야 건강관리를 하고 안하고의 차이가 크지 않을지 몰라도 50대 이상이 되면 내 삶을 건강이 좌우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간 노화를 지나치게 외모에만 국한하여 생각해 온 것 같았다. 3개월에 한번씩 보톡스를 맞고 1년에 한번씩 리프팅을 하는것이 노화를 대비하는 것인 줄 알았다. 얼굴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몸의 노화-혈당을 비롯한 각종 피검사 수치, 몸의 여러 기관의 기능-가 주름이 몇개인지보다 중년이후의 인생을 가르는 더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이제야 깨달았다.


 건강한 중년-장년-노년이 되기 위하여, 그보다 당장 7주 후에 위에 자리잡은 궤양을 없애기 위하여 나는 집에 와서 몇 가지 일을 했다. 커피 끊기, 술 끊기, 그리고 스트레스 관리를 위해 심리 상담도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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