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군주론의 무대였던 피렌체 / 출처 unsplash.com, Heidi Kaden ‘군주론’(II principe, 1513)은 이탈리아 피렌체 공화국의 외교관이며 정치철학자였던 ‘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Machiavelli, 1469 ~ 1527)의 저서인데요. 이 책은 혼란스러운 국내외 정치외교의 무대에서 군주가 지녀야 할 정치철학적 지침을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군주론에서 시대와 분야를 불문하고 통용될만한 아주 유명한 대목이 탄생합니다.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내는 것만큼 어렵고 힘든 일은 없다.
왜냐하면 현재의 제도와 시스템으로 혜택을 보고 있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엄청난 저항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개혁을 도와줄 사람들은 새로운 질서가 가져다줄 혜택에 대한 모호한 그림밖에는 없다.
강력한 적과 미온적인 동지, 이것이 혁신이 성공하기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이다.”
바로 ‘개혁이 어려운 이유’를 서술한 내용인데요. 이 대목의 의도는 우리의 삶이 진일보할 수 있는 개혁이 구상된다고 해도 그것이 새로운 질서로 자리 잡는 과정은 절대 순탄하지 않다는 점을 내비치는 것이죠. 이 찬탄할만한 통찰이 적용될 수 있는 배경은 16세기 피렌체뿐만이 아닙니다. 과학기술분야 역시 ‘개혁’이 숨 쉬듯이 일어나는 분야이기 때문이죠.
군주론의 새로운 무대, 과학기술분야
과학기술은 과학 분야를 인간 생활에 유용하도록 가공하는 수단입니다. 과학기술은 실험실 내부에서 여러 가지 실험과 검증을 거쳐 하나의 ‘사실’(fact)로 탄생하게 되는데요. 실험실 내부에서 태어난 모든 사실은 실험실 외부로 나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게 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학자들의 노력과 바람과는 달리 어떤 사실은 태어남이 무색하게 아무도 그 존재를 인지하지 못할 수 있고, 또 어떤 사실은 사람들의 의심을 사고 반증을 맞이하며 험난한 신고식을 거쳐야 할 수 있으며, 또 어떤 다른 사실은 실험실을 나오자마자 빠른 속도로 전 세계에 뻗어나가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과학지식 또는 기술혁신으로 재탄생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과학기술혁신’은 실험을 나온 사실이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동맹 세력과 그 반대편에서 사실을 무너뜨리려는 강력한 대적 세력 간 투쟁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과학기술학자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 1947~)는 자신의 저서 ‘젊은 과학의 전선’(1987)에서 이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는데요. 어려운 개념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실제로 군주론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습니다.
개혁 세력 - 사실 구축자(fact-builder)
사실 구축자는 실험실에서 나온 사실이 우리 모두에게 전파될 수 있도록 질서화하는 존재입니다. 비유하자면 ‘대학 연구실에서 연구된 실험 또는 논문’, ‘스타트업에서 개발된 기술’ 등이 사실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구축자에게는 꼭 필요한 역할이 있습니다. 바로 사실을 구축하는 데 협력하여 도움을 주는 협력자가 있습니다. 역시 비유하자면, 논문을 지지하는 학자의 증언, 기술의 유용함을 알리는 애널리스트의 의견,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투자자 등이 해당될 수 있습니다.
적대 세력 - 회의론자
군주론에 따르면, 사실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강력한 적대세력 또한 있기 마련입니다. 사실이 내포한 허점, 한계, 반증 등을 주장하는 존재가 이에 해당될 수 있습니다. 사실이 인정될 경우, 명성과 권위에 상처가 생길 수 있는 반대론자, 시장경쟁력을 잃어버릴 가능성이 있는 경쟁기업, 더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들고나온 개발자 등이 해당될 수 있습니다.
Line in the sand
사실 구축자는 타인이 넘지 못할 명확한 ‘선’(Line)을 그어야 합니다. 내가 아이디어의 주인이지만 타인의 개입으로 인해 아이디어에 대한 통제력(control)을 상실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물론 자신의 아이디어가 널리 전파될 수 있도록 ‘협력자’의 도움은 필수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아이디어의 원형이나 본질을 알아볼 수 없도록 왜곡하거나, 아이디어로 인한 공로, 명예, 돈을 가로채는 상황을 경계해야하죠.
힘의 간계
사실 구축자는 협력자들의 참여와 동시에 통제력을 상실하지 않기 위한 전략을 세우게 됩니다. 라투르는 이 전략을 실현하는 과정에 ‘힘의 간계’(또는 기계화, Machination of forces)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 간계를 통해, 1) 협력자들의 참여가 사실이 가진 한계와 문제점을 보완할 수도 있으며, 2) 사실이 지속적으로 참여자와 관심을 유입시키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인싸의 앱 ‘클럽하우스’를 아싸로 만든 혁신
출처 Clubhouse: Why Has It Taken Off?, Tom Taulli, Forbes, 2021.04.10.
‘클럽하우스’(ClubHouse)는 2020년 4월 미국 스타트업인 ‘알파 익스플로레이션’(Alpha Exploration Co.)에서 개발된 음성 기반 SNS입니다. 클럽하우스는 독특한 차별성을 내세워 기존 팟캐스트나 채팅 서비스와 다른 매력으로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개발된 해 2020년 12월에 가입자가 무려 60만 명에 달했으며 3개월 뒤에 10배에 달하는 6백만 명이 가입할 정도로 단기간안에 대표적인 음성 기반 SNS로 성장하였습니다.
