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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건영 Jun 19. 2022

불꽃과 춤 그리고 설익은 닭고기

땅파기 좋은 날 6

오후 다섯 시 반에서 여섯 시 사이에 일을 끝내면 베이스로 돌아온다. 

저녁을 먹기 전에 수습한 유물 세척을 한다. 다 같이 잔디에 앉아서. 


7월의 노르망디는 춥다. 

대야에 따뜻한 물을 받아서 차가워질 때까지 토기를 씻는다. 

한 손엔 칫솔을 쥐고 다른 한 손엔 토기 조각을 쥔다.


비스킷 같이 작고 소중한 토기 한 알을 물에서 건져 올려 칫솔질을 해준다. 

매끈한 겉면은 물로만 헹궈도 흙이 씻겨 나가고 안쪽면은 칫솔질을 몇 번 해줘야 한다. 

깨진 단면은 사이사이에 흙이 진득이 붙어서 꽤나 여러 번 빗어 내야 한다. 물론 발굴하면서 깨진 단면은 금방 깔끔해진다. 

따뜻한 물에 담갔던 손을 꺼낼 때면 노르망디 여름의 서늘함이 더 잘 느껴진다. 나뭇잎이 조금만 살랑거리면 나도 모르게 토기를 쥔 손이 물속으로 담긴다.


맥주를 마시면서 토기 세척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나는 왜 맥주를 마시면 더 추워지는 걸까.  


그렇게 물을 한 두어 번 바꿔 가면서 토기 설거지를 하고 있으면 저녁시간이 온다. 

작고 소중한 토기 조각들 



목요일은 바베큐를 하는 날이다. 금요일마다 떠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어둑어둑해질 무렵 누군가가 장작을 쌓아서 불을 지피기 시작한다. 

불은 피우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든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기저기에서 무언가를 하기 시작한다.


나의 미숙한 불어 때문인지 아니면 새로운 환경을 읽는데 더딘 것인지 한 참 동안 사람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애써 이해해 보려고 했다. 저녁으로 바베큐를 하는 건 알고 있지만 바쁘게 빵을 옮기고 있는 몇몇과 잔디에 앉아서 화살 장난감 만드는 무리 중 어디에 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 


우왕좌왕이란 말은 이때 쓰라고 생긴 표현이겠다. 


결국 부엌에 가서 몇 마디 붙이고 라따뚜이를 만들었던 큰 스테인리스 통에 과일을 썰어 넣고 있는 친구 옆에 가서도 기웃거렸다. 

그 친구는 펀치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사과와 파인애플 대충 조각내서 담고 럼과 보드카를 있는 데로 부어 넣는다. 그냥 먹기엔 힘든 싼 럼을 아주 신나게 부어댔다. 주스도 조금 넣었다. 

집기들을 주섬 주섬 챙기면서 이제 과일 맛이 충분히 우러나길 기다리면 된다고 했다. 곧바로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를 할 것처럼 보였지만 그 친구는 도마를 든 채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이야기를 끊지 않았다.


고기 구워 먹을 준비하는 켐프 파이어


완전히 깜깜해져서야 불이 제대로 타오르고 삼삼오오 모여서 맥주 마시던 사람들이 모여 앉기 시작했다. 

소시지가 구워지고 바게트가 한 조각씩 돌아갔다.

빵은 먹는 게 아니라 반으로 열어서 접시로 쓰라고 준 거였다. 소시지는 맛있었다. 겉은 바삭한 불맛이 났고 안은 짭짤했다. 소시지를 하나 둘 더 집어 먹고 빵 접시도 조금 먹었다. 빵을 아껴두려고 했지만 소시지가 너무 짜서 안 먹을 수 없었다. 


배도 조금 찼고 맥주도 적당히 삼켰다. 옆 사람과 한 참 이야기를 하다가 말을 생각해내는데 지쳐 이내 양쪽으로 오가는 대화를 흘려보냈다. 장작은 계속 타오르고 피에르인지 다니인지 고기를 더 올렸다. 

얼굴은 더운데 몸은 춥다.
펀치 주인이 스테인스 통에서 한 국자씩 퍼서 나누어 주었다.

음. 이게 무슨 맛인지 도통 모르겠다. 

첫 입은 달달한데 넘기면 쓰다. 물컹한 과일을 한 입 씹으니 달콤함과 쓴 맛이 함께 터진다. 깜깜해서 과일이 담겼는지도 몰랐다. 차라리 과일을 안 먹는 게 나을 듯하다. 

그렇게 멍을 때리다가 너무 추워서 방에 옷을 챙기러 갔다. 


나오던 길에 부엌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에 잡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아마 머스터드와 버터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 같았다. 의자를 앞에 두었지만 아무도 앉지 않았고 소금이 들어간 버터냐 무염 버터냐를 두고 한참 이야기를 했다. 빵 자루를 안고 머스터드와 숟가락을 쥐고서. 


그러더니 갑자기 공놀이하러 가자고 해서 잔디로 갔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현장은 시설이 참 좋았다. 핸드폰 신호가 안 터지는 것 빼고 천장이 있는 숙소와 샤워실, 부엌과 캠프파이어, 배드민턴 네트,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는 민트 나무까지 있었다. 

그렇게 공놀이를 또 한참 하고 우리는 다시 켐프 파이어로 돌아갔다. 


나는 펀치를 조금 더 달라고 했다. 


이번에는 닭다리를 나누어 줬다. 새로운 빵 접시 하나를 받고 닭고기를 받았다. 

장작불에 비친 닭다리는 까많듯 보였다. 하지만 한 입 크게 베니 고기가 겨우 씹혔다. 옆사람한테 다 익었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도 모르겠다면서 소스가 더 필요하냐고 되물었다. 

공중에 떠있는 공과 플래시에 반사된 벌레의 자국들

밤은 점점 깊어졌다. 

터지는 불꽃이 하늘로 피어오르다 사라진다. 별이 몇 점이나 떠있었던 걸까. 


누군가가 차에서 아코디언을 가져와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고  

옆에 있던 또 누군가가 북을 가져와 둥둥거리며 치기 시작했다. 

북 하나 아코디언 하나로 음악이 만들어졌다.

참 신기하다. 


탁탁거리는 나무 소리를 둘러앉아 음악과 함께 대화 소리가 얹혔다. 


추워질 무렵 우리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피에르가 커다란 돌 위에서 아코디언을 피고 접으면서 스텝을 알려줬다. 


손을 잡아 꽤나 큰 원을 만들었다. 오른발 왼발 한 번씩 차고 오른쪽으로 몇 걸음 왼쪽으로 몇 걸음, 앞으로 나갔다 팔을 펼쳐 뒤로 훅 빠지고 뛰어 들어와 옆 사람과 마주 보며 팔짱을 끼고 몇 바퀴 빙글빙글 돈다. 다시 돌아와 손을 잡고 큰 원을 만들며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는다. 그리고 다시 팔짱을 끼고 빙글빙글.

처음 몇 번은 헤매었지만 다들 금세 순서를 외웠다.


익숙해질때즘 음악은 점점 빨라지고 스텝은 더 세게 밟혔다.

누가 누군지 모른 체 손을 잡고 팔이 떨어져 나갈 만큼 온 힘을 다해 뛰고 돌며  

숨이 차고 손에 땀이 쥐일 때까지 춤을 췄다. 땀 때문에 손이 미끄러질까 봐 더 세게 쥐었다. 

밖으로 원을 펼칠 때  고개를 치켜들어 보니 별이 꽤나 많이 떠있었다.  


그날 닭 뼈와 빵 접시는 누가 챙겨서 들어왔을까.

타고 있는 장작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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