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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영 Sep 27. 2023

유물의 나이

땅파기 좋은 날 7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어떻게 알아?"


가끔 친구들한테서 듣는 질문이다. 사실 유물과 유적의 시간과 주인은 고고학자에게도 아주 중요한 화두다. 


유물의 나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제작된 시기에 대한 기록이 명시되어 있는 유물도 있고 정황으로 유추해야 하는 유물도 있다. 고고학이 발전하면서 더 많은 방법들이 개발되고 시간을 알 수 있는 유물과 유적의 종류도 더 넓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에서 나온 물건들은 오래될수록 시기가 모호해진다. 

사실 대부분의 유물의 연대를 추정할 때 과학적인 장비를 동원하지 않는다. 조금 허접해 보일 수 있는 방식으로 개별 유물의 시기를 추측하지만 유물들이 한점 한점 모이면서 연대를 추정하기 위한 계보가 만들어진다. 발굴된 유적이 많을수록 유물이 더 많이 쌓일수록 시간의 해상도가 높아진다. 


1. 유물에 새겨진 글씨 

문자가 나온 이후의 시기부터는 유물의 시간 추청이 조금 수월해진다. 유물이 말을 하기 때문이다. 

아래는 경주 호우총에서 출토된 청동그릇이다. 그릇에는 한자로 "을묘년"이 바닥에 새겨져 있다. 광개토왕과 관련된 을묘년을 미루어 보면 이 그릇은 서기 415년 경에 만들어진 그릇으로 추청 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광개토대왕명 청동그릇  Copyright: Geonyoung Kim (2023)



2. 같은 구덩이에서 나온 유물: 공반관계


하지만 대부분의 유물은 민둥민둥한 상태로 흙에서 나온다. 

글이 없는 상태로 발굴이 되면 고고학자들은 다른 방법으로 유물의 시간을 추청 한다. 예를 들면 유물이 나온 구덩이의 시간을 측정하거나 같은 구덩이에서 출토된 유물의 시기를 전체에 확대하는 경우가 많다. 하나의 구덩이는 하나의 타입캡슐로 볼 수 있다. 하나의 구덩이에는 비슷한 시기에 유물과 흙이 쌓였음을 묵인하고 우리는 이걸 "유구" 또는 "층위"라고 부르기로 한다. 


첫 번째 경우는 유물이 출토된 구덩이의 시간을 확인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땅을 파면서 다양한 활동을 한다. 구덩이를 파서 집을 만들거나 무덤을 만든다. 시간이 지나면서 집은 허물어지고 무덤 위에 흙이 쌓이면서 다른 구조물이 들어선다. 보통의 경우 매 순간마다 땅에 흙이 쌓인다. 바람이 인근 산의 흙을 땅에 뿌리고, 강이 흐르면서 퇴적토를 끊임없이 쌓아 올린다. 그래서 강가의 경우 다른 곳에 비해서 흙은 더 빨리 쌓인다. 


고고적 발굴은 흙이 쌓이는 순서를 거슬러 간다. 따라서 유적을 발굴할 때 보통 현재의 지표면에서 아래로 발굴한다. 신문에서 서울 종로에서 조선시대 유적이 발굴되었다는 소식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때 만들어진 구조물들이 무너지고 근현대에 거치면서 쓰레기와 흙이 쌓이면서 묻힌 것이다. 지금의 땅 아래는 조선시대의 유적이 그 아래는 더 오래 전의 유적과 유물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점을 활용해 구덩이의 시간을 추측할 수 있다. 조선 후기와 조선 전기의 구덩이 사이에 만들어진 구덩이의 경우 조선 전기와 후기 사이 언저리에 만들어졌을 것이며 그 구덩이의 유물도 그쯤에 구덩이에 버려졌을 것이다. 

발굴층위 설명도 Copyright: Geonyoung Kim (2023)


두 번째 경우는 한 구덩이에서 나온 특정 유물의 시간을 확인하게 되어 구덩에서 출토된 전체 유물을 일괄처리하는 것이다. 

같은 "유구" 또는 "층위"에서 함께 나온 유물은 "공반 관계"를 갖는다. 우리나라의 경우 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유물 중에 가장 이른 것은 한나라에서 건너온 동전과 청동거울이다. 

