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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영 May 18. 2022

노르망디에서의 삽질

땅파기 좋은 날 4 

학부 때 휴학하고 반년 동안 프랑스에 있었다.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발굴을 가보기로 했다. 

솔직히 학교 실습 때 첫 현장을 다녀오고 발굴에 상당히 많이 실망해서 회의감에 휴학을 했지만 막상 휴학을 하니 박물관과 유적만 찾아다녔다. 아마도 아는 게 그것뿐이라서 그랬던 것 같다. 


어찌어찌 노르망디의 Vieux-la-Romaine 에서 로마시대 목욕탕을 발굴하는 기회를 얻었다. 급여는 따로 없지만 숙식을 제공해줘서 나에게 아주 이상적인 발굴지였다. 발굴은 일곱 해째 이루어지고 있었고 장기 발굴에 걸맞게 유적 위로 씌워진 지붕은 물론 별도의 도구 창고도 있었다. 




7월의 노르망디는 추웠다. 

아침에 후드에 긴바지를 입고 출근하다가 점심때가 되면 외투를 벗고 오후 작업 때 다시 옷을 껴입는다. 


노르망디는 비가 자주 온다. 금세 그치기도 한다. 


그날은 혼자 벽을 긁어 토층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벽과 벽 사이에 양반다리를 개고 앉아 오랜만에 혼자만의 트라울질을 즐기고 있었다. 

긁어 내린 흙을 양동이에 차곡차곡 쌓아서 

수레로 옮겨 담고 

내가 내킬 때 구루마를 운전 해 밖에 있는 흙산에 수레를 힘껏 밀어낸다. 

다시 벽과 벽 사이로 돌아와 양반다리를 개고 벽을 본다. 


그곳의 토층은 상당히 짙은 색에 조개껍질이 끼어있었다. 별이 촘촘히 박힌 밤하늘 마치. 

아래쪽 갓 노출된 신선한 토층은 힘주지 않고 긁어도 흘러내릴 만큼 부슬부슬거렸다. 

마당 있는 집에서 꽃을 심을 때 쓰는 사온 흙 같다고나 할까. 


그러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쉴 새 없이 지붕을 내리치는 비의 소리는 웅장했다. 나뭇잎이나 풀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묻힌 체 플라스틱 천장에 받히는 굉음만 남았다. 

옆 사람이랑 대화할 때 소리를 질러야 할 정도로. 


비는 곧 더 세게 왔고 소리는 더 커졌다. 


아이러니하다. 

안전하다고 느꼈다. 쌀쌀하지만 포근했다. 


다들 처음에는 조금 놀랐다가 이내 늘 그랬듯이 작업을 이어갔다. 

긁고 있는 벽 위로 가끔 수레가 지나갔고 

옆 구덩이에서는 선생님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모든 소리는 천장을 때리는 빗소리로 통일되어 동작만 보일 뿐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쏟아지는 비가 시간을 막아 내리고 있었다. 


힘주어 던진 구르마가 내는 소리도 

친구들의 잡담도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듣지 않아도 됐다. 


모두 덮어버리는 소음이 주는 고요함에 취해 

그냥 그대로 비가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으면 했다. 



벽과 벽 사이
긁던 벽
목욕탕 가게 위에 쌓인 층위
다른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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