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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멜라토닌 Mar 10. 2024

2. 소위 애 딸린 이혼녀의 연애란

2탄. 화려한 식탁 위에 흩어지는 낱말들


퇴근을 하고 집으로 출근을 하였다. 이 말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난다고 사람이던 사물이던 이별의 경험을 하게 되면 그 쓸쓸함은 남겨진 자의 몫이 된다. 그런데 떠난 자는 누구이며 남겨진 자는 누구일까. 때론 그 경계가 모호하다. 우리는 이렇게 나고 들며 나중엔 영원히 떠나나 보다. 내가 결혼을 할 때 엄마에게 난 떠난 자식이 되었듯이 우리 딸도 날 떠날 날이 오겠지?



문득 생각이 났다. 이별이 다가오기 약 30분 전에 내가 찍었던 사진이.. 이별을 예감하며 이 자리에 오긴 왔는데 이렇게 맛있는 음식과 삼폐인을 앞에 두고 “설마 오늘이 이별하는 날은 아니겠지. 오늘은 이별을 논하긴 쉽지 않겠지” 하며 내 마음을 달래고 달랬던 나를 떠올려 보았다.




늘 물어보고 싶긴 했었다. 카카오톡 텍스트로 느껴지는 어딘가 모르게 기분이 처져 보였던 그였다. 어머니가 아프셔서 그랬던 것 같진 않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남자들은 가끔씩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해."라는 것과도 거리가 멀어 보였다.


때가 왔다. 샴페인 한 잔 덕에 용기 있게 물어보았다.

"내가 오빠 옆에 어떤 사람으로 있어줬으면 좋겠어?" 요즘 오빠 기분이 좀 안 좋아 보이기도 하고.. 무슨 일 있나 해서..


그가 대답했다. "너만 생각하면 좋아.. 그런데 내가 큰 사람이 못돼서 그런지 OO와 생활을 함께하기에는 많이 부담스러운 것 같아. 잘못도 없는 OO에게 나도 모르게 상처를 줄 수도 있을 것 같고.."


내가 물어보았다. "그럼 헤어지자는 거야?"


그가 대답했다. "그래야 하지 않을까..?"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무얼까? 믿는다는 것은 무얼까?

이럴 상황에서는 그 흔해빠진 드라마 대사가 생각난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널 믿었는데..", "그렇게까지 행동했다면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게 아냐?"


그런데 난 나조차도 그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솔직하게 말을 해주어 나중에는 고마웠다. 요리가 설거지까지고 연애가 이별 까지라면 그 이별을 좀 더 명확하고 빨리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사랑하지만 내 아이는 부담스러우니 헤어지는 게 낫겠다"라는 말에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는 질척거리지 않을 수 있었다.


오히려 그를 격려했다.

"오빤 충분히 큰사람이야.", "오빠랑 잘 맞는 사람 만나길 바랄게.", "그동안 나랑 OO한테 잘해줘서 고마웠고, 예전에 우리 학창 시절에 사귀고 헤어질 때.. 오빠가 나 편하게 보내줬었지. 나도 오늘 그럴게."


그리고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는 것을 거절하고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며 나를 안아주는 그에게 나도 미안하다고 하였다. 아이와 셋이 함께하는 시간에 내적 갈등으로 힘들었던 그를 알아채지 못한 것도 있었을 테니..


그래도 모든 관객이 떠나고 어두워진 무대 위에 쓸쓸히 남겨진 건 "나"였다. 

어쨌든 차인건 "나"였다.





나는 사랑을 할 때 내 일상의 대부분을 상대에게 할애하게 된다. 일상에 사랑 한 스푼 추가하여 일상이 더 활력이 생기는 초기 단계가 지나고 상대가 더욱 깊게 내 일상으로 들어와 지면 나는 결코 가벼워지지 않게 된다.


나는 그와 제일 친하고 가까운 사이가 되고 싶었고 우리만 아는 그런 언어들로 일상을 채워가고 싶었다. 10여 년 전 알았던 사람이기에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숙제를 해결하고 싶었던 그에게 나는 적합하지 않았고 그래서 이렇게 헤어졌다.


간명하고 단순하다. 도파민이 지나가고 난 자리.. 행동과 보상이라는 행위를 관장하는 그 호르몬이 바닥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틀 동안 잠을 설쳐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그리고 난 이별에 대해 충분히 아파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내일 출근을 하고 퇴근을 한 뒤 또 집으로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이 서글프기도 하지만 분명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다.






저는 이 사랑을 통해 무엇을 하려고 했던 걸까요?

사랑이란 상대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했던 것 같아요.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바라는 게 아니라요. 그렇다면 전 인생의 귀한 경험을 한 것이고 내가 가장 사랑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던 기회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애 딸린 이혼녀에게도 연애는 필요하다고 한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연애는 "나 자신과의 연애"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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