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집중력,지속력)
무라카미하루키는 말했다. 글 쓰는 이에게 필요한 것은 재능, 집중력, 지속력이라고. 지당한 말이라고 쌍수를 든다. 허나 곱씹어 수천 번을 생각해봐도 내게 속한 것은 하나도 없다. 나에겐 허영, 욕심 꿈만이 가득일 뿐.
그중 내게 가장 부족한 것은 집중력이다. 작정하고 책을 읽는다. 처음에는 밑줄도 색색으로 그어가며 감동의 문장은 베껴 쓰기도 한다.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맞아, 이렇게 하는 거야“라며 그런 내 자신이 대견스러워 입 꼬리를 올린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은 활자에, 생각은 낯선 곳을 배회한다. 이런 내가 글을 쓴답시고 우쭐대도 되는 건지 망설였고, 망설이는 수많을 시간들을 보낸다. 그럼에도 어딘가에 뿌려질 때까지 쓰는 사람이길 간절히 원하는 일인이다. 그러려면 재능은 일단 접어두고 우선 집중력 즉 엉덩이 힘 키우는 일에 집중해야함이 나의 첫 번째 소명인 듯.
시월초순 조카가족을 선두로 여럿의 지인들이 한국에 휴가차 방문했다. 각기 다른 그룹이었기에 그만큼 나는 바쁠 수밖에 없었다. 부산 ,대구, 경주도 모자라 동남아와 일본까지 섭렵해야 했으니까. 그들이 하는 한결 같은 말은 ‘먹고 놀고 쉬자’였으니. 성치 않은 다리로 그들과 함께하기엔 즐거움 보다는 피곤함으로 밤에는 녹초가 되기 일 수다. 허나 가족들과 함께 하는 끈끈함은 그지없이 행복한 시간이었다.
순간의 느낌을 놓칠까 늘 메모하는 나를 보며 ‘와우, 진짜 작가 같다’라는 이들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이지만 조금은 부끄러웠다. 잘난 척 하는 나를 엿보았으니까. 순간 부끄러움에 메모노트를 가방에 집어넣는다. 그 후 가슴은 쓰기를 애달아하면서도 가족과 어울리기 위해 쉼을 빙자한 게으름과 나태의 숲속으로 몸을 담근다. 그 후 두 달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애라 먹자, 애라 놀자’뿐이었으니까.
지난주 필리핀에서 돌아온 후 거룩한 부담인 쓰기를 감당하기엔 몸도 마음도 더욱 지쳐있다. 출국 시 공항버스 안에서 기사님의 급정거로 버스바닥에 처참하게 나둥근 몸뚱이가 천근만근이기 때문이다. 핑계 김에 또 쓰기를 거부한다. 그런데 자꾸만 ‘쓰기의 게으름’이라는 글제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지금의 이 상태는 게으름일까 쉼일까를 고민하다가 자판에 활자를 친다. 과연 어떤 글이 써질지 나도 모른다. 우선 머릿속에 맴도는 하루키의 말로 시작하고 싶다 에 마침표를 찍고 글의 첫 문장을 시작했다.
글 쓰고 싶음을 접어두었던 재능을 일단 귀속 시키련다. 지속력 훈련을 위해서 짧은 매일 쓰기를 시작 한다. 잠시 쉬고 있지만 그것은 일기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디카시’와도 일련 관계가 있기에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집중력, 즉 엉덩이 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무조건 자판 앞에서 앉아 있어야 할 테다. 그래서일까, 식사도 커피와 군것질까지도 자판 앞에서 하기로 작정한다. 잠자리에 들 때 까지 나는 하루 종일 자판 지킴이를 자처한다. 이정도의 훈련과 노력이라면 하루키가 말하는재능과 지속력 그리고 집중력이 조금은 있음이 확실하지 않을까.
나에게 쓰기는 설렘과 행복을 준다. 더하여 신선한 충격이기도 하다. 과연 이 나이에 어떤 그 무엇이 신선한 충격이며 설레임일까? 오늘은 무엇을 쓸까하는 즐거운 상상은, 퍼즐을 맞추어가는 것 같은 짜릿함까지 동반한다. 또한 쓰고 싶음에 목말라 넘쳐나는 글감에 빠지기도 하니 이 아니 행복하지 않겠는가. 문해력이 약해 가슴의 전부를 표현치는 못해도 공중에 떠다니는 문장을 잡는 노력만으로도 살아있음과 살아야할 이유를 느끼는 나니까.
글쓰기는 나에게 쉼이고 기댈 곳이다. 어느 때 그것은 내 게으름의 수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쓰기는 무릎의 통증을 벽에 호소하며 지새우는 밤도, 외로움의 어느 한 날도 늘 나와 함께한다. 쓰기는 지속적으로 내 주위를 맴돌며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니까. 지금 행하는 나의 게으름조차도 글쓰기를 위한 쉼으로 핑계하며, 나를 따듯하고 넉넉한 품에 꼭 안아주련다.
수십 년 도마에 칼자국만 냈던 내가 아니던가. 그랬던 내가 글이 쓰고 싶다고, 나에게 쉼을 주고 싶다고 무작정 단봇짐을 싸서 태평양을 건너왔던 4년 전 봄날. 그날의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무식해서 용감했던 그날이 있었기에 지금 내가 자판 앞, 이곳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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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키운 부엌, 수도 없이 많이 박힌 도마의 칼자국처럼 읽고 쓰고 고뇌하기를 무한 반복하며 그 안에서 삶의 의미인 쓰기의 실현을 상생하련다. 핑계 혹은 교만일 수도 있는 때때로 내가 행하는 게으름과 쉼의 정체. 그것조차도 글쓰기 위함이라는 위로와 용기를 나에게 덕담으로 듬뿍 안기면서, 살아있을 날들을 쓰면서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욕심을 내어본다.