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이번엔 꼭 먼저 결혼해~
감동은 도가니탕, 우리는 재회 후, 약 1년 4개월의 연애를 더 지속하였다. 우리 사이에 어떻게 하면 잘 지낼 수 있는지 “방법을 찾아보자.” 했었는데 1년 4개월이라는 시간에 알맹이는 없고 무드만 있었나.
사랑하라..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이 글귀를 읽을 때 나는 가슴 한편이 매였는데.. 사랑에 흠뻑 빠질 수도, 상처받을 것을 염려하여 요리조리 계산만 할 수도 없는 마음의 상태로 어떻게 1년 4개월을 버텨왔는지 모르겠다.
그렇다. 버텼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처음 1년의 연애와는 확실히 달랐다.
날 버티게 해 줬던 게 무엇이었을까 생각했을 땐.. 그게 그와 함께 마시던 와인이었는지 좋은 데이트 장소였는지 모르겠다.
사랑은 내 시간을 내어주는 일이 맞다면 나는 전처럼 순수하고 흔쾌히 그에게 시간을 내어주기보단 어느 것이 나에게 덜 후회로 남을지 계산한 뒤 나의 행동을 결정하기도 하였다.
누군가는 말했다. 네가 정말 사랑한다면 그의 마음과 행동까지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그리 말한 사람은 진정 그래본 적이 있을까. 사랑을 내어주는 것은 누울 자리를 보고 뻗으라는 말과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는 그의 말과 행동들.. 특히 설명 없는 행동은 기본적인 배려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였고, 무엇보다도 그가 지금 겪고 있는 솔직한 마음을 터놓는 것을 주저하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을 때에는 나는 그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매일 하던 굿모닝 인사를 건너뛰었다. 그러면 우리는 자연히 헤어지게 되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그럴 때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멀쩡하게 굿모닝 인사를 하였다. 그러면 우리는 또 아무렇지도 않은 연인이 되었었다.
만약 그와 내가 재회할 때 정확하게 서로가 원하는 것을 말했었다면 다시 재회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 결혼은 부담이었을 것이다. 나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에도 다시 결혼을 함으로써 많은 것을 포기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용기가 없음을 고백하였고 나는 용기가 없는 이에게 용기를 내어줄 수 없음을 고백하면서 우리는 이제 만나지 않기로 하였다.
헤어지는 날,
나는 가장 연애다운 연애를 한 것 같다.
여전히 널 보면 예쁘고 설렌다며 내 손을 주무르는 그의 얼굴은 멜로눈깔로 가득하였다. 내 앞에서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하게 말하는 그를 보며.. 우리의 이별상황은 누군가가 볼 땐 어느 분위기 좋은 바에서 남녀가 미래를 그리는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거사를 치르려는 듯한 그의 행동을 능숙하게 저지하며 누님 같은 어조로 말했다.
“ 오빠, 이번엔 나보다 먼저 결혼해~”
“ 나 이제 가야겠어 ”
이해가 되는 이별, 자주 상상했던 이별..
더 다가가지 않아 잃을 것이 없었지만
남는 것 또한 많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라고 난 확신한다.
내가 온몸으로 느꼈던 그간의 불안함, 기다림, 인내 같은 감정은 오롯이 내 문제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를 이해하는 것과 합리화하는 것의 사이엔 무수한 거리가 있다는 것을..
무엇보다도..
나에게 아이가 있었던 건 나의 문제가 아니었고
그에게 있어 “그의 문제”였다는 걸..
그래도 참 고맙다.
외로웠을 약 3년을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 그에게..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고 또 경험의 시간을 쌓게 해 준 그가.. 건강하게 잘 살길 마음으로 바라본다.
가끔이라도 오던 나의 카톡이 적막에 그늘에
가려질 때쯤.. 알림이 울렸다.
“출근 잘했어요? “
“점심 잘 챙겨요. 오늘 추워요 “
그리고 난 눈에 들어오지 않았으나 내 옆을 맴돌았던 한 사람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