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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amena Oct 28. 2022

배달의 민족, 바이킹?

스웨덴의 배달 문화, 그리고 이면의 사회 구조에 관하여

유럽 여행할때 가장 불편한 점은 무엇일까? 캐리어 파괴자라 불리는 울퉁불퉁한 돌바닥, 나라마다 달라서 도저히 감이 안잡히는 팁문화, 식탁에서 코는 풀어도 되지만 한 그릇에서 음식을 나눠먹으면 안되는 식문화 등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느려터진 와이파이와 초저녁이면 문을 닫아버리는 식당들이 공통적으로 언급되곤 하던 것을 기억한다. 영국 지하철은 이제야 지하철 내에서 모바일 데이터가 사용 가능하도록 공사를 시작한다더라는 이야기가 일종의 도시괴담처럼 떠돌았다. 그럼 지하철에서 뭐해? 그래서 사람들이 책을 읽는거였구나! 하는 등의 웃지 못할 깨달음(?)도 있었다. 스웨덴에 와서 살다 보니 어떤 것들은 사실과 달랐고, 어떤 부분들은예상과 똑같았다. 오늘은 스웨덴에 관해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중 하나는 제목에 있듯, 배달 문화다. 한국은 외식비가 저렴한 편이고, 인구 밀도가 높고, 인건비가 비교적 저렴해서 배달 문화가 발달하기 좋다. 웬만한 규모의 도시에는 언제든 배달을 시킬 수 있는 가게들이 즐비해 있고, 대략 30분 정도를 기다리면 뜨끈한 음식이 문앞까지 배달된다. 배달앱의 발달로 전화를 꺼리는 젊은 세대 역시 저장된 주소와 저장된 카드 정보를 이용해서 손쉽게 다양한 음식을 시킬 수 있다. 스웨덴은 법으로 정해진 최저임금은 없지만, 일반적으로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아르바이트의 최저 시급이 120크로널, 즉 15,000원쯤 된다. 그 회사가 속한 노동조합 그룹에 따라 기준이 다르지만, 대략 평일 저녁 8시 이후, 토요일 오후 4시 이후부터 월요일 새벽까지는 '불편한 시간(Obekväm arbetstid, OB)'으로 간주되어 최소 20%, 시간대에 따라 최대 50% 가량의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스웨덴에서 피크 시간대인 주말 저녁에 배달을 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놀랍게도, 스웨덴은 배달 문화가 무척 잘 발달해 있다. (사람 얼굴 보기 힘든 북쪽 지방 혹은 도시 외곽에서는 당연히 불가능한 일이다) 주요 도시의 시내에서는 foodora, uber eats 등의 앱으로 웬만한 가게에 다 주문을 할 수 있고, 배달 시간도 보통 30분에서 최대 1시간 정도로 그렇게 길지 않다. 음식 배달 뿐만 아니라 온라인 주문을 통한 택배 역시 생각처럼 오래 걸리지 않는다. 스웨덴에 처음 왔을 때는 계좌도 없었고, 택배를 어디에서 어떻게 받아야 할지조차 확실하지 않아서 온라인 쇼핑을 피하다가, 막상 온라인으로 물건을 구매하기 시작하니 너무 편한 것이다! 결제 과정도 단순하고, 웬만한 물건은 평일 기준 2-3일이면 문앞에 도착한다. 현관 앞에서 택배 기사가 전화를 하면 물건을 직접 인계받거나, 한국처럼 메일박스 혹은 현관 앞에 놓아두고 가라고 비대면 배달을 요청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애초에 집 근처에 있는 무인 택배함에 배달을 받을 수도 있다. 보통 door to door 서비스는 추가 금액이 붇곤 하기 때문에 무인 택배함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의 우체국과 비슷한 postnord의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면 웬만하면 집에서 5분 내에 있는 무인 택배함 혹은 편의점 택배 대리 수령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인구는 천만밖에 안되는데 국토는 넓디 넓어 타 지역으로부터의 배달이 느릴 것 같지만, 교통망이 잘 발달해 있어서인지 기성품의 경우에는 배달을 3일 이상 기다려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렇게 예상 외로 편리한 배달 문화 뒤에는 스웨덴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있다. 아무리 시급이 높고 직업에 귀천이 없는 문화라지만, 그래도 배달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스웨덴에서 궃은 날씨에 배달을 하는 것은 단언컨대 그리 아름다운 경험이 아닐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확하고 예의바르지만, 어디에나 소위 진상들은 있다. 혹은 의도한 바가 아니라도 주소를 잘못 기재하거나, 실제 교통 상황이 앱에 보여지는 것과 다른 등의 이유로 길에서 시간을 허비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스웨덴에서 공사장에서 일하거나 자동차 조립 공장 등에서 일하면 노동 강도는 세지만 동시에 높은 수입을 올릴 수 있다. 그런데 배달업은 몸이 힘든 데 비해서는 급여가 그리 높지 않다. 그리고 이런 소위 3D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민자 출신이다. foodora 배달부가 쓰는 억양에 대한 농담이 있을 정도로, 그들 중 많은 수가 중동 혹은 아프리카 출신이다. 혹은 스웨덴에서 태어났더라도, 이민자 가정 출신인 경우가 많다. 소위 얼굴이 '하얀' 배달부는 웬만해서는 보기 어렵다. 배달업에 종사하는 인종별 비율은 스웨덴 사회의 분화 (segregation) 현상을 보여주는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회사에서도 일반적으로 직위와 소득의 정점에는 많은 경우 '진짜' 스웨덴 출신의 백인 비율이 높다. 반대로 호텔과 회사에서 청소를 하는 이들은 동유럽, 중동 출신의 여성인 경우가 많다. 평등하고,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이긴 하지만 스웨덴 역시 인종과 배경에 따른 계급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고 할 수 있다. 



누군가의 편리함은 다른 누군가의 불편을 대가로 한 결과이다. 적정한 대가를 지불하고 있으니 아무 문제 없다고 외면해버리는 것은 어쩌면 그렇게 정의로운 일이 아닐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배달 음식 한번 시켜먹으려다가 공상과 상상에 빠져 답을 찾기 어려운 질문에 도달하고 마는 ENTP의 하루다.




아, 마지막으로 스웨덴은 인터넷이 무척 빠르다. 인구밀도가 낮은 나라다 보니 아무도 살지 않는 숲속이나 해안도 저가형 통신사를 쓰지만 않는다면 웬만해서는 데이터도 잘 터지고, 웬만한 곳에서는 다 공공 와이파이를 제공한다. 가정용/회사용 통신망의 수준도 당연히 높다. IT와 R&D 분야의 소득대비 투자로 세계 순위권을 다투는 나라답게 기술과 통신망에 있어서 그 어느 나라에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커버이미지 출처: https://www.socialisterna.org/foodora-arbetarna-i-norge-vann-striden-om-kollektivav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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