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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영 Sep 08. 2023

필드워크와 김밥

물건과 기억에 대한 단상

논문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을 필드워크라고 한다. 나는 한국전쟁의 박물관 전시를 연구하고 있어서 당연하게 한국으로 필드워크를 오게 되었다. 


나의 필드워크는 크게 두 가지 작업으로 진행된다.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박물관 관람과 기록이다. 전국 곳곳에 한국전쟁을 전시하는 기념관, 박물관, 전시관 등을 다니면서 전시를 보고 사진과 영상을 꼼꼼히 남긴다. 이 자료들은 박사논문에 가장 중요한 자료가 된다. 

추가적으로 전시를 관리하시는 분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글로 남긴 자료들 수집하기도 한다. 


올해 여름에는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부터 시작해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제주 4.3 기념관 등을 비롯해 전국에 있는 서른 곳이 넘는 기념관에 다녀왔다. 


필드워크 기간 동안 가장 많이 먹은 음식은 김밥이다. 

김밥만큼이나 편하고 죄책감 없는 식사선택지가 있을까?


김밥은 여러모로 편하다. 먹기 편하고 혼자 먹기에도 적합하다. 

급할 때는 포장해서 박물관 인근 앉을 수 있는 곳에서 요기하고, 시간이 조금 남으면 국과 함께 한 알 한 알 정성스레 먹는다. 날 좋은 날 마당 벤치에 앉아 박물관을 바라보면서 점심을 하고 있으면 무엇이 되었든 무작정 잘 될 것 같아 행복하다. 

김밥은 고슬고슬한 밥에 갖가지 알록달록한 재료들이 한입에 속 들어갈 수 있게 말려 있다. 채소와 단백질, 탄수화물이 적당히 들어있어 내 몸도 좋아할 것 같은 음식이다. 


의외로 기대에 미치지 못 한 식사로 인한 감정기복을 몇 번 경험하고 맛과 식사 경험을 예측할 수 있는 김밥을 고집한 이유도 있다. 

김밥은 사진으로만 봐도 대충이 맛이 상상이 가고 실제로 맛있어 보이는 김밥이 더 맛있어 보인다. 안전한 음식이다.

김밥집은 또 어디에나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김밥을 전문적으로 마는 가게도 있고 편의점에도 김밥이 있다. 메뉴가 정해져 있으니 검색하기도 주위분께 여쭤보기도 쉽다.  


이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필드워크를 하면서 김밥을 가장 많이 먹은 이유는 분명 더 있다. 

김밥은 필드워크에 최적의 음식이다. 김밥은 적당히 배를 채워준다. 배가 너무 부르면 오후 작업 때 노곤해지 십상이고 너무 가벼우면 금세 허기져서 짜증이 올라온다. 심지어 맵거나 짜지도 않아 속이 불편한 확률이 낮다. 예상치 못하게 방문객이나 박물관 선생님과 대화를 나누게 될 때 마늘 또는 양파로 인한 입냄새 걱정도 없다. 분량으로나 효율로 봐서 모두 박물관 작업에 아주 적합하다. 


맛없는 김밥을 찾기 쉽지 않지만 감탄할 만큼 맛있는 김밥을 만날 확률도 매우 낮다. 그래서 아주 맛있는 김밥을 먹은 날이면 남은 하루는 뿌듯하게 작업을 하게 된다. 

나도 김밥처럼 안전하고 부담스럽지 않은 논문을 쓰고 싶다. 


지금까지 나의 필드워크에 함께해 준 수많은 김밥에게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올린다. 


Copyright: Geonyoung Kim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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