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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영 May 15. 2022

현장에서 쓰는 말들

땅파기 좋은 날 1 

처음 한국 현장에서 발굴하기 전에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현장에서 쓰는 용어였다.

현장에서만 사용하는 말들이 있다. 


함척, 하이바, 구르마, 갑바 뭐 이런 것들. 

이젠 입에 익어서 현장에 새로운 사람들이 생소함을 느낄 때야 그들의 남다름을 다시금 느낀다. 



하이바 


하이바는 안전모다. 

발굴 현장에서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 셋째도 안전이라고들 한다. 종종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기도 하다. 윗분들이 현장 오실 때나 안전모를 쓰거나 아침마다 현장에서 기록용 단체 사진을 찍을 때만 안전모를 착용할 때가 많다. 또 경사진면에서 사다리를 세워 밑에서 잡아주시는 어르신만 믿고 꼭대기까지 올라가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매뉴얼에 따른 안전 지침을 모두 따르기에는 시간이 늘 빠듯하다.  

이런 쫓기는 상황에서 하이바는 안전의 상징이나 부적 같다.


처음에 한국 현장에 왔을 때 '하이바 쓰세요'를 들었을 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어디서 온 말일까?

하이바를 쓰고 고개를 제대로 세워주면 괜찮은데 머리를 숙이고 조금만 있어도 뒷목이 너무 아프다. 당시 우리 현장에서는 손으로 유구 도면을 그리는데 시간을 많이 쏟는 편이었다. 하이바를 쓰고 허리와 고개를 숙여서 그림을 그리면 머리의 무게가 아주 잘 느껴진다. 

 

하이바 안쪽 이마와 닿는 부분에 탈부착할 수 있는 천이 있다. 세탁을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뗀 적이 없어서 갈수록 노래지고 있다. 파란색 천으로 만들어졌지만 더러워지면 초록색으로 변하지 않고 누레진다. 



함척과 레벨 


함척은 높이나 길이를 재는 긴 자고, 레벨은 멀리서 함척으로 측량하고자 하는 위치의 값을 보는 기계다. 

보통은 삼인 일조로 진행한다. 가끔 이인일 조로 갈 때도 있다. 

한 명이 함척을 들고 높낮이가 궁금한 곳에 함척의 끝을 댄다. 그리고 나머지 한 사람은 레벨을 통해서 함척에 찍힌 숫자를 불러준다. 이때 숫자를 기록하는 사람이 더 필요하기 때문에 종종 삼인 일조로 작업한다. 


레벨은 삯 같다. 

레벨 봐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데 나는 말단 연구원이라서 나랑 같은 급의 친구한테 가장 많이 부탁한다. 보통은 오전에 쉬는 시간에 '나 있다가 오후에 레벨 좀 불러줘' 이런 식으로. 하지만 간혹 각자 맡은 유구를 급히 마무리해야 하는 경우면 어르신께 부탁하거나 선배님이나 팀장님께도 물어본다. 팀장님과 조를 지어서 레벨을 보면 금붕어 인내심이 언제 끝날지 몰라서 계측점 개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초스피드로 해야 한다. 그러다가 점을 하나라도 놓치면 다시 해야 한다. 


조금 젊으신 어르신들께 레벨 보는 법을 알려드리기도 한다. 그럼 그분은 '레벨 어르신'이 된다.


레벨 머리는 대가리라고도 한다. 

현장에서는 '레베루를 불러주세요' 또는 '어르신 레벨 한번 불러주세요' 

작업을 마칠 때는 '레벨 머리 (레벨 대가리) 챙겨주세요' 

이렇게 응용할 수 있다. 

함척과 레벨



단카, 손수레, 구루마 


모두 같은 말이다. 

흙과 도구를 나를 때 쓰는 옮길 것이다. 


지역마다 구루마질을 칭하는 말이 다르다고 들었다.  

'단카질', '수레질' 등이 있고 그냥 '구르마'라고도 한다. 


