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해봤자 다 소용없다는 말

이젠 가려듣기로 해요

by Applepie

몇해 전 무더운 여름날, 위원회 회의가 있던 날이었다. 공교롭게도 친하지 않은 선배님들과 같은 위원회가 되었다. 회의 중간 쉬는 시간에 서먹한 분위기를 풀기 위함인지 한 선배님께서 모두에게 물어보셨다.

"아~ 나도 이제 운동해야하는데. 다들 운동 해요?"

내 차례가 됐을 때, "저는 필라테스 해요."라고 답했다. 그런데 바로 뒤이어 한 분이 고개를 절레절레 하시며 말씀하신다.

"필라테스 나 한때 다녔는데 운동 안 돼. 그거 해봤자 아무 소용 없어."

음,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굳이 하지 않았다. 그냥 웃으며 네 하고 끄덕였다. 이런 분을 만났을 때는 이런 대응이 상책이란 것을 알만한 나이가 되었지 암, 스스로의 현명함을 속으로만 빠르게 칭찬했다.


그때의 나는 필라테스를 한 지 1년 반을 꼬박 채웠을 때였다. 물론 훨씬 많은 시간동안 한 고수들도 많겠지만 취미의 영역에서 1년 반을 했다는 것은 그리 짧은 경력은 아니다. 게다가 그땐 필라테스의 효과에 매일같이 탄복하고 있을 시기였다. 오, 바렐에서 비틀기를 하니 복사근이 생겼네? 내게도 복근이 있었다니! 그래서 매일, 주5회 필라테스 센터에 출근도장을 찍던 시기였다. 이런 나에게 '운동이 전혀 안 된'다는 조언이라니. 여러 말 할 것 없이 그냥 싱긋 웃어버렸다.


살다보니 이런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대개는 인생의 선배들이다. 이때 '선배'의 의미가 꼭 나이가 많은걸 의미하진 않는다. 때론 나보다 어리거나 동갑이어도 결혼, 출산을 일찍했단 이유로 선배 노릇을 하는 사람도 많으니. 그들의 특징은 '그거 해봐야 아무 소용 없다'는 말을 잘 한다는 거다. 대개는 내가 하려고 하거나 이미 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을 몇 가지 발견했다. 첫째, 라떼는~ 으로 시작하는 훈수 두는 것을 좋아함. 둘째, 삶을 대하는, 혹은 살아가는 태도가 냉소적이거나 부정적임. 셋째, 이게 가장 중요한데, 해봐야 다 소용없다는 '그거', 사실 그들은 제대로 안 해봤음.


'그거 해봐야 소용없더라'의 최고봉은 단연 자녀교육이 아닐까. 나도 자녀교육에 관해 이런 말을 가장 많이 들어보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정말 육아 후배에게 '그거 해봐야 소용없어.'라고 말해주고픈 것들이 있기야 있다. 아니, 사실 많다. 꼬물거리는 애를 두고 뒤집기, 앉기, 잡고 서기, 걷기 등의 발달이 몇달 늦냐 빠르냐로 근심하고 인터넷 검색하지 말기, 엄마의 체력이나 기동력 등 여력이 안 되는데 영유아 문화센터 다니는 것을 고집하지 말기, 비싼 전집이나 교구가 꼭 필요할 거라는 생각 버리기, 그리고 그 시기를 아직 안 키워봤지만 초등교사로서 제안하는 건, 초등학교때 무리한 선행하지 말기 같은 것들이다. 열거한 이런 것들은 나도 후배들에게 해봐야 소용없다고 진심으로 조언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진심을 담은 조언, 아니 조언이라고 할 수 없는 것들이 우리의 귀에 섞여 들어오니 그것들을 구분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거창하게 혜안까지 갖추지 않더라도 내가 자녀를 키우는 데에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생각, 가치, 신념 같은 것을 대충이나마 갖고 있다면 받아들일 것과 아닌 것들이 더 잘 보일 것이다.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사람의 말 습관 때문에 내가 혹은 내 아이가 무엇을 할 소중한 기회를 잃어서야 되겠는가. 어딘가에 결핍이 있는 사람이 내게 우쭐함을 느끼기 위해 두는 훈수에 휘둘리지 말 것을 권한다. 적당히 끄덕이고 넘어가기. 지나치게 동조해주는 것도 비추한다. 반복되면 내게 말하는 걸로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 하기 때문. 그럼 아까운 내 시간과 에너지만 낭비되니 조심해야 한다.


불혹이라는 나이를 향해 가고 있어 그런가, 대부분의 '그거 해봐야 소용 없어.'에는 맘속으로 코웃음을 칠수 있게 되었다. 물론 겉으로는 사회적 미소를 장착하지만. 앞으로도 내가 이런 말에 현혹되지 않길, 그래서 내 삶의 주인이 남이 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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