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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이 더 고픈 설명절

(음식은 추억이다.)

by 강 라헬



설에 만들 음식종류를 수첩에 적는다. 설음식 중 자신 있는 녹두전과 만두는 당연하다. 나박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친정의 시그니쳐메뉴인 황태 불고기도 빠트릴 수 없다. 그것들의 재료는 정말 많기도 하다. 설 열흘 전부터 재래시장을 들락거리며 많은 음식재료를 퍼 날랐다. 등에 지고 양손에 들고.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기에 힘도 안 든다. 이모할머니 표 만두와 황태불고기를 기다리는 서울가족과 엄마의 음식을 그리워하는 멀리 있는 가족들의 얼굴이 코발트빛 겨울 하늘에 한 폭의 수채화로 그려진다.


종갓집 팔남매의 막내로 태어난 나. 평소에도 손님들의 출입이 잦았던 친정집 부엌은 언제나 음식이 풍성했다. 그러니 추석이나 설에는 어땠겠는가. 당연히 음식에 파묻히다 싶을 정도로 많은 음식을 먹고 보며 자랐다. ‘일을 할 줄 알아야 남도 부릴 수 있다’ 며 엄마는 딸들이 일곱 살만 되면 삼백장의 김 재는 것부터 가르치셨다. 육십여 년 전의 김은 바닷가에서 수작업으로 한장한장 만들었기에 모래와 검불이 많았다 게다가 얇기 까지 한 김을 재는 일은 일곱 살 계집아이에겐 엄청 버거운 일 이었다. 김의 모래와 검불을 제거 하면서 조심성을, 삼백장의 김을 재면서 인내심을, 소금을 뿌리면서 지혜를 터득하라는 엄마의 가르침을 철이 들어서야 비로소 알아차렸다.


‘저 집 딸 들이 부엌에 들어가면 소도 잡는다’라는 소문처럼 우리 집 딸들은 얼굴도 예쁘고(나는 제외) 음식솜씨도 엄마를 닮아 좋았다. 지금은 작고 하셨지만 뉴욕의 언니는 배포도 크고 손도 컸다 더하여 음식솜씨까지 좋아서 주의에는 늘 사람들이 모였다. 그 덕에 나도 그 반열에 들어가서 언니를 닮아 손맛도 배포도 크다고들 하지만 언니를 따라가려면 부족한 것투성이다. 수십 년 외국생활에서도 당연히 추석과 설에는 음식을 만들어 가족 그리고 이웃과 나눈다. 요리는 나의 취미생활이자 사랑의 표현이기에. 지금도 내가 만든 만두와 녹두전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여전히 그곳에 있으니까.


이곳에서 삼년 째 추석과 설에 음식을 한다. 어느 곳 에서든 나는 음식을 만들면서 추억한다. “흠, 그땐 그랬지.”하면서. 추억은 내가 기억할 수 있는 만큼으로 나를 데려다 준다. 육십여 년 전부터 지금 이 시각까지. 얼마나 많은 추억의 음식들이 지금의 나로 성숙하게 했을 지를 가늠해본다. 그 음식들 속에는 대부분 즐거움과 기쁨만 간직되어 있어서 나를 더욱 고프게 한다.

요리 할 때 나는 매우 행복하다. 요리는 정성과 사랑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이기에. 가끔 글이 안 풀려 먹먹할 때, 무엇인지 모를 이유로 마음이 지옥이 될 때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부엌으로 간다. 그 공간에선 나의 마음이 쉼을 얻는다고 하면 과한 표현일까. 자르고 끓이고 볶으면서 지옥이었던 마음이, 안 풀리던 문장이 풀리기 시작하는 것을 나는 많이 경험한다.

이 글제도 요리를 하면서 생각났다. 음식은 추억이고, 나는 추억이 고프기에. 우리들은 가끔 아니,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와, 이 맛이야. 이건 우리 엄마 맛인 것 같다’는 등 음식에서 무엇인가를 추억하는 일이 많다. 돌아가신 엄마, 할머니의 그 손맛. 그네들의 음식엔 지금처럼 좋은 재료나 조미료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맛있다. 그 슴슴한 맛이 그립다. 정성과 사랑이 스며있는 탓이리라. 그래서 음식은 추억을 고프게 한다.


설날 아침 바라바리 싸가지고 언니 집을 방문했다. 서울에 있는 여덟의 식구들은 모두 모였다. 조카딸은 갈비찜을 조카며느리는 잡채와 나물을 마련해 왔다. 식탁에 음식을 차려놓으니 임금님 수랏상 보다 더 근사하다. 지난 추석에는 한 결 같이 토란국이 제일 맛있었다고들 입을 모았었는데 이번 설에는 만두와 깍두기가 맛있다며 박수를 친다. 식사 후 덕담과 세뱃돈을 언니까지 고루고루 나눠주며 멀리 있는 아들들과 며느리를 생각한다. 코끝이 찡했지만 어쩌랴, 일 년 후를 기약할 수밖에.


나에게 많은 기대를 했던 언니는 여전히 냉냉하다. 그럼에도 건강도 안 좋고 나이를 더 드셔서 그런지, 어렵고 깐깐한 언니가 조금은 유해진 것 같아 그나마 다행이다. 집에 오니 긴장이 풀려서 온몸이 아프고 다리도 후둘 거린다. 몸은 고단하지만 온 식구가 내 음식으로 인해 즐겁고 행복했음에 감사하다. 집집마다 이것저것 싸서 보냈으니 마음까지 매우 흡족했으니까.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깍두기가 옛날 친정 맛이구나. 그런데 조금밖에 없네.” 맛있다는 말이다. “ 네, 다음 주에 만들어서 갖다 드릴께요” 해오라는 말은 자존심 때문에 못하는 언니의 마음을 헤아려 본다. 늘 나를 못마땅해 하는 언니가 그녀의 문을 살짝 열었기 때문에.


숙성시키기 위해 깍두기 양념을 만들면서 언니와 나의 관계를 고민한다. 풀리지 않는 매듭이 무엇인지 곰곰 생각해 보면서. 가끔 음식을 마련하여 왕래 하면서 그 매듭을 풀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재료들을 믹서에 간다. 막내 동생의 사랑 한줌 더 넣으면서. 언젠가는 언니의 깍두기도 추억이 될 테고 나는 언니를 추억하며 고파할 것임이 분명 할 테다.(202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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