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학부모님들께-아이에 대한 건강한 믿음 갖기
몇 년 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스카이 캐슬'을 기억하시나요? 매운맛을 넘어 마라맛, 더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는 시청자의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해 주었던 드라마입니다. 당시 저는 갓난아기를 키우느라 시간이 늘 부족했는데 그 없는 시간을 쪼개어 틈틈이 보았던 기억이 나네요. 오늘 글을 쓰려는데 이 드라마의 등장인물 하나가 생각나더라고요. 그다지 주요 인물은 아니었지만, 혹시 차세리를 기억하시나요? 엄격한 로스쿨 교수인 아버지의 자랑이었던, 하버드에 다닌다는 큰 딸 말입니다. 결국엔 하버드 학생이란게 거짓말로 들통나고 클럽 MD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하는 인물이지요. 벌써 몇 년이 지났지만 세리가 극중에서 한 대사가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하버드 학생이라는 게 다 거짓임이 들통났을 때, 울면서 엄마에게 했던 말인데요,(물론 워딩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딱 한번 고등학교 숙제를 베꼈다 걸린 적이 있어요. 미국은 표절에 엄격해서 저는 그때 이미 좋은 대학에 갈수 없게 되었어요.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기대를 저버리기 너무 힘들어서 하버드 학생인 것처럼 연기했어요."
이 장면이 아직도 기억나는 이유는 아마 제가 이 말에 크게 공감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부모님이 나에 대해 갖는 기대, 믿음 이게 참 무겁다는 것을 저도 아니까요. 중학교 시절 질풍노도를 함께 보냈던 단짝이 했던 얘기도 떠오릅니다. 반장이었고 모범생이었던 친구예요.
"어른들이 나한테 실망했다는 말 좀 안했으면 좋겠어. 차라리 혼을 내지 실망했다는 말은 너무 듣기 힘들어."
사춘기 학생을 너무 힘들게 했던 '실망'이라는 말. 저 또한 그 자리에서 맞아 맞아 하며 친구의 말에 맞장구쳤던 기억이 납니다.
또 한편으론 여기저기에서 모두 부모가 아이를 많이 믿어줘야 한다고 합니다. 그럼 어떤 믿음은 좋고 나쁜 믿음이 또 있는건지 혼란스러워 지기도 하는데요, 그 구분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요? 저는 부모가 자식에게 갖는 올바른 믿음과 잘못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교사 10년이 넘은 지금에야 조금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잘못된 믿음에 대한 얘기를 먼저 하도록 하겠습니다. 부모님들께서 흔히 아이들에게 하시는, "난 우리 아들(딸)을 믿어." 에서 믿음의 대상은 무엇인가요? 혹시 네가 이번 단원평가에서 100점 맞을 것을, 학원 탑반에 들어갈 것을, 무엇인가를 해 낼 것을 믿으시는 건 아닌가요? 이런 것은 성과 혹은 성취에 대한 믿음으로 아이에게 부담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한 제 중학교 단짝 부모님이 말하셨을 '실망'도 자세히는 '성적에 대한 실망'이 아니었을까요? 이런 기대가 너무 무거운 아이들은 좋은 공부 정서를 가지고 긴 성취를 내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이런 맹목적인 믿음도 있습니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1년 지내다 보면 학부모님께 안좋은 이야기를 전해야 할 일이 종종 생깁니다. 교사마다 각기 다른 기준이 있을 텐데 저는 연락을 자주 드리는 편은 아니지만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물리적 혹은 언어적 폭력을 가했을 때, 그런데 그 정도가 심각하여 상대 학생이 상처(신체 혹은 마음)를 입었을 경우에는 대부분 연락을 드립니다. 사실 저도 정말 드리기 싫은 연락입니다. '귀하의 아이가 이런 잘못을 했습니다.' 라는 얘기를 전했을 때, 밝고 명랑하게 반응할 학부모님은 없으니까요. 대부분 충격받고 당혹스러워 하십니다. 그런데 종종, 이런 단단한 믿음을 보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저희 아이는 누굴 때리지 않는 애예요. 뭔가 잘못 아신 것 아닌가요?"
"아이에게 물어봤더니 그런 적 없다고 합니다. 저희 애는 거짓말을 절대로 하지 않아요. 전 아이를 믿습니다."
물론 교사가 잘못 파악한 것이 있으면 바로잡을 필요가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경우는 경험상 매우 적은 빈도로 일어납니다. 그보다는 부모님을 실망시키는 것이 힘든 아이들의 거짓말인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이런 믿음들은 '사람의 성장을 이해하지 못한 믿음'이라고 명명해 보겠습니다. 사람은 자라면서 다른 친구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또 거짓말을 할 수도 있고요. 저도 그랬고 대부분의 어른들이 그렇게 성장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른이 된 저는 이젠 다른 사람을 때리지도, 말로 상처를 입히지도 않습니다. 거짓말을 하지도 않고요. 어릴 때의 잘못된 행동을 이젠 다 교정한 것이지요.
