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사유
저는 우리 세상을 변화시킬 가능성, 즉 *퓨처 시그널(Future Signal)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걸 좋아해요. 미래 예측과 관련된 서사를 담고 있다면, 영화, 문학 작품, 사회과학 서적, 주식투자 분석자료 등 가리지 않고 찾아봤어요. 미래는 어쩌면 우리 곁에 ‘미리’ 혹은 ‘이미’ 와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요.
*퓨처 시그널은 미래 예측의 방법론 중 하나예요. 미래는 갑자기 오지 않는다고 보는 입장이죠. 미래는 미래 징후를 주고 오는데, 이걸 퓨처 시그널이라고 칭해요. 이러한 시그널들로 인해, 미래는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힘이 어딘가에 있다고 봐요.
출처 : 도서 ‘미래는 오지 않는다’, 전치형, 홍성욱 저, 2019.08.
하지만 미래예측은 미래에 대해 긍정적인 시그널로만 가득 차있지 않아요. 특히나 우리의 미래를 결정짓는 데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과학기술만 봐도 그렇죠. 기술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보내는 ‘테크노 필리아’ 같은 태도나, 기술로 인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처럼 설명하는 ‘기술 낙관주의’는 기술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사회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우리 눈을 가리거든요.
누군가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삶의 효율성과 편리성, 그리고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낼 성장동력으로써 주목하죠.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만들어진 변화에 이끌리기만 하며 살아가거나, 사회·문화·입법 공백을 몸소 겪으며 삶의 질이 추락하고 있어요.
특히나 4차 산업혁명의 물결을 타고, 이 대립이 더욱 극한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목격했어요. 2020년 새해를 맞이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기에 택시 기사 세 명이 분신하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되었어요. 새로운 카풀 서비스로 택시 산업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리려고 한 것이었죠. 모바일 서비스 기술과 플랫폼 기반 시장이 발달하면서, 택시 산업으로 그 영역이 확장되는 것을 막아 보기 위해 처참한 선택을 한 거예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시장과 서비스를 만들고자 했으나 결국 폐업 수순을 밟으며 공중분해된 카풀 기업,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내몰린 택시 기사와 그 유가족, 실직 상태가 된 1만 2천 여명의 카풀 업계 드라이버 종사자, 갈등 해결을 위한 명확한 판단을 하지 못함으로써 제기능을 하지 못한 사법부, 서로의 오해와 갈등을 온전히 풀지 못한 행정부, 결국 이동 선택권을 빼앗기게 된 일반 국민 등 모두에게 생채기만 남기고 끝이 났어요.
택시 산업과 카풀 업계의 실험은 1년 5개월로 끝이 났지만, 우리 사회에 남긴 여파는 생각보다 커요. 그동안 우리가 힘들게 쌓아왔던 사회계약들이 하나둘씩 제기능을 하지 못하기 시작했고, 결국엔 죽음을 그저 무력하게 방관한 것이나 다름없었어요. 이 실험은 저를 “기술을 지배할 것인지 지배당할 것인지” 그리고 “나는 어느 편에 설 것이며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저는 사회의 병리적 문제를 읽어내고 싶어 사회학과에 진학했으며, 그 문제의 해답을 도출할 수 있는 책임적 주체가 되고 싶다는 목표로 사회혁신(Social Innovation) 영역에서 활동했었어요. 이러한 맥락에서, 과학기술이 가져올 미래를 먼저 예측하고 발생할 위험을 해결하는 것이 어쩌면 나의 소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 구체적으로, 과학기술과 사회문화의 격차로 발생하는 소외와 갈등 현상을 파악하여 이해관계자들의 합의점을 발견하고 공백을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도출하고 싶다는 목표로 발전하게 되었죠. ‘기술 이행’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개념은 앞으로 새롭게 도래할 기술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앞으로 제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기술과 사회에 대한 사유’를 기록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 기록은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STS)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면서, ‘과학기술과 사회를 둘러싼 현상들을 하나씩 살펴보려고 해요.
*과학과 기술 그리고 사회라는 다학제 간의 영역을 넘나들며 총제적인 연구를 하는 학문이에요. 쉽게는 ‘과학기술을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는 학문’으로도 표현할 수 있겠네요. 과학기술학의 역사는 서구에서 시작되었으며 1960년대부터 태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요.
현상들을 분석하며, 과학기술의 발달이 비추는 밝은 이면에 음지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드러냄으로써 어떤 갈등과 문제를 겪고 있는지를 탐구하거나 비평하는 동시에, 반대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긍정적 기여를 하는 과학기술을 발굴하거나 소개하고자 해요.
이 매거진을 읽는 사람들에게 과학기술을 올바르게 해석하고 사용할 수 있는 문해력, 즉 ‘테크 리터러시’를 제공하고 싶어요.
[도서] ‘SF, 포스트휴먼, 오토피아’, 안숭범 저, 문학수첩, 2018.09.
[기사] 극한 대립 속,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았다, 중앙시사매거진, 이병희 기자, 2020.04.27.
[기사] 택시기사 또 분신, "카풀 문제 해결 안돼 불만", YTN, 김주환 기자, 2019.01.10.
[기사] 타다 베이직 ‘폐업 엑시트’, 드라이버는 어쩌나, 경향비즈, 주영채 기자, 2020.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