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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영 Jan 06. 2024

돌들의 동짓날

물건과 기억에 관한 단상

일 년에 두 번, 하지와 동짓날에 스톤헨지의 울타리가 열린다.  

평소에는 까마귀만 들어갈 수 있는 돌들의 공간에 사람들도 초대된다. 


이날들은 드루이드가 스톤헨지에서 의례를 치르는 날이다. 

드루이들은 고대에 마법사라고 여겨져 켈트사회에서 높은 계급에 위치했던 제사장 집단들이었다. 

현재 영국에서 드루이드들은 스톤헨지 관리경영에 있어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구성원이다. 

특히 몇 년 전 스톤헨지 주위에 지하 터널 (A303도로)을 뚫기로 한 정부의 결정 이후로 드루이들은 반대의견을 꾸준히 표해왔다.

 

영국에 온 지 3년이 넘은 올해 나는 해가 가장 짧은 동짓날에 스톤헨지에 다녀왔다. 

작년에 10만 명이 몰려들었다 해서 스톤헨지 서클에 들어나갈 수 있을까 주차는 할 수나 있을까 한 보따리 걱정을 안고 새벽 2시 반에 케임브리지를 떠났다. 

스톤헨지 매표소에서 스톤헨지 서클까지 약 2킬로 거리가 있다. 보통은 유적 셔틀버스가 몇 분마다 관광객을 실어다 나르지만 이날 새벽에는 모든 사람들이 걸어갔다. GYK, 2023

6시 즈음 스톤헨지 매표소를 지나 돌들이 있는 곳으로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깜깜한 밤에 사람이 무리를 지어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둠 속에서 모든 사람이 같은 곳으로 향해 걸어가 순례길에 오른 것 같다.


걸어도 걸어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조급함과 답답함에 섞여 사람들을 따라 무작정 걸었다. 


그 길의 끝에서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많이 몰려있었다. 

조명에 눈이 반짝거리는 아기와 지팡이에 기대고 계신 할머니, 기네스를 손에 들고 홀짝거리며 모르는 사람에게 지치지 않고 새는 발음으로 말을 거는 사람, 머지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북소리와 노랫소리. 어디선가 한 번쯤 경험해 본 상황인 것 같지만 떠오르지 않는다.  

곧 있으면 스톤헨지를 가까이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어깨춤을 춘다. 

7시가 조금 넘자 관리인들이 바리케이드를 치우고 사람들이 스톤헨지 쪽으로 몰려가기 시작했다.  


곧이어 제사장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도착해 북을 치면서 의식을 치를 공간을 확보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들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꽃과 촛불을 놓고 노래를 부른다.  

짧고 기교가 없는 노래 두세 곡이 이어졌다.

드루이드의 의례는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라들을 초대했다. 

함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가사를 알려주고 언제 함께 부르는지도 알려줬다. 

제사장의 기도에 따라서 드루이들은 네 개의 방향에 안녕과 평화를 부르고. 기원하는 방향에 맞춰 모든 사람들도 그곳으로 서서 향해 기도를 했다. 


사람들이 정말 많이 모여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했다.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 노인과 아이, 미소를 짓는 사람도 있었고 눈을 감고 소리를 듣는 사람들도 있었다. 

돌 위로 사람들이 올라갈 때마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을 향해 소리를 쳤다. 

"내려오세요!"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아 야유를 보냈고 돌 위에 올라간 사람은 버티다가 내려온다.  

이런 상황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 위로 올라서는 사람은 계속 나타났다. 


기도가 끝나자 빨간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한 명 한 명씩 상자 위로 올라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해와 땅에게 감사를 표하는 노래였다. 


연초 냄새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신기한 건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손을 뻗어 손바닥을 하늘에게 보여주고 

허리 숙여 땅을 만지기도 한다. 

의식은 약 한 시간 반 가량 진행되었고 해가 지평선 위로 떠오른 이후 얼마되지 않아 끝이 났다. 

드루이드의 의식이 끝나자 나머지 한쪽에서 북을 치고 춤을 추기시작했다. 

돌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들, 

팔레스타인 국기 아래서 모임을 갖는 사람들, 

돌에 속삭이는 사람들, 

어떤 연유로 오늘 이곳에 오게 되었고 평소에는 어떤 모습을 한 사람들일까. 


스톤헨지는 영국인 정체성에 큰 자리를 차지한다. 

고고학 유적을 꼽으라면 스톤헨지를 빼놓고 말할 수 있을까. 

역사와 경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써의 가치가 스톤헨지의 독보적인 위치를 만들어 준다. 

하지만 동짓날에 본 것은 빨간색이나 체크무니와 같이 현재의 영국스러움을 연상시키는 상징과는 거리가 멀다. 

투박한 노래, 저마다 다른 복장, 나뭇가지와 연초, 뭔가 어설퍼 보이는 의례 

동짓날의 스톤헨지에서는 보다 먼 과거의 공통된 기원을 내세워 어렴풋한 잔상에 회기 시키려는 실현들이 더 많이 보였다. 

이들은 스톤헨지를 통해 무엇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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