이렇게 사람의 성장을 이해하지 못한 믿음의 치명적인 단점은, 역설적으로 아이가 성장할 기회를 놓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믿음이 강한 학부모님은 엉뚱한 사람을 공격하는 일도 잦습니다. '선생님이 우리 애를 미워해서 잘못을 지적한다.'거나 '상대 애가 영악해서 우리 애를 자극했다.'와 같은 공격입니다. 아이의 성장에 향해야 할 부모님의 소중한 에너지가 엉뚱한 곳으로 흐르는 것입니다. 방향만 잘못되는 게 아니라 관계를 악화시키지요. 교사가 가정에 아이의 잘못을 알리는 의도는 '저희 같이 힘을 합쳐 아이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돕자구요'라는 의미에서 자녀의 잘못을 전달드리는 것이지 '아이의 잘못을 고발합니다. 수사가 진행중에 있음을 알립니다' 가 아닌 것입니다. 실제 많은 교사들이 이런 상황에서 공격을 받고는 훈육에 소극적으로 변해 가고 있는데요, 사실 저도 그렇습니다. 몇번 공격받고 보니 그냥 좋은 말 해주고 말자는 생각이 커요. 그럼 그 아이는 행동을 교정하지 못한 채 계속 자라겠지요. 그렇게 폭군 1학년이 외톨이 6학년이 된 경우도 봤고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신보다 작은 아이들을 심심풀이로 때리던 2학년이 나중엔 여학생마저 때리는 4학년이 되어 학년의 유명 인사가 된 경우도 봤습니다. 모두 제가 바로 잡아보려 했지만 부모님의 잘못된 믿음에 가로막혀 중도에 포기한 학생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행동은 상황에 따라 정말 많이 변합니다. 부모님이 보지 못한 아이의 모습이 학교에서는 많이 펼쳐진다는 것인데요, 엄마 아빠가 나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집과 비교하면 학교는 정글에 가깝습니다. 넓지 않은 교실에 20명 남짓의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니 부딪힐 일도 많지요. 게다가 집에서는 주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데 학교는 계속 정해진 시간표대로 하니 흥도 나지 않고 예민해질 수 있고요. 작년 한해만 반추해 보아도 그렇습니다. 아주 모범적인 여학생이 소극적인 다른 학생을 오랜 기간 때리기도 했고요, 제게 칭찬 받는 것을 좋아하여 예쁜 행동을 많이 하던 아이가 제가 없는 틈에 다른 학생을 발로 차기도 했습니다. 아주 모범적이라서 제가 믿는 구석인 여학생 둘이 옆반 선생님을 흉보는 쪽지를 쓴 것을 제가 발견한 일도 있습니다. 아주 굵직한 일만 떠올려 봐도 이럴진대 제가 모르는 일까지 합하면 제가 믿었던 아이들의 모습과 다른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요? 이것들은 아이들이 위선적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의 성장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신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이게 나쁜 행동임을 알려주고 더 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 아이는 아닐거야.'는 믿음을 갖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저도 학교 입학을 앞둔 아이가 한 명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난 후 장기간 휴직을 쓰며 애지중지 키운 아이이지요. 다행히 아직까지는 엄마 품에 쏙 안기는 귀여운 아들이지만 저는 곧 아이에게 뒤통수를 맞을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학교에 가서 다른 친구를 때릴 수도 있고요, 애지중지 학습에 신경 써서 기른 것에 비해 공부 그릇이 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또 어쩌면 제 지갑에 손을 대는 날도 올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날이 오면 저 또한 충격이 크겠지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다른 엄마들보다 대인배여서가 아니라, 그저 교실에서 10년 넘게 쌓아온 빅 데이터가 있기 때문입니다. 나의 믿는 구석이었던 여학생들의 카톡을 보게 된 순간, 교실에서 항상 이타적이고 모범적인 2학년 학생이 1학년의 터닝 메카드를 뺏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등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뒤통수를 맞은 순간 등 차고 넘치는 경험 끝에 이제는 이해합니다. 그 또한 인간이 성장하면서 거칠 수 있는 순간이라는 것을요. 하지만 어른들이 이를 바로잡고 결국 아이는 바르게 성장할 것임을 믿어야 한다는 것도요.
자녀에게 바른 믿음을 가져 주세요. '우리 아이가 그럴 리가 없어.','우리 아이는 반드시 특목중에 갈거야.' 이런 믿음 말고요, '우리 아이가 이번에 다른 친구를 때렸구나. 그럴 수 있어. 하지만 이 나쁜 행동을 고치고 바르게 성장할거야.' 또는, '우리 애가 뛰어난 영재가 아니고 생각보다 평범한가봐. 그래도 얘는 자기 능력 안에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을거야.' 이런 믿음이요. 사람의 성장을 믿는 믿음 말입니다.
예비 초1, 2를 위한 글을 여섯 개 썼는데, 제가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오늘의 이야기였습니다. 사실 시리즈의 첫 글부터 이 글을 계속 염두에 두고 있었어요. 마무리가 뻔하지요? '아이들을 바르게 믿어주자.'라니요. 경험이 많아지니 오히려 단순해 지는 것이 있더라고요. 어쩌면 진리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으로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입학 혹은 개학까지 한달 남짓이 남았군요. 아이들의 시작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