클럽하우스의 협력자 - 셀럽과 인플루언서 그리고 투자자
알파 익스플로레이션은 기존의 다른 음성 서비스와 다르게 클럽하우스가 ‘Audio-Only, Invite-Only’라는 차별성을 갖도록 서비스를 구축해나갔는데요.
이 차별성 덕분에 클럽하우스는 탄생 초기부터 엄청난 협력자들의 지지를 받게 됩니다. 셀럽과 인플루언서들이 클럽하우스 서비스 초기부터 스피커(대화방을 열고 대화를 조정하는 사회자 역할)로 참여하는 것이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게 된 것이죠. 페이스북 CEO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 유명작가 말콤 글래드웰,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우아한형제들의 김종진 대표, 그 외 유명 국내외 연예인들이 선발대로 나서게 되며, 이들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매력에 대중 또한 관심과 가입을 계속 유도하게 됩니다.
셀럽과 인플루언서를 통한 홍보효과도 주목할만한 점이었지만, 가파른 성장성으로 실리콘밸리의 거물 투자자들의 눈에 띄게 되며, 매출도 없이 설립 1년이 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기업가치가 1조 1,000억 원으로 고공 행진하게 됩니다.
출처 "초대장 1장에 2만5천 원"…SNS '클럽하우스' 무엇이길래, 유영규 기자, SBS, 2021.02.09.
클럽하우스의 통제력- 폐쇄성, 휘발성
클럽하우스가 기존 음성 기반 서비스들과 달리 가지고자 했던 차별성이며 동시에 통제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첫째는 ‘폐쇄성’. 클럽하우스는 기존 사용자의 초대를 받아야만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폐쇄적이라고 평가 받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제한된 초대 및 가입기능을 통해 너도나도 대화에 참여하고 싶은 심리적 자극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죠.
2) 둘째는 ‘휘발성’. 즉, 녹음이나 재방송이 불가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비슷한 음성 기반 SNS인 팟캐스트나 영상 플랫폼과 달리, 모든 대화는 생방송으로 진행되며 그 대화가 어딘가에 기록되고 저장된다는 부담을 줄이며, 사용자가 관심 있어 할 만한 대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계속 클럽하우스에 상주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죠.
클럽하우스의 반대 세력 - 트위터의 ‘스페이스’(Space)
출처 Twitter Spaces vs Clubhouse – Detailed Comparison of the Voice Chat Giants, Volumetree
안타깝게도 클럽하우스에 대한 관심과 사용자 유지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글이나 영상과 같은 시각 기반이 아닌 음성 기반의 한계에 부딪힌 것이죠. 그러면서 동시에 클럽하우스의 반대세력인 트위터의 ‘스페이스’ 서비스가 음성 기반 SNS 시장에 뒤이어 등장하게 됩니다.
트위터의 스페이스는 클럽하우스 사용이 불편했던 사용자의 니즈를 충족하듯이 클럽하우스의 속성과 반대되는 기능을 보완한 서비스였습니다. 1) 스페이스는 트위터를 사용하는 모든 사용자의 접근을 허용함으로써 폐쇄성이 아닌 개방성 전략을 채택했으며, 2) 대화의 기록이 가능하여 다시 듣기가 가능함으로써 휘발성이 아닌 기록성의 전략을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스페이스가 출시된 2021년 같은 해에 클럽하우스 또한 초대장 없이 가입할 수 있고 대화 녹음 기능을 추가함으로써 사실 구축을 위해 통제력을 발휘했던 서비스의 개방성과 기록성에 변화를 주게 됩니다.
출처 음성 SNS, 엇갈린 인기… 폐쇄적 ‘하우스’ 아닌 ‘스페이스’ 통했다, 홍석호 기자, 동아일보, 2022.08.25.
한때 인싸의 앱으로 불렸던 클럽하우스는 폭발적 인기 이후 현재 정체 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음성 기반 SNS의 대표성을 띠고 있으며 다시 한번 인싸들의 가슴을 뛰게 할 수 있을것이다라는 기대가 남아 있죠. 또한 트위터의 스페이스는 클럽하우스와 반대되는 전략으로 꾸준히 사용자를 늘려가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 두 사실 구축자가 앞으로 어떤 전략과 세력을 갖고 음성 기반 SNS의 판도를 바꿔나가게 될 것인지 지켜볼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습니다.
과거, 국가의 생존을 위해 나아가 국가의 번영을 위해 개혁을 일궈내고자 했던 세력이 있었고
그리고 현재, 과학기술분야라는 새로운 무대 위에서 개혁을 일궈내고자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두 세력 모두 다른 분야에서, 다른 시기 속에, 다른 세력과 마주하고 있지만,
마키아벨리가 “여우의 지혜 사자의 힘을 갖춰야 한다.”라며 힘주어 강조한 군주의 처세는
모두에게 필요한 가치일 것입니다.
참고
[도서] 처음 읽는 브뤼노 라투르, 아네르스 블록, 토르벤 옌센, 사월의 책, 2017.
[사전] 군주론, 네이버 지식백과
[기사] Clubhouse: Why Has It Taken Off?, Tom Taulli, Forbes, 2021.04.10.
[기사] "초대장 1장에 2만5천 원"…SNS '클럽하우스' 무엇이길래, 유영규 기자, SBS, 2021.02.09.
[기사] 20 Celebrities, Entertainers And Comedians To Follow On Clubhouse, Jake Dee, Screenrant, 2022.7.26.
[기사] Twitter Spaces vs Clubhouse – Detailed Comparison of the Voice Chat Giants, Volumetree
[기사] 음성 SNS, 엇갈린 인기… 폐쇄적 ‘하우스’ 아닌 ‘스페이스’ 통했다, 홍석호 기자, 동아일보, 2022.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