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제위기와 진영논리

보수와 진보 간의 극단적 갈등은 체제위기를 보여주지만 출구가 없다

by 왼쪽날개


많은 이들이 청년 극우의 “극단적 폭력 소요”와 2030 여성 중심의 탄핵찬성 집회의 “질서있는 투쟁”을 대비해 바라본다. 하지만 진영주의에 입각한 도덕적 우월감을 걷어내면, 이 두 투쟁의 대비에서 우리는 이질적인 무엇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상식에 따르면 보수는 현재의 제도를 유지하려 하고, 진보는 그 제도를 넘어서려 한다. 그런데 지금은 이 두 진영의 집회에서 수호와 전복의 주체가 뒤바뀌어 나타난다. 집권자를 끌어내려 뒤엎겠다는 진보는 사실은 87년 민주화 이후 수립된 지금의 사회체제 (헌법질서와 작동원리로써의 민주주의)를 지키려하고, 보수는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외치면서도 (그들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현재 체제의 작동 방식을 뒤집으려 한다. 유발 하라리의 지적처럼 “원래 보수파란 현재의 제도를 유지하려는 자들인데, 지금 세계에서 이들은 정반대로 지금의 제도를 파괴하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목도한 풍경의 이질감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먼저 보수와 진보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일반적 관점에서 극우의 폭력적 발호는 보수우파의 본질을 벗어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20세기 내내 보수는 이 체제가 작동하는 질서를 지키려하기보다는 언제나 이 질서를 전복하여 체제의 운영방식을 바꿔왔다. 대공황으로 완전히 기능을 상실한 1930년대 자유주의 시장의 작동방식을 뒤엎은 것은 파시즘과 나치즘 같은 우익 전체주의였다. 반면 진보는 우익이 바꿔놓은 체제 운영의 질서를 보완-재구성하여 체제의 지속성을 강화했다. 전후 질서에서 진보는 파시즘과 나치즘이 시장의 관리 도구로 들고 나온 위계적 지배 도구인 전체주의적 국가를 사회적 지속과 유지를 위한 관리의 도구로 개선했다. 미국의 뉴딜과 유럽의 복지국가 시스템은 자본축적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잉축적을 관리하기 위해 시장에 개입하고 계급갈등의 마찰을 최소화하는 효과적인 도구로 국가를 활용하고 관리하는 수단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는 축적체제의 착취를 완화하는 역할을 했음은 분명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볼 때 이 시기부터 진보는 체제 이행이라는 좌파적 지향을 상실한 체 축적체제의 지속을 담당하는 부역자이자 체제 관리의 지배적 주체였다.


1980년대 신자유주의의 등장과 유지에서도 보수와 진보는 정치적으로 이전 시기와 동일한 방식으로 기능했다. 1970년대 수익률 위기 속에서 기존의 관리국가의 기능을 뒤엎고 나온 이들도 미국의 진보세력이 아닌 극우 보수세력인 네오콘이었다. 이들은 총자본이 확장되도록 전후 자본집적을 관리해오던 국가의 기능을 뒤엎고 자본이 대자본으로 집중해 수익률 하락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마련했다. 진보주의가 마련한 관리국가에 의한 시장 규제들이 공격적으로 철폐되었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불안정 노동을 확대해 노동시장을 이중구조화하여 노동계급을 극단적인 경쟁 속에서 파편화했다. 대자본들은 하나의 생산물이 생산되는 생산과정의 단계마다 가장 낮은 노동비용의 공간을 찾아내 생산을 국제적 생산 네트워크로 묶어내는 글로벌 밸류 체인을 형성했고, 적극적으로 노동이민을 흡수해 자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화와 그로인한 임금 압박을 강화했다.