한나라 (기원전 202년 - 기원후 220년) 때 만들어진 동전이나 청동거울은 그 모양새가 시기별로 구분이 되어 시간을 알 수 있는 아주 좋은 척도가 된다. 우리가 핸드폰 기종으로 출시연도를 파악할 수 있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동전이나 청동 거울이 출토된 유적에 함께 나온 유물도 비슷한 시기로 보는 경향이 있다. 한반도에서 발굴된 무덤에서 한나라의 동전이나 거울이 발견되면 이들의 사용시간으로 무덤의 제작 시기를 유추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추측은 다소 위험한 전제를 따른다. 모든 유물은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같은 날 묻혔다는 전제 아래 이루어진다. 하지만 큰 쓰레기 통에 생활 쓰레기를 버려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쓰레기는 각각 다른 날짜에 만들어졌으며 쓰레기통을 비우지 않고 아주 오랫동안 쓸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위에 예시로 들은 청동 그릇도 사실 같은 무덤에서 나온 유물의 모양새가 5세기 전반의 것으로 보이지 않아 6세기의 무덤으로 보고 있는 게 요즘 학계의 주장이다. 그릇을 산 사람이 오랫동안 갖고 있다가 죽을 때 같이 묻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3. 비슷한 유물 줄 세우기: 형식분류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은 유행을 타는 것들이 많다. 핸드폰이나 라면봉지를 보면 유통연대를 짐작할 수 있듯이 유물도 시대별로 특징이 있다. 


credit: design.co.kr

토기도 특징별로 제작사용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 예를 들면 항아리의 전반적인 모양이나 바깥에 새겨긴 문양 또는 장식으로 대략적인 시기를 파악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하나의 유구에서 출토된 유물의 시기를 추정해 취합하고 인근 유구와의 관계도 고려하여 유물과 유구의 시간의 추정할 수 있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유물의 시간은 보통 특정 연대가 아닌 어떤 범위에 속한다. 



4. 장비를 이용한 연대 측정


시간 변화에 따라서 변화하는 화학적 물리적 성질을 활용해 유구 (층위) 또는 유물의 시기를 측정하는 방법도 있다. 고고학에서는 아주 많은 방법들을 사용하고 연대측정만을 연구하는 연구소와 연구자들도 꽤나 많다. 


이번 글에서는 방사선탄소연대측정법을 잠깐 소개하고자 한다. 탄소연대측정법은 가장 많이 널리 쓰이는 연대측정법이다. 이 방법은 특정조건을 갖는 유기물, 예를 들면, 탄 목재나 식물씨앗 사람의 뼈 등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 한글로 발음할 때 "씨포틴" 또는 "방탄연대"라고도 한다. 다음에 고고학자를 만나거든 "씨포틴"에 대해서 알려달라고 하면 놀라면서 좋아할 것이다. 


생명체들은 살아있을 때 공기와 탄소를 끊임없이 주고받는다. 그러다가 생명활동을 중단하는 순간부터 공기와 탄소를 주고받지 않는다. 그 순간부터 체내에 있던 방사성을 갖고 있는 탄소(c-14)는 특정 속도를 따라 감소하기 시작한다. 과학자들은 5730년이 지나면 c-14의 양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해서 유기물의 잔존 c-14를 측정해 목재나 뼈의 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탄소연대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에 교정을 할 수 있는 보조 수단이 필요하다. 보통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연대를 측정하는 수륜연대로 탄소연대측정결과를 보정한다. 


또 다른 예로 쌓인 흙이 마지막으로 빛과 접촉한 시기를 측정하는 방법 (OSL), 마지막으로 열을 받은 시기를 측정하는 방법 (TL),  포타슘/아르곤의 비율을 측정하는 방법 등등이 있다. 각각의 방법은 저마다 분석이 가능한 물질과 측정가능 범위가 있고 각자의 정확도와 해상도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탄소연대는 이 중에서 적용대상이 넓은 데다 비용과 시간적 측면에서 탁월하다. 



사실 박물관에 표기된 유물의 연대는 참고용이 많다. 유물의 시간은 얼마든지 조정이 될 수 있고 연구가 진행되면서 시간의 해상도도 올라갈 수 있다. 


유물을 감상할 때 유물을 시간을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유물의 다른 특징들을 살펴보는 것도 좋다. 예를 들면 실제로 그 물건을 사용했을 모습을 떠올려보거나, 만드는 과정을 상상해 보는 것도 재밌다. 이 주전자는 누가 썼을까? 산 사람이 썼던 주전자일까? 죽은 자를 위한 물건일까? 물은 어디로 채우고 부었을까? 어떤 재료로 만들었으며 어떤 사람이 빚었을까? 


이런 상상은 꼭 정답을 그리기 위한 것이 아니어도 된다. 사실 대부분의 고고학자도 "절대 그럴 수 없어"라고 말하기 힘들다. 또 과거는 우리 모두의 것이며 어느 권위 있는 학자나 정권에 의해서 정의되어서는 안 되기에 우리 모두 과거를 상상할 권리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자신만의 상상을 친구들과 나누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박물관 관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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