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수학혐오자의 항변
수식을 보면 차갑고, 단단하고, 단호하다.
긴 문장을 단 한 줄로 압축해 우리에게 이렇게 요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건에 맞춰 관계를 풀어라.”
학생 때의 나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이성이 켜켜이 쌓아 올린 그 높은 탑 아래에서 늘 눌려 있었다.
그들이 빠져 있던 세계가 궁금하지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 답을 왜 알아야 하는지도 몰랐다.
수학을 싫어했던 이들의 마음도 대개 이랬을 것이다.
그런 내가 지금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니—정말 가끔은 내가 나에게도 놀란다.
그래서 축약된 수식이 하나의 답으로 뻗어가는 그 길, ‘아름답다’고 느끼게 된 이야기부터 풀어보고 싶었다.
—거창한 이야기를 기대했다면 사과부터 드린다. 이건 아주 작은 깨달음의 기록이다.—
그런데 막상 이야기를 시작하려 하니 먼저 내 안의 오래된 항변부터 꺼내야 할 것 같았다.
왜 우리는 수학을 싫어하게 되었을까?
중학교 1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수의 체계’를 다시 배우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아이들은 본격적인 수학의 문을 열게 된다.
그러나 많은 아이들이 초등 수학과 중등 수학의 간극—특히 ‘언어적 이해의 간극’—에서 흔들리고, 그 결과 유리수 연산의 늪에 빠진다.
사실 초등 시절의 수학은 단순하다.
• 1씩 커지는 자연수
• 자연수의 사칙연산
• 1을 여러 개로 똑같이 나누는 분수
• 1보다 작은 자릿값을 가지는 소수
• 분수와 소수의 사칙연산
그 외의 것들—방정식, 그래프, 확률—은 이야기의 그림자 정도만 스친다. 도형은 유치원 때 동그라미, 세모, 네모를 벗어나 도형을 이름을 붙여 분류하고, 길이 넓이까지 배운다.
즉, 초등 수학의 핵심은
직관적 수 개념을 ‘추상화’하는 연습과 반복을 통한 연산의 능숙함이다.
우리가 수학을 싫어하게 된 것은, 바로 이 ‘추상화’ 없이 곧장 연산으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개념을 자신의 언어로 세우기도 전에 수와 기호만 외우는 것을 지금 아이들도 반복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우리를 떠올려 보면, 수학의 문을 열었다기보다 문 앞에서 얼어붙은 것에 가깝다.
그 시절을 애도해야 한다는 마음이 들 만큼.
SNS에서 종종 논란의 초등 수학 문제가 올라온다.
그중 하나를 소개해 본다.
준희는 오전에 3/6시간, 오후에 1시간 동안 책을 읽었습니다. 준희가 책을 읽은 시간은 모두 몇 시간 몇 분인지 구해 보세요.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오전·오후의 개념’, ‘1시간 = 60분’이라는 지식이 필요하다. 이 내용은 초등 2학년 시계·시간 단원에서 이미 배운다.
하지만 많은 어른들은 이렇게 말한다.
“초등 문제에 왜 오전·오후가 나오냐고?”
그건 초등 교육과정을 얕보는 태도다.
(교육 목표를 보면 금방 해소된다.)
수학은 정확한 정의 안에서 유추하는 학문이다.
따라서 초등학생이 문제에서 배운 어휘를 적용하는 것은 당연하다.
또 하나, 늘 등장하는 비판이 있다. 국어문법을 거론한다.
“‘에’와 ‘의’가 잘못 쓰였다. 문제 오류다.”
대부분 자신의 언어 지식을 과시하려는 변주에 가깝다.
이 문제는 초3 ‘분수의 정의’ 단원이다. 분수 연산조차 배우지 않은 시기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정확한 언어적 정의다.
“오전에 3/6시간”은 1시간을 6개로 똑같이 나누고, 그중 3개라는 뜻이다. 교과서에서도 이를 ‘~의’라는 표현으로 분명히 가르친다.
예를 들어, 12개의 사물을 놓고 “12의 2/3”을 묻는다.
정답은 8이다.
아이들은 이 과정을 통해 분수를 ‘전체의 일부’라는 언어적 개념어로 배운다.
그러나 문제 풀이 단계로 넘어가 이 언어적 정의를 잊고 분수를 구하는 ‘규칙’만 빠르게 외워버린다.
그 순간부터 분수는 수포자의 1차 발원지가 된다.
나도 그 대열에 있던 사람이다.
수능을 앞두고 공식을 달달 외우던 나를 친구는 신기하다는 듯 바라봤다.
나는 오히려 그 친구가 신기했다.
그 친구는 공식을 외우지 않았다.
그리고 늘 나보다 점수가 좋았다.
그땐 미스터리였지만, 지금은 안다.
공식을 외워 풀던 내가 미스터리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 친구는 식을 언어로 이해하고 있어 나름의 논리로 풀어낸 것이라는 것을.
분수는 많은 아이들이 처음으로 길을 잃는 지점이지만,
그만큼 다시 시작하기 좋은 출발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모두 개념을 자신의 언어로 세우기도 전에 연산으로 내몰렸고, 그 순간부터 수학의 문 앞에서 다른 길을 걸었다.
이제 나는, 그 문을 다시 열어보자고 말하고 싶다. 혹은 당신의 아이들에게 그 길을 열어주라고 말하고 싶다.
수학을 언어로 읽는 방식—그 첫 장을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