이게 쉬워 보이지만 외발 손수레는 반만 차도 중심을 잡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팔을 구부려서 사 수레를 팔힘으로 밀기보다 수레를 좌우로 치우치지 않게 수평을 맞추고 팔을 아래로 쭉 펴서 수레를 몸으로 밀어 저절로 가는 느낌으로 운전해야 한다. 그리고 흙산에 도착하기 전에 있는 힘껏 밀어 수레를 던진다. 흙산에 구루마가 제대로 엎어지는 소소한 성취감은 꽤 짭짤하다. 하지만 옆으로 넘어진 구루마를 세우는 데는 허리 힘을 아주 많이 써야 한다. 

구루마가 여러 번 다니면 길이 생겨서 지나갈수록 수월해진다.  

욕심내서 한가득 담아가다가 꼬꾸라지면 낭패다. 

구루마

"라떼는 말이야. 현장에서 따까리들은 수레질부터 시작했어. 후배를 사랑하는 만큼 흙을 쌓아주는 거지" 


빈 수레는 덜컹덜컹 소리가 난다. 덜컹거리면서 내 유구로 조금 더 천천히 돌아가고 싶다. 



갑바 


갑바는 유구를 덮는 비닐 덮개다. 

한국에서 다닌 모든 현장에서 갑바라는 말을 더 많이 썼다. 

유구를 비와 바람으로부터 보호해주는 고마운 존재지만 현장 사람들에게는 증오의 대상이다. 

겨울에는 땅이 얼지 않게 하기 위해서 퇴근하기 전에 꼭 갑바를 덮고 간다. 네모서리에서 갑바 끝 자락을 팽팽게 펼쳐서 그 위에 모래주머니를 한 발짝 간격으로 놓아준다. 모래주머니 사이 틈새로 바람이 들어가면 갑바는 쉽사리 날아가기 때문에 모래주머니를 잘 놓아야 한다. 

아침에 현장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도 갑바를 걷는 일이다. 모래주머니를 한쪽으로 쌓아 올리고 갑바를 접으면 대게 습기 머금은 흙이 온몸에 묻어 하루 일을 다한 복장이 된다. 그래서 나는 흙색 옷을 현장복으로 잘 입었다. 

모래주머니는 맑은 날이면 한 손에 하나씩 들을 수 있으니 비가 온 뒤 물 먹은 모래주머니를 옮기려면 허벅지로 모래주머니를 지탱해야 한다. 차가운 모래주머니가 살에 닿는 느낌은 분명히 알면서도 매번 짜릿하다. 

파란색 갑바

갑바는 보통 비닐실로 짜서 만든다. 

그래서 갑바가 어디 못 같은데 걸리면 째져서 너덜너덜 해진다. 이것도 가격 따라서 질이 달라진다. 좋은 갑바는 두껍고 무거우며 저렴한 것은 얇아서 잘 찢어진다. 

동네마다 갑바 가격기 다른지 새로운 현장에 시작하면 선생님들은 더 튼튼하고 저렴한 갑바 파는 가게를 뚫고 다닌다. 발굴 현장에서 쓰는 부자재를 대주는 업체들이 몇몇 있다. 쉽게 가려면 멀리 서라도 늘 다니는 싼 곳에서 배송을 받을 수 있지만 그래도 조금 더 양심적인 책임자 선생님이라면 그 지역의 상점을 이용하려고 한다. 


나는 언제 한번 주거지의 노지 (불 때는 곳)에서 흙을 조금 떠다가 안에 뭐가 들었는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적이 있다. 

원래 목적은 곡물의 흔적을 찾기 위함이었으니 파란색 비닐 조각이 더 많이 나와서 한참 궁금해했다. 탄화 식물을 관찰하기 위해서는 떠온 흙을 흐르는 물에 띄워서 탄화되어서 떠오르는 가벼운 유체를 걸러내야한다. 플로우테이션하는 과정에서 비닐도 샘플에 남은 것 같다.  

이렇게 갑바로 매일 유구를 덥으니 유구에 남는 건 당연하다. 

노지에서 나온 탄화 종자와 갑바 조각


갑바 조각도 남으니 발굴하면서 우리는 머리카락, 침방울, 담뱃가루도 남기겠지. 


유적은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다. 

갑바 드레스 (사진 조미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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