극우파 주도로 이루어진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이행은 체제 안에 많은 갈등과 사회 혼란을 야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갈등과 혼란을 체제 질서 하에 안정화 시킨 것도 이전의 전후 체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진보주의자들의 역할이었다.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 (DEI)은 체제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아니라 체제의 울퉁불퉁한 표면을 매끈하게 다듬어 체제 경계면의 수용성을 강화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 두터워져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사회의 간극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 체제 경계의 끝에 매달린 이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체제의 경계에 포용하는 것이 진보의 역할이었다. “경쟁에서 낙오한, 또는 처음부터 열등한 저들을 인정하고 포용하자.” PC(정치적 올바름)와 DEI는 본질적으로 체제의 경계를 수호하려는 체제관리의 수단이다. 100여년 전 1920년대 혁명의 실패에 대한 좌파의 정치적 경험은 체제 너머의 비전을 거세했고 그 후대들은 체제관리의 부역자로 전락했다. 전문관리계급(Professional Manegerial Class, PMC)이 오늘날 진보의 정확한 명칭이다. 이들은 좌파의 지적 유산을 문화 자본화했고, 증여된 경제적 문화적 자본을 바탕으로 신자유주의의 극단적 경쟁 속에서 관리계급으로 성장한 중도좌파들은 후기신자유주의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주류로 자리잡았다.


한국의 86세대는 한국판 PMC에 다름 아니다. 동시대의 학년 연령의 10%도 안되던 대학입학자들, 그들 중 운동권, 또 그들 중 현실 정치와 사회 주류에 합류한 한줌의 무리가 86세대라는 이름으로 자기 세대 전체의 이름을 독식하고 한 시대의 네이밍을 주도했다는 사실은 87년 민주화 이후 30대의 청년시절부터 이들의 특권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입증할 뿐이다. “86관리계급”이 이들에게 걸맞는 정확한 이름이다. (이들에게는 대학에서 아카데믹한 교육과정이 없었다는 의미에서 “전문적인 professional”이라는 수식어는 빼는 것이 맞다.)


전세계적인 극우의 정치적 발호는 “반동화”와는 다르다. 이것은 체제의 구조적 힘들의 발현형태다. 심층에서 벌어지는 기제들(mechanisms)의 분절은 1980년대 이래로 지금까지 유지되어 오던 자본축적체제로써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시효가 끝나가는 신호들을 정치와 사회의 표층으로 올려보내고 있다. 역사적 자본축적체제의 경계들에서 언제나 그랬듯이 이 붕괴는 경계의 약자들의 삶을 파괴하고 그들의 분노를 응축한다. 체제 이행의 전망을 지닌 좌파가 멸종한 후, 이 응축된 분노는 언제나 새로운 축적체제로 이행하려는 극우들의 정치적 발호와 만나 극단의 시대를 연출했다. 우리가 지난 1월 19일 서부지검 폭동에서 목도한 것은 이것임이 분명하다.


지금도 탄핵 찬성의 대오에서 흩날리는 ‘아무말 깃발들’에서 우리는 위트와 참신함, 개인이 깃발이 되어 나부끼는 집단지성의 힘을 본다. 하지만 그것은 이들 대다수가 “조직되지 않은 개인들”임을 입증할 뿐이다. 이들은 서부지검에 난입한 폭도들의 분노와 달라 보이지만, 우리 사회의 무언가에 대한 집요한 거부와 불신을 그들과 함께 공통분모로 삼고 있다. 이들은 모두 지랄 박살난 나라 꼬라지에 뛰쳐나왔지만, “나는 저 조직된 진보에 포함되지 않아!”를 꿋꿋히 말하고 있다. 개인의 힘은 거기 까지다. 폴리스 라인을 반듯하게 지키며, 버려진 쓰레기 한 조각도 챙겨 가져가는, 체제의 경계선 안에서 그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말라 쓰러질 것이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한 수많은 개인들이 체제의 경계 안에서 말라 쓰러진 그 폐허 위에서 미국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의 조직들이 태어났지만, 이 땅에서 우린는 무엇을 키워낼 수 있을까. 적어도 이 혼란의 정국이 끝나고 새로운 무언가가 시작된다면, 그것은 이 투쟁의 결과가 혐오로 갈라진 진영 정치의 한축이 승리하는 것이어선 안된다. 위기는 체제의 심장에 있고, 죽어가는 것은 체제를 뒤흔들며 발악하는 극우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대한민국을 관리해온 이 체제의 주류, 무능과 위선의 86관리계급의 민주당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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