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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영 Aug 15. 2022

봄에 떠밀려 간 식물원

물건과 기억에 관한 단상

갑자기 봄이 와버렸다. 


봄이 오면 나도 모르게 조급해진다. 


겨울에는 모든 것이 죽어있어서 나도 덩달아 게으름을 필수 있었는데 

몽실몽실한 공기가 채워지고 그것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일사불란하게 피어나서 나도 분주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서 맨살에 닿는 간지러운 공기와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어둡고 답답한 겨울만큼이나 얄밉다. 


오늘은 케임브리지 식물원에 왔다.  


요새 별로 하는 것도 없는데 무기력하다. 

게으른 것인지 감정적으로 피곤해서인지 모르겠다. 

오늘마저도 뭐 이런 날도 있겠거니 하면서 시간을 보내기엔 너무 아까워서 뭐라도 하기로 했다. 


작년 5 월에 한번 지나간 이후 올해 처음 식물원 안으로 들어왔다.


식물원은 공원보다 훨씬 정돈된 느낌이 든다. 

식물에는 이름표가 달려있고 온실의 용도를 설명하는 문구도 있다.

같은 나무인데 식물원에 나있는 나무와 꽃은 박물관에 있는 전시품 같다. 

나름의 명분과 가꿈을 보는 것인가. 

그 가꿈에도 정원사가 이어가는 철학이 담겨져있겠지. 


공원에 앉아서 책도 읽고 사람들 구경도 했다.


나도 친구들과 담요를 위에 주전부리 널브러뜨려 놓고 책으로 얼굴을 가리고 낮잠 자고 싶다. 

나무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 

책 읽는 사람들. 

조금 전에 입구에서 나와 같이 지도 안내판을 봤던 체크무늬 셔츠를 입은 사람. 

민소매를 입고 햇볕을 쬐고 있으면 따갑지 않을까. 


잠시 멍도 때렸다. 


하지만 이내 멈추어 버렸다. 

멍 때림도 연습이 필요한 듯 하다. 음악이나 핸드폰같이 정신을 기댈 무언가에서 독립된 멍을 때리는 연습. 


커피도 한잔 사 마시고 다음에 다시 여기 와서 리딩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떠났다.

적당히 시큼한 아메리카노가 맛있었다. 


쓰고 보니 식물원 가서 사람만 보고 왔구나. 


만개한 꽃나무 (케임브리지,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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