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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가 마담 리 Nov 04. 2023

남방 우편수송기와 노벨라 33

시작은 오래된 우정과 책임에서

활판인쇄 세계 중편소설 시리즈 <노벨라 33>, 다빈치 출판사, 2023년.

활판인쇄본 세계 중편소설 선집 <노벨라 33>. 오랜 세월 우정을 이어온 친구 덕분에 이 거룩한 작업에 숟가락을 하나 얹게 되었다. 빛을 쏘이고 씻고 말리고 오려 활판을 만들고 그걸 다시 인쇄하시는 인쇄장인 할아버지들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경건해지는 건 어떨 수 없다. “이 책은 영원히 간직할 책이라 생각하면서 만들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시는 할아버지는 74세, 앉은 자리에서 활판을 가위로 오려 틀을 잡으시는 어르신은 89세다. 입을 꼭 다물고 한 손에 파란 장갑을 끼고 작업에 몰두하시는 노장의 얼굴이 우리 아버지를 닮아서 돌려보고 또 돌려본다. 노안임에도 길가에 떨어진 작은 못 같은 건 또 기가 막히게 찾아내서 재활용하시던 아버지도 손끝이 무척 야무지셨다. 사라져가는 것들을 되살리는 건 생이 다해가는 또 다른 존재들이다. 


https://www.aladin.co.kr/events/wevent.aspx?EventId=256088


내가 맡은 선집 28번째 작품 <남방 우편수송기Courrier Sud>는 생텍쥐페리가 1929년에 출간한 첫 소설이다. 애초에 해군이 되고 싶었으나 구두 시험에서 미끄러진 그는 건축학과를 기웃거리다가 보조 정비사로 공군에 입대한다. 항공기 조종사 면허를 따고 정식 항공 관찰병이 되기까지 2년이 걸렸으나 몇 달 뒤 추락 사고를 당해 울며 겨자 먹기로 제대해 이번에는 트럭을 몰았다. 다시 2년 후 그는 툴루즈 소재 항공우편 수송 회사 라테코에르 입사해서 툴루즈-알리칸테-카사블랑카-다카르 노선으로 항공우편을 수송했다. 이어 모로코의 카사블랑카와 다카르를 잇는 쥐비곶 비행장의 책임자로 18개월 동안 부임하는데, 말이 비행장이지 당시의 쥐비곶은 모래 사막 위에 움막 하나 덩그러니 얹어 놓은 것이어서 척박하고 고독하고 추웠다. 그곳에서 그는 우편수송 항로 개척, 사막에서 길을 잃거나 인질로 잡힌 동료 구출, 인질을 둘러싼 토착민들과의 협상 등을 처리했다. 그리고 <남방 우편수송기>를 썼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를 맞아주는 모래언덕을 보며, 그는 어쩌면 모래언덕 너머에 존재할 진실의 세상을 꿈꾸었던 것 같다. 사람들은 쉽게 진실에 닿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우리의 오만일 뿐이다. 진실을 보려면 진실한 눈이 있어야 하고, 그건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긴 세월 길들여지거나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웬만해선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 베르니는 이렇게 털어놓았다.  

‘내가 짐작해온 건 모든 사물의 이면에 보이지 않게 감추어져 있었어. 나는 조금의 노력으로 그걸 이해하고, 마침내 알아내고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그런데, 단 한 번도 명백히 알아낼 수 없었던 그 연인의 존재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지닌 채로 나는 떠나는 거야…….’


그리고 14년 뒤 뉴욕에서 그는 사막에서 길을 잃고 망연자실한 조종사와 다른 별에서 온 어른아이의 이야기 <어린 왕자>를 출간한다. <어린 왕자>가 출간되기 전에 이미 <인간의 대지>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까지 수상하는 등 유명작가가 된 그가 뉴욕행을 택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숱한 비행 사고로 몸과 마음이 피폐한 상태였고, 그럼에도 비행을 계속하고 싶어하는 그에게 주어진 건 고작 지상 근무였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는 비시 정부에도 드골 정부에도 동조하지 않았다. 마침 <인간의 대지> 영어판을 읽은 독자와 편집자들이 뉴욕에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영어판의 제목은 <바람, 모래 그리고 별>. 이 책은 그 시절 미국의 베스트셀러가 되는데, 덕분에 차후 <어린 왕자>의 기획과 출간은 전부 뉴욕에서 이루어졌다. 1943년, 뉴욕의 레날 앤 히치콕 출판사가 처음 찍은 <어린 왕자>는 천 부가 채 안 됐다.(영어판 525부, 프랑스어판 250부) 프랑스어판은 당시 미국에 있던 프랑스 교포들을 위한 것이었다. 전쟁이 한창인 시기였고, 책임감도 의무도 묻지 않는 죽음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고, 이면의 진실을 바라보기에는 모두가 다급하고 성급한 시기였던 만큼 무엇보다 위로와 각성이 절실했다. 


혼자 놔두고 떠나온 장미를, 겸손함은 1도 없어도 어쩐지 복종하게 만들던 장미를 생각하고 훌쩍이는 어린 왕자, 누군가 때문에 허비했다고 생각한 시간이 사실은 그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는 흔적이라고 말해주는 여우, 뱀에 물려 죽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죽은 게 아닐 테니 절대로 놀라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고는 혼자 성큼성큼 모래 사막을 걸어가던 어린 왕자, 그러다가 어쩔 수 없이 무서워져서 다시 주저앉아버린 어린 왕자. 특히 <어린 왕자>의 이 마지막 장면은 <남방 우편수송기>의 마지막 장면과 겹쳐진다. 

“배 한 척이 기울어지는 것만 같다. 아이 하나가 사막에서 쓰러지는 것만 같다. 돛, 돛대, 기대 같은 게 바다 속에서 가냘프게 떨고 있는 것만 같다.”


하늘과 바다와 사막에서 침묵 속에는 무언가 빛나는 것이 있다고 믿던 작가는 1944년 지중해 상공을 날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 그로부터 반 세기가 넘게 흐른 지금 사람들은 그가 탄 비행기가 독일군에게 격추되어 추락한 거라고 제법 과학적인 근거를 들며 말하지만, 나에게는 하나마나 한 이야기다. 나는 생텍쥐페리의 실종이 고도로 치밀하게 계산된 자발적 여행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묵은 허물’을 남겨두고 제 별로 돌아간 어린 왕자처럼 이 작가도 비행기 잔해를 떨구고 그가 원하는 곳으로 돌아갔다고 나는 생각한다. 더 고요하고 반짝이는 세상의 이면으로. 아마도 철새의 이동 경로를 이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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