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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현복 Jul 27. 2023

아무개 씨의 역습


되살아나는 흔적들 1_구겨진 종이들_25x25cm_2023_4set


 미술관 화려한 조명 아래 고귀한 작품이 걸려있다. 웅장하고 섬세하며 역동적이고 완전해 보이는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그 작품은 참 경이롭게 느껴진다. 잠시 동안의 마술 같은 감상을 마친 뒤 시선을 돌려 그곳을 빠져나오자 쇼윈도에 스치듯 초라한 내 몰골이 보인다. "나는 저 멋진 작품보다 나은 인간은 될 수 있을까? 저기 저 예술품도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데 왜 나는 이토록 쓸모없는 지경일까." 똑똑한 누군가 만들어낸 작품을 뒤로한 채 한없이 초라해진 자신을 느끼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왜 많은 전시장에 작품들은 보물처럼 크고 멋있는 작품들만 있을까? 나처럼 초라하고 볼품없는 존재도 저기 저 화려한 조명 앞에 올라서면 안 되는 걸까? 마치 전남 화ㅇ군편 KBS 전국노래자랑에서 폐자부활 전 무대 위에 올라 딩동댕을 받고 유쾌한 웃음 짓는 28세 네팔 출신 이주노동자 아무개 씨처럼 말이다. 그러나 우리 일상의 삶에 현실에서는 그런 언더독은 주류가 될 수 없다. 나의 약함과 단점과 콤플렉스가 주목받고 환호받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예술 안에서 만큼은 그래야 하지 않을까? 아니 예술이라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큰 범주에서 말고 의지가 닿을 수 있는 나의 생활 반경과 미술 작업에서 만큼은 그래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낮은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어둡고 캄캄한 쓰레기통 그 속의 아름다움을 찾아 나선다. 예쁘고 화려하고 값어치 있는 예술품은 이미 그 자체로 모든 이들의 존중과 시기와 질투를 낳는다. 내 것과 네 것의 비교를 낳고 분열을 낳는다. 인간은 탐욕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고귀한 것에는 관심이 없다. 더럽고 소외되고 약해 빠져 쓸모없는 존재는 그 누구에게도 시선도 관심도 받지 못하지만 내가 시선을 두었을 때 그 자체로 존재의 이유가 된다.


 이들은 각기 다른 모양과 색을 갖고 있으며 각기 다른 사연과 생각이다. 그들은 각자가 모든 이들의 토대이며 구성원이자 또 전체이다. 이들 하나하나를 존중하며 기억하고 사랑의 눈으로 무대 위에 올려 주는 그런 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에 나는 아래로 더 아래로 시선을 향한다. 더 작아지고 연약해지고 낮아질 때 만이 세상을 올려다보며 그들의 손을 잡고 끌어올려줄 수 있는 축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 나의 기쁨과 사랑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전시 전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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