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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Jan 12. 2024

프롤로그 - 영화란 어떤 매체일까

'영화같다'라는 표현을 사용해 본 적 있으신가요?

우리는 종종 삶에서 특별히 아름다워 보이는 우연적 순간을 '영화같다'고 표현하곤 합니다. 반면 '연극적이다'라는 표현은 다소 과장되고 인위적인 모습을 일컬을 때 사용되곤 하지요. 장면의 아름다움을 두고 '연극같다'고 말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영화와 연극의 차이에 대해 묻는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접근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가 접근성이 높은 대중매체라면 연극은 금전적, 공간적 제약이 큰, 마니아층이 주 관객을 이루는 매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소수에게 허용된 매체이기에 '문화생활'이라는 자랑의 의미를 가지기도 합니다.


공연예술학자로서 저는 오랜 시간 영화를 이해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공연예술에 매력을 느끼고 연구를 시작했지만, 영화라는 매체는 유독 매력적이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학자들 사이에서도 영화학자와 공연학자의 성향은 근본적으로 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뜻 비슷해 보이는 매체인데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요? 제가 이 질문에 대해 고민하면서 영화를 점점 이해해 가던 와중에, 이번 학기 초기 영화사 수업 강의 일부를 맡게 되었습니다.


<영화의 시작과 무성영화> 매거진을 통해 매주 수업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여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 수업은 UC 어바인의 Keiji Kunigami 교수님이 설계한 내용이 주를 이루며, 저는 조교로서 강의의 주요 주제와 읽기 자료 위주로 토론 수업을 진행합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수업 내용으로 본격적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영화와 공연(연극)의 차이에 대해 제가 분석한 부분들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영화학자가 아닌 공연학자로서 영화에 접근하기 때문에 영화인들과는 다른 시각을 가지고 영화 산업 전반에 대한 이해도 제한적이라는 점 참고 부탁드리겠습니다.



평면과 직선의 미학


접근성 말고도 영화를 특정 짓는 아주 큰 특징은 카메라와 화면의 존재입니다. 여러 각도에서 공연을 접할 수 있는 연극과 달리 카메라는 관객이 어떤 대상을 어떻게 보야아할지, 그 시선을 정해주고 이를 2차원의 평면적 화면에 비춰냅니다. 공연에 비해 훨씬 많은 통제가 가능하고 이를 통해 완성도를 높일 수 있지요. 실황이 아니기에 현장이 주는 다양한 변수 또한 상당히 통제할 수 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네모난 평면적 화면에 관객을 몰입할 수 있게 하려면 깊이감과 밀도를 잘 표현해내야 합니다. 연극이 주로 신체 에너지의 발산을 통해 농축된 에너지를 전달한다면 영화는 시청각적 깊이감을 통해 밀도 있는 에너지를 만들어내곤 하지요.


영상이 결국 사진의 연속 배열과도 같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사진의 미학과 연결되는 부분도 있는데요. 큰 키와 지나치게 마른 몸이 요구되는 모델 산업에서 A컷으로 구분되는 사진들을 보면 '각'을 잘 살리는 것이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몸에 굴곡을 만드는 지방과 살을 걷어내고 뼈가 드러났을 때의 신체가 이 각을 잘 보여줄 수 있겠지요. 배우 업계에서는 '영화에 어울리는 상'과 '드라마에 어울리는 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고 하는데요. 뾰족한 코와 높은 광대뼈 등 각이 살아있는 얼굴이 영화에 더 어울린다고 본다고 합니다. 빛의 사용이 아주 중요한 영화에서 각은 다양한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표현을 다채롭게 할 수 있게 하지요.


이처럼 완결성을 가지는 이미지를 통해 표현되는 영화는 즉흥과 미완의 미학을 가지는 공연(연극)과 대척점을 이루기도 하기 때문에 영화인과 공연인으로 갈리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는, 근본적인 특성의 차이입니다. 물론 영화 중에서도 신체의 에너지와 미완의 미학을 끌어내는 작품들이 있고, 연극 중에서도 미장센과 이미지의 완결성을 제공하는 작품들이 있습니다. 제 이야기는 아주 전반적이고 일반적인 차원의 설명인데요. 사실 이런 작품들을 '연극적이다' 또는 '영화적이다'라고 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분명 이런 시도들을 해당 매체의 기본 속성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겠지요. 




기술의 전시


각과 빛을 사용하여 정교하게 설계된 이미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영화의 기본 속성으로 '눈속임'이라는 키워드가 자꾸만 떠올랐는데요. 실제로 영화의 출현 배경에는 '눈속임 효과'라는 현상의 발견이 놓여있었습니다. 이 내용은 다음 포스트에서 더 자세히 다루려고 해요. 기본적으로 영상이라는 매체가 다양한 방법으로 대상을 맨눈으로 볼 때와 다르게 보이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당시 큰 발견이자 화제였고, 영화 제작에는 이 이론을 여러 형태로 실험해보고자 하는 동기가 있었습니다. 히치콕의 영화 <현기증>의 '계단 장면'이 대표적인 눈속임 효과라고 할 수 있겠지요. 카메라를 뒤로 빼면서 렌즈로는 줌 인을 적용했을 때 이미지가 현기증을 일으키듯 이상하게 보인다는 점을 활용한 장면입니다.

<현기증(Vertigo)>의 '계단 장면'입니다. (출처: https://gifer.com/en/MdTM)


초기 영화를 보면 기술의 발전과 여러 특수효과에 대한 흥분이 주요 동력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지금도 컴퓨터 그래픽, 아이맥스, 4D 등 계속해서 새로운 기술력을 보여주는 것이 영화산업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연극과 한 번 더 비교하자면, 영화의 등장 이후 그만큼의 기술력과 눈속임을 연극이 따라갈 수 없어집니다. 그에 따라 연극은 보이지 않는 문학적, 현장적 영역의 표현 방법을 더 깊이 탐구하게 되지요. 그래서 영화의 출발점에는 연극과 영화의 접점이 매우 크게 자리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두 매체 간 차이가 극명하게 발전하게 됩니다.




당연한 듯 우리 삶에 존재해 왔던 영화이지만 실은 20세기로 넘어오면서 출범한 장르로 이제 겨우 100년이 되었습니다. 처음 영화가 등장했을 때의 흥분을 컴퓨터나 스마트폰이 생겼을 때와 비슷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요? 영화라는 매체를 새롭게 보는 눈을 장착하고 다음 포스트부터는 영화의 시작점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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