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
누군가의 삶을 응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보다, 내 아이를 열렬히 응원하는 첫 번째 팬이 되고 싶다.
이건 엄마로서 매일 가슴에 새겨보는 다짐 중에 하나다.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가슴에 찬 바람이 분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부모에게 온전한 응원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시도하는 대부분의 일은 반대에 부딪혔다.
그 반대가 어쩔 땐 격렬하게, 또 어쩔 땐 약하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족에게 내가 하는 일을 공유하지 않는다.
결혼을 한 후 직장을 그만두고 그림을 시작할 때도 그랬다.
그림을 그리고 첫 전시를 했을 때도, 첫 개인전을 했을 때도 나는 가족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서 상처받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나,
지나고 보니 그 모든 일들이 상처였다. 그리고 그 누적된 상처는 나를 지금도 아프게 한다.
최근 몇 달 전, 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펀딩을 위한 샘플 엽서북을 보여주며 후원을 받아볼 생각이라고 했을 때 내가 처음 들은 이야기는 "이게 팔리겠어? 이런 걸 누가 사겠어?"였다.
"그러게"라고 맞장구치는 말까지.
왜 남에게도 하지 않을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걸까?
악의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 내게 상처 줄 의도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그래도 마음 저편에선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말하지 말걸.
바람은 점점 차가워져, 미처 아물지 않은 상처틈새를 파고든다.
아, 또 마음 감기에 걸리겠구나.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은 마음.
마음이 한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또다시 무기력해졌다.
결국, 감기에 걸렸구나. 그래도 위안이 되는 사실이 있다.
감기에 걸려도 죽진 않는다는 것,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털고 일어나는 시간이 온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의 주는) 말의 힘은 너무도 대단해서 내 의지를 꺾고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싶지 않게 만들어버리기도 한다. 생각 없이 던진 그 부정적인 말들이 가진 힘에 빠져 한 달을 넘게 허우적거렸다.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텀블벅에서 펀딩을 오픈했다.
내가 나를 응원한다. 내가 내 삶을 응원한다.
주변사람들이 나를 응원한다. 그리고 그 응원들이 진심이라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도 내 아이가 나를 응원한다.
아이가 나에게 보내는 진심 어린 순수한 응원이 허우적대는 나를 일으켜 세웠다.
응원이란 무엇일까?
사전을 보니 응원의 뜻은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정말 그렇다. 응원은 무엇인가를 해 낼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어떤 일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간혹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 주는 마법의 힘이기도 하다.
우리가 주고받는 응원에는 그런 힘이 있다.
누군가를 응원한다는 것, 누군가의 응원을 받는다는 것,
둘 다 정말 멋진 일이다.
나는 누군가를 열렬히 응원하고, 누군가에게 열렬히 응원받는 삶을 살고 싶다.
텀블벅 응원하러 하기 - '좋아요♥'는 응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