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솜 Jan 30. 2023

2. 1,000부 인쇄 완료

[출판인 프리랜서]



문집으로 시작한 첫 책은 글쓰기 멤버와 한두 권씩 나누다 보니 총인쇄한 부수가 50부가 채 되지 않았다. 수소문해 다른 곳보다 싼 온라인 인쇄소를 알게 되었고 30만 원이 안 되는 가격에 50부를 찍을 수 있었다. 소소하게 우리가 쓴 글을 기념하기 위해 인쇄한 책이 치즈북스의 첫 책이 되었다. 워드 파일에서만 보던 원고가 내지가 되고 표지 디자인까지 완성해서 책이라는 현물로 펼쳐봤을 때 설렘, 함께 글을 쓰던 멤버들이 책을 받아보며 환하게 웃던 미소 하나까지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요즘 생각이라는 책의 제목으로 3개월에 한 번씩 문집을 출간했다. 매번 글 주제도 달랐기에 새로웠고 자신이 쓴 글이 책으로 나온다는 기대감에 다들 동기부여를 받아 더욱 열정적으로 글쓰기에 매달렸던 것 같다. 총 6권의 책이 나왔고 이 책을 기점으로 개인 산문집을 만들고 싶어 하는 멤버와 협업하여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린, 기성출판이 아닌 독립출판이라는 이름으로 산문집과 단상집을 제작했다. 지역 독립서점과 작은 도서관들이 많아 소규모 출판을 하는 창작자들에게 판매의 기회가 없지는 않았다. 소규모로 개최하는 동네 프리마켓에 참가하거나 매회 열리는 도서전에 참가 신청을 내며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던 것 같다.     

 

22년은 프로젝트의 해였고 그로 인해 총 8권의 책을 만들었다. 주변 지인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친동생이 자기 교수님을 소개해준 거다. 평범한 이들의 일상을 글로 쓰고 그것을 취미 삼아 책을 만들던 1인 독립 출판사 사장에서 정말 큰 프로젝트가 아닐 수 없었다. 지역에서 큰 대학병원의 의사이자 교수 그리고 엄마인 그 분을 만나게 된 거다.      


100부 이상 인쇄를 찍어본 적이 없는 초보 출판사 사장. 그렇다고 쫄 수는 없었다. 책은 만들어서 유통하면 되기에 호기롭게 책 출간 프로젝트를 진행하자고 구두로 약속했고 이제 대형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인세를 몇 % 할지, 계약금이 필요한지, 자비출판 형태의 출판계약서는 있는지, 대형사 유통은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배본사 계약이 필요하지는 않는지, 1,000부는 절대 인쇄사고가 있으면 안된다는 불안감, 미리 가제본을 무조건 찍어야겠다는 소심한 마음.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불안함 한가득, 그 위에 올라오는 막중한 책임감, 잘해야겠다는 욕심이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알 수 없는 견적의 세계로 입문하게 된 건, 기획출판, 자비출판, 반 기획출판, 출판하기 위해서는 선택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책을 만들고 싶다고 궁금한 점을 물어보는 이들이 제일 많이 하는 공통적인 질문이 있다.  

    

" 그래서 얼마 들어요?"

    

참 난해한 질문이다. 돈, 중요하다. 필수재가 아니니 얼마의 금액을 본인이 부담할 수 있을지 중요하니 더 그러할까? 딱 떨어지게 대답하기가 힘든 이유는 책 인쇄를 넣기 위해 선택해야 하는 사항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음, 뭐라고 대답하면 좋을까? 한참을 고민하다 생각해낸 답변은      


" 책 제작을 저렴하게 하려면 최소한의 사양을 선택하면 되세요. 컴퓨터와 같이 고사양을 선택할수록 가격이 올라가고 저사양을 선택할수록 가격은 내려가지만, 선택의 폭은 좁아집니다. 옵션은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으니 원하는 퀄리티를 정해주시면 됩니다."

