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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재용 Feb 13. 2023

백전백승의 의뢰인

그분이 의뢰하는 소송은 이상하게도 잘 풀렸고 결과도 늘 기대보다 훨씬 좋았다. 분명히 우리에게 불리한 구석, 찜찜한 구석도 있었고 그걸 해결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법원에서는 그 부분을 보지 않았고 상대방은 스스로 자멸했다. 나는 그분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분에게 의뢰받은 소송들이 끝나고도 이런저런 자문도 해드리면서 꽤 친밀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분이 사업을 하면서 여러 문제가 생겨났지만 또 잘 해결됐다. 그분과 대화하거나 가까이 지내면서 내 일도 잘 풀리기를 바랐다. 그분에게서 일이 잘 풀리는 좋은 기운을 받고 싶었다.


최근 몇 달간은 연락이 뜸해서 안부전화라도 드려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분이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별다른 지병도 없으셨는데 황망할 뿐이었다.


소송을 하면서 언제나 이길 수는 없고, 오랜 신뢰관계가 있는 의뢰인이더라도 패소를 이유로 한순간에 돌아설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다.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가 아무리 인간관계가 좋더라도 변호사와 의뢰인으로 만난 이상, 소송의 결과, 승패소가 관계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패소하고도 깊은 신뢰를 유지하는 의뢰인들도 다. 하지만 패소 후에도 신뢰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결정권은 나에게 없다. 남느냐 떠냐느냐는 오로지 의뢰인에게 달려 있다.


그분과 함께 했던 소송은 늘 이상하게 유리하게 풀렸고 결과도 늘 과분할 정도로 좋았다. 그분에게 앞으로 무슨 분쟁이 생기더라도 또 잘 해결될 것 같았고 그분 역시 우리는 잘 맞는다고 그러셨다. 나를 백전백승의 변호사라고 주변에 소개해 주시기도 했다. 그분에 대해서는 패소할 것이라는 불안함, 패소로 사람을 잃을까 하는 불안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렇게 떠나가실 줄은 몰랐다.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곱씹어 볼수록 슬프고 허전하다. 아무리 불리한 싸움이라도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던 알 수 없는 기운을 내게 불어넣어주셨던 분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래도 서로에게 영원히 백전백승의 변호사와 의뢰인으로 남게 된 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은 너무 흔하고 특별할 게 없어 보이지만 더 보탤 것도 뺄 것도 없는 적당한 말인 것 같다. 냉엄하고 무심한 죽음 앞에서 무슨 미사여구가 더 필요하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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