     

그렇다. 책 인쇄라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렇게 대답해도 아리송하다는 듯    

 

" 어떤 퀄리티를 말하는 거죠? " 라고 되묻는다.      

" 그게, 비용을 절약하시려면 표지와 내지는 흑백으로 하시고 내지 종이 두께는 얇게 80g 정도에 표지는 최소 200g으로 페이지 수와 책 크기는 작을수록 좋습니다. 옵션으로 코팅이나 후가공은 진행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

      

제작의 9할은 인쇄비인데 비용이 부담스럽다면 질적으로 높은 책을 제작하기 힘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수를 많이 하면 할수록 비용은 쭉쭉 떨어진다. 최소부수 2부를 인쇄하게 되다면 권 단가가 25,000원 이상이라면 1,000부를 찍게 되면 권 단가가 5천 원 이하로 떨어진다. 그러하니 판매 여력이 된다면 1,000부 이상 찍는 게 답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책을 구입해 줄 회사 동료, 환자, 후배, 제자들, 사회적으로 명성이 있는 직업과 여러 매체를 통해 얼굴을 내보인 교수님은 주변 사람들에게 책 제작을 하게 되었다고 홍보하셨고 충분히 1,000부를 소진할 수 있다는 자신감 또한 있으셨다. 그렇다. 뭐든 개인의 파워가 필요한 요즘이다.      


원고 작업이 끝나고 내지와 표지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면서 점검해야 할 것들이 늘어났다. 맞춤법 검사를 시작으로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부분은 수정하고 소제목 부분은 폰트를 눈에 띄게 변경했다. 하나를 수정하면 뒤이어 작업해야 하는 수고스러움이 책 제작 과정이다. 그렇게 내지와 표지 작업을 완성하고 책을 제작 마감 기간이 일주일 채 남지 않게 되었다. 하루 정도 작업이 늦어지면서 일정이 밀렸고 설 연휴 택배 배송 마감 이슈까지 있어 가슴이 졸리는 상황을 직면했다. 다음 주 설 연휴 전까지는 완성 책이 필요한데 아직 가제본도 못 받은 거다.     


‘ 큰일이다. 기한 맞춰야되는데...... ’      


1,000부라는 부수를 가제본 없이 즉, 샘플 책을 통한 검수도 없이 인쇄를 진행할 용기는 없었다. 평소 같으면 온라인 인쇄소에 2권을 주문해서 가제본을 받을 텐데, 설 연휴가 있어 바로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네이버 검색, 주변 출력센터를 하나둘씩 검색하니 바로 근방에 한 곳이 눈에 들어왔다.      

‘ oo 출력 센터, 당일 인쇄 가능 ’     

‘ 와, 큰일 날 뻔, 제발 가제본 2권만 당일 인쇄 제발! ’     

조급한 마음에 금방 작업이 되냐며 초조한 목소리로 사장님을 다그쳤고 무덤덤한 목소리로     


 "작업 파일, 보내주셔요. " 라는 짧은 대답과 함께 통화를 다급히 종료되었고 1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책을 찾아가라며 문자 한 통이 들어왔다.      

 ‘ 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급박하게 찍은 가제본으로 검수하고 수정 후 바로 본 1,000부 주문을 들어가려는데  파일을 또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목차 페이지 수 맞는지 사진 해상도는 괜찮은지 표지 그림 좌우 여백 비율은 맞는지. 반복된 확인 작업을 하면서도 마음이 졸려서 쉽사리 주문 버튼이 눌러지지 않았다. 

     

‘ 이렇게 소심하다고? 인쇄 사고 없겠지? 그래, 계속 확인했는데 이상 없었어. ’     

자신을 다독이며 클릭, 클릭, 최종 파일을 올려 주문을 완료했고 이내 주문 확인으로 페이지가 넘어갔다.     

‘ 이게 뭐라고 이렇게 조마조마한 걸까? ’     


실수 없이 잘하고 싶은 마음에 충분히 애썼다고 수고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수고했어."

작가의 이전글 1. 원고만 준비되면 출력